인류사가 시작된 이래 1820년까지 세계경제는 큰 변화가 없는, 장기간의 정체 상태였다. 이에 대해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한 이는 토머스 맬서스(1766~1834)였다. <인구 관련 원칙에 대한 고찰>(1798)에서 맬서스는 19세기까지 1인당 총생산 정체와 인구 정체라는 두 가지 현상이 공존했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글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중기과학부 부장
맬서스는 농업 생산이란 노동과 토지의 조합에서 비롯된다는 전제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토지는 고정요소인 까닭에 인구가 증가하면 무조건 1인당 총생산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무역의 확대 등으로 생활수준이 ‘일시적’으로 향상되면 인구가 ‘일시적’으로 늘어나곤 했다. 생활의 여유가 아이를 더 낳도록 장려하는 효과를 불러왔고, 사망률을 낮추는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늘어난 인구는 1인당 총생산을 다시금 생계유지 수준으로 주저앉혀 결국 사회를 과거 수준으로 되돌렸다. 소위 ‘맬서스의 덫’이 작동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변화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실제 18세기는 적잖은 변화, 의미 있는 변신이 일어난 시기였다. 무엇보다 ‘맬서스의 덫’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적잖이 늘었다. 18세기 100년 동안 유럽 인구는 9,500만 명에서 1억4,600만 명으로 증가했다. 세계 인구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도 1700년 17~18%에서 1800년에는 20% 내외로 높아졌다.
영국을 중심으로 도시화도 빠르게 진행됐다. 1600~1800년, 200년간 영국 인구는 111% 증가했는데 도시 인구 비율이 600%까지 늘었다. 그리고 이 같은 도시화 물결은 이 시기 벨기에, 프랑스 등 유럽 각지로 빠르게 확산했다.
그런데도 전체적으로 보면 ‘맬서스의 덫’은 여전히 매서웠다. 18세기 유럽에선 자연환경이 인구를 조절하는 ‘맬서스적 인구조정’이 두 번이나 크게 작동했다. 1740년대 초와 1770년대에 걸쳐 대규모로 사망자가 급증하는 ‘인구 청소’가 단행됐다. 첫 번째 맬서스의 함정 물결이 휩쓴 것은 1740년대였다. 유럽대륙 전체에서 1739년 대비 1740년에는 사망자가 21% 늘었고 1742년에는 기록된 사망자 수가 24% 증가해 정점을 이뤘다. 1735년에 비해선 사망자 수가 43%나 늘어난 것이다. 사망률이 정점을 이루던 1740~1742년은 유럽 각지에 전염병이 번진 시기이기도 하다. 설상가상 서유럽과 북유럽, 중부유럽에서 흉작이 발생했다. 1693~1694년, 1708~1709년, 1740~1741년은 대흉작의 해로 기록됐다.
기상재해와 재난도 잇따랐다. 1700년대 초에는 도처에서 곡물가가 크게 올랐다가 급락하곤 했다. 한번 폭락한 가격은 쉽게 오르지 않아 농지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1740년대를 앞두고는 도처에서 곡물가가 일방적으로 인상됐다. 평균 곡물 가격은 1738~1740년에 60%나 껑충 뛰었다. 한번 오른 곡물 가격은 1742년까지 떨어지지 않고 지속됐다. 몇몇 지역에선 두 배나 오르기도 했다.
곡물 가격이 비싸지면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장기 영양부족 상태가 야기됐다. 당시 저소득층은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만큼 인구의 절대다수가 굶지 않을 수 없었다. 18세기 중반 유럽의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들에선 음식물과 음료 소비에 드는 비용이 가계 전체수입의 60~75%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 같은 곡물가 상승의 여파로 1735~1739년에 비해 1740~1742년의 사망 증가율도 크게 높아졌다. 노르웨이 사망자 수가 81.0% 늘어난 것을 비롯해 핀란드 51.8%, 아일랜드 25.3% 순으로 사망률이 높았다. 아일랜드, 노르웨이, 핀란드 등은 식량부족의 여파로 사망자 증가율이 당시 러시아와 한창 전쟁 중이던 스웨덴의 사망자 증가율(22.7%)을 크게 웃돌기도 했다. 전쟁보다 굶주림이 훨씬 무서운 재앙이었던 셈이다. 18세기의 두 차례 인구위기에 대해 역사학자 존 포스트는 “곡물가가 2년 이상 50% 이상 급등할 경우 사망률과 질병 전염 비율이 따라서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농경사회에서 인류는 굶주림을 피하기 어려웠다. 농업 생산은 토지개간이나 토지개혁, 영농기술의 발전 등에도 불구하고 인구보다 훨씬 천천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농경사회에 충격이 미쳤을 때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약자들이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생존을 위협받고는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빚어진 각종 원자재가 상승과 식량 수급난, 그리고 급등하는 물가는 많은 측면에서 과거 인류가 걸어온 질곡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인류는 아직도 ‘맬서스의 덫’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