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史 큐레이터

천재 VS 천재, 라이트 형제와 블레리오, 보잉과 에어버스
비행기 무역사(史)

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사진 한경DB

1919년 최초의 여객기 승객 정원은 2명. 게다가 파리-런던, 독일 베를린-바이마르의 단거리. 2019년 딱 100년 만에 호주 콴타스항공(Qantas Airways)은 뉴욕-시드니, 런던-시드니 구간을 40여 명과 함께 19시간 논스톱 비행했다. 비행기 무역 이야기의 첫 페이지는 라이트 형제가 첫 동력 비행을 성공한 190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무려 117년 전이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성공한 최초의 비행

미국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주 데어(Dare)군의 소도시 키티호크(Kitty Hawk). 인구 약 3,500명(2018년 기준)의 이 조용한 동네에서 1903년 12월 17일 4살 터울의 형 윌버와 동생 오빌이 대형사고를 치게 된다. 59초간 260m의 동력 비행을 최초로 성공한 것이다. 아무리 동네 이름에 ‘호크(매)’가 들어가도 새가 아닌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것은 상상으로나 가능한 일이었을 때다. 그렇다. 예상했겠지만 이들이 바로 라이트 형제(Wright Brothers)다.
미국에 라이트 형제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발명가이자 항공기술자 루이 블레리오(Louis Blériot)가 있다. 그리고 이들은 미 대륙과 유럽 대륙을 대표하여 비행기 제작에 열을 올리게 된다. 앞서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하자 1907년 블레리오는 비행기 날개가 둘 이상인 다엽기(多葉機) 대신 주날개가 하나인 단엽기(單葉機)를 최초로 제작해 1909년 영국 해협 40km를 횡단한다. 세계 최초의 국제비행이다. 라이트 형제와 루이 블레리오의 치열한 두뇌싸움을 보노라면 마치 오늘날 미국 보잉(The Boeing Company)과 유럽 에어버스(Airbus SE)의 ‘커런트 워(Current War)’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무엇을 위한 발명인가

유럽과 미국을 뒤흔든 두 차례 세계대전은 인류의 역사뿐 아니라 비행기 발전의 변곡점도 제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때는 정찰과 폭탄 투하 목적의 군용기가 크게 발달했고, 1939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1945년 종전) 중에는 폭격기와 함께 전투기도 양산됐다. 포드 공장에서 자동차 대신 폭격기(B-24 Liberator)를 대량 생산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사이 장거리 우편노선이나 세계일주선이 취항하기도 했으나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승객 운송을 위한 비행기, 즉 여객기가 본격 생산된 것은 전쟁이 끝난 후다. 1949년 최초의 민간 제트수송기 영국의 ‘코멧 1(Comet 1)’을 시작으로 1950년대부터 미국 보잉이 여객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들어서 시속 약 900km에 400명까지 태울 수 있는 점보기도 만들었다. 유럽은 미국과 항공 패권을 다투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 영국, 스페인의 컨소시엄으로 1970년 에어버스를 창립해 지금의 양강구도를 형성했다. 현재도 여객기 대부분은 보잉과 에어버스가 생산해 각 국가 항공사에 판매한다. 캐나다(봄바디어), 브라질(엠브라에르), 일본(미쓰비시), 중국(코맥)에서도 소형여객기 등 일부가 제작된다.

1909년 영국해협 40km를 횡단한 블레리오 XI
보잉787 드림라이너
이란이 구매할 예정인 에어버스 A320.
통상쟁점 가득 실은 비행기

비행기엔 여러 통상문제가 탑승한다. 첫째, 비행기 제작은 글로벌가치사슬(GVC)의 꽃이다. 보잉787 기종의 각 부품은 미국 외에도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 일본에서 제작된다. 우리나라도 윙팁(Wingtips)으로 불리는 날개 끝부분을 생산해 납품한다. 에어버스는 유럽 내에서 대부분을 수급하지만 엔진은 미국에서도 가져온다. 우리나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지난해 에어버스의 A320, A321 기종의 주날개 상판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둘째, 비행기 시장은 보잉과 에어버스, 두 기업만이 경쟁하는 구도라 경제학 관점에서 유의미한 문제 제기를 한다. 만약 두 기업 모두 유사한 비행기를 생산하면 경쟁으로 모두가 손실을 보고, 한쪽이 생산하지 않으면 그 모든 이익은 상대가 독점한다. 아무도 생산하지 않으면 이익도 손실도 발생하지 않아 나름의 윈윈이 되지만 서로 전략이 노출되지 않고 또 기업은 이익을 좇는다는 순리를 가정하면 마지막 시나리오는 불가능에 가깝다.
셋째, 이 때문에 각 정부는 자국 비행기 제조사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고민한다. 정부 보조로 기업은 손실 부담이 크게 줄어 공격적인 생산에 동기를 부여받고 상대 기업을 제압해 종국에는 시장 독점의 가능성도 엿본다. 실제 미국은 보잉사 보조금 문제로 유럽연합(EU)과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을 겪었고, 최근에는 EU의 에어버스 보조금 관련 WTO 판결에서 미국이 승소, 미국이 연 75억 달러 상당의 보복관세 조치를 승인받았다.
끝으로, 1980년 발효된 WTO 민간항공기협정(TCA)은 가입 국가 간에만 효력이 있는데 민간항공기와 그 부품 관세 철폐, 항공기 개발과 생산에 대한 정부지원 금지가 골자다.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일본 등이 가입했고 중국과 우리나라는 가입하지 않았다. 항공기 정비나 수리에 필요한 부품관세는 부담이나 동요 ‘비행기’ 가사 속의 진짜 ‘우리 비행기’를 찾으려면 우리 정부 입장에서 항공기 제조사에 다양한 지원을 해줄 수도 있어야 한다. TCA 가입 실익의 셈법이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이유다.
차를 만들고 배를 만드는 우리가 비행기라고 못 만들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보잉과 에어버스 간 ‘커런트 워’에 우리의 참전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