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통상 전문가 커뮤니티 키워 국가의 힘으로 발전시켜야

정해관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법무정책관

취재 이슬비 기자 사진 박종범 실장

뛰어난 통상 전문가 한두 명에게 의존해서는 국가의 힘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수의 인력을 키우며 함께 커가야 비로소 국가경쟁력, 즉 국력이 될 수 있다. 국력을 키우려면 전문가들을 소모적으로 활용하는 대신 학계의 통상학자, 국내외 로펌의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자유롭게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인물이 있다.
통상법무정책관 정해관 국장은 ‘수렵형’ 대신 ‘경작형’ 인재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한국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인 ‘한-칠레 FTA’ 타결을 실무 총괄한 것을 시작으로 전문성을 키워온 정해관 정책관의 통상 인재 육성 방안에 대해 들어 보았다.

주요 경력

서울대 중문학과 학사 미국 조지워싱턴대 법대 국제법 석사 1993년 외무고시 합격 외교통상부 WTO 과장 주미 참사관 주광저우 부총영사 법무연수원 파견

2018년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협력관 2018년 4월후쿠시마산 수산물 분쟁 최종심 승소 2019년 10월, 11월일본 수출규제 제소 관련 WTO 한일 양자협의 수석대표 2020년 4월 1일산업통상자원부 통상법무정책관

후쿠시마산 수산물 분쟁 최종심에서 승소한 지 벌써 1년이 됐습니다.
‘질 게임’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들려온 승소 소식이라 더 반가웠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셨는지요?

패소를 전망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우리 역시 승소했을 때뿐만 아니라 패소했을 때의 대응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플랜B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희생할 수 없다는 것이 대원칙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통상분쟁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상대국의 주장이 구구절절 옳은 것처럼 보여 한두 번의 검토로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이 보이질 않아요.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들다 보면 상대 주장의 허점이 보이고 이길 수 있는 아이디어와 논리가 만들어집니다.

연이어 발생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때문에 숨 돌릴 틈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곧바로 세계무역기구(WTO) 한일 양자협의 수석대표로 참석하셨지요.

지난해 일본은 우리 정부에 알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습니다. 우리의 대화 노력에도 응하지 않았어요. 양자협의에 임하면서 우리가 목표로 했던 것은 ‘양국 간에 대등하면서도 정상적인 협의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과장급 양자협의 관행을 깨고 국장급으로 격을 높여서 실질적인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해보자는 취지도 있었습니다.

두 차례의 양자협의 이후 현재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대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양국 간 양자협의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일본도 분쟁 대신 협의로 해결되길 원한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입니다. 결과적으로, 두 차례의 양자협의를 마친 후 양 무역 당국 간에 협의가 시작되었고 현재 협의를 통한 해결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WTO 양자협의를 통해서 얻고자 했던 목표가 일부 이뤄진 셈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물론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WTO 분쟁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 당연히 승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후쿠시마산 수산물 분쟁, 수출규제 조치 대응과정을 보며 통상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통상’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통상은 한마디로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곤 합니다. 우선 무역이 잘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업무가 있습니다. FTA나 WTO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여기에 속합니다. 둘째는 이러한 길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 즉 통상마찰을 해결하는 것도 통상입니다. 셋째는 홍보나 인센티브 등을 통해 무역을 촉진하는 활동도 통상입니다.

국내 첫 FTA인 한-칠레 FTA 협상을 타결하여 한국 FTA 역사의 산증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 연수를 마치고 외무부 복귀 당시 FTA 이슈가 새롭게 부상할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배치된 부서에서 FTA 협상을 담당했고, 얼마 지나서 저도 FTA 협상주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칠레를 FTA 진출의 교두보로 여기고 협상을 시작했으나 첫 FTA 협상이다 보니 모두가 준비가 덜 되어 있던 탓에 협상타결이 쉽지 않은 형국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FTA가 뒤진 상황에서 시범적으로 택한 칠레와 FTA를 하지 못하면 어느 나라와 FTA를 체결할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이런 긴박감을 가지고 노력한 결과 다행히 한-칠레 FTA가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다른 나라들과도 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습니다. 한-칠레 FTA 체결을 계기로 FTA 추진절차 규정을 만들었고, 이것이 나중에는 통상절차법으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한-칠레 FTA 비준 과정에서 FTA 특별법이 제정되어 100조 원 규모의 지원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FTA 선진국으로 자리 잡는 기반을 다졌습니다.

후쿠시마산 수산물 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들과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의 기념 오찬.
사진제공 이낙연 전 총리 SNS

4월 1일 자로 신통상질서협력관이 통상법무정책관으로 조직 개편되었습니다.
어떤 점들이 달라지나요?

통상법무 기능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종전 신통상질서협력관실의 명칭이 업무 성격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통상법무정책관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원래 통상 업무에는 법률이나 법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에도 ‘제너럴 카운설(General Council)’이라는 통상법무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통상 분야가 체계적으로 발전하려면 통상법무 분야를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상은 정치적 논리가 아니라 법리를 다투는 일입니다. WTO 협정, FTA 협상 등의 결과를 문서화할 때 법리적으로 정확히 반영해야 향후에 문제가 안 생깁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국익에 피해가 안 가게 됩니다. 또한 우리나라 제도들이 통상법적으로 마찰의 소지가 발생하지 않게끔 미리미리 점검을 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통상법무 기능이 튼튼하면 이런 것들이 훨씬 쉬워집니다. 통상분쟁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4년 전만 해도 1, 2건에 불과하던 분쟁이 작년 한 해 동안만 9건이나 있었습니다. 많은 국민이 일본과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분쟁만 기억하시겠지만, 사실 미국과 5건, 일본과 4건의 분쟁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대응해야 했습니다. 한국에 취해진 수입규제가 2019년 기준 200여 건입니다. 현재는 직원마다 일당백의 자세로 대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통상 전문 인력을 보강해야 합니다. 이에 통상분쟁 대응과 인원을 확충하고 있고 통상분쟁대응기반팀을 신설하였습니다.

평소에도 통상 전문가 육성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하고 계시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통상법률 분야는 정부 인원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계의 통상 전문가, 국내외 로펌의 변호사들이 참여하는 커뮤니티가 형성되어야 거기서 힘이 나옵니다. 그동안은 이런 전문가들을 ‘수렵형’, 쉽게 말하면 소모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으로는 ‘경작형’, 즉 커뮤니티를 통한 양성과 활용이 병행돼야 합니다.
미국은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계나 로펌 등 민간부문과 USTR이나 상무부 등 정부기관 사이에 통상 전문가들의 이동이 자유로운 편이라 전문성과 커리어 개발에도 유리합니다. 우리나라의 경력공무원제도 장점이 있으므로 이러한 장점을 살리되 좀 더 유연하게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면 어느 조직에 있더라도 서로 협업이 원활해지고, 이것이 국력이 되는 겁니다. 뛰어난 통상 전문가 한두 명에 의존해서는 국가의 힘이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다수의 인력을 키우며 함께 커가야 국력이 될 수 있습니다. 가령 국가 간 WTO 활동에서도 상대국 관료 1, 2명의 실력만 보고 “대단하다”고 여기다가도 후임자의 수준이 현저하게 낮다면 “아, 이건 국가의 힘이 아니구나” 금방 눈치채게 됩니다. 다수의 인력이 함께 성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통상으로 먹고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통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2017년 기준 대외무역 의존도가 70%에 이릅니다. 반면에 가까운 일본은 30% 이하였습니다.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를 두고 벌어진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의 첫 절차인 한일 양자협의 참석차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했던 정해관 정책관이 2019년 10월 1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현재 통상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요.

내부적으로 인력을 확충하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로펌, 학계의 통상전문가들을 모시고 통상 전문가 육성방안에 대해 몇 차례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통상 전문가를 제대로 육성하려면 학계와 로펌과 정부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통상법무 경험을 키울 만한 케이스가 부족하다는 로펌의 의견에 따라 국내 로펌에 좀 더 많은 참여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학계 전문가와 협업할 때도 지명도에 의존하지 않고 신진학자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문관 역할에서 나아가 제네바 3자 참여 분쟁에서 직접 발표할 기회 제공 등 동기부여 방안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인력양성이란 단기간에 혹은 한 번에 해결되는 사안이 아닙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다 보면 강력한 커뮤니티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월간 <통상>이 100호를 앞두고 있는데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내에서 통상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거진으로는 <통상>이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의적절한 정보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루기 위해 많은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통상’이라는 말을 어렵게 여기는 독자들에게 이 책자가 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매거진이 좋아지려면 독자들의 피드백이 생명이지요.

오랫동안 통상 전문가로 활동하신 분으로서 후배들에게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는 일이 누구를 위한 일인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국민을 이끌어간다는 사고방식이 아닌 국민을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2000년대 초반 한-칠레 FTA가 생각납니다. 우리나라에 실질적으로 피해가 될 수 있는 것에 비해 더 많은 불안과 우려가 있었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답답하기도 했지만 충분히 기초를 다져가며 진행했고 나중에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수 없으면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을 위해 하는 일인 만큼 국민의 지지와 협력이 중요합니다. 협상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당부를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