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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GVC 재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중요한 환경이 됐던 GVC(Global Value Chain)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과 함께 바뀌고 있다. 많은 경우 그렇듯 이번 변화도 위기와 기회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 방향과 정도에 따라서는 한국 산업의 색깔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한국의 경제발전에는 자유무역과 국제 분업체계가 큰 역할을 해왔다. 산업 기반이 보잘것없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선진국 브랜드의 신발과 의류 등 노동집약 제품의 하청기지 역할을 하며 자본을 축적했다. 1990년대에는 중국 등지에 해외공장을 지어 생산비를 낮추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이처럼 제품이나 산업의 생산단계를 국가별로 분담하는 것을 GVC라고 부른다.

도전에 직면한 글로벌 공급망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단계에 접어들며 지금까지의 GVC는 유효하지 않게 됐다. 2018년부터 본격화된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갈등도 기존 GVC에 부정적이다. 미국은 무역 상대 국가들에게 화웨이의 네트워크 장비를 비롯해 중국산 제품 사용을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장비 등 첨단기기의 중국 공급도 가능한 한 막고 있다. GVC 작동의 전제조건인 재화의 자유로운 이동이 정치적인 이유로 어려움에 빠진 것이다. 지난해 일본이 불화폴리이미드 등 핵심 전자부품 및 소재의 한국수출 절차를 까다롭게 고친 것 역시 비슷한 사례다. 재작년부터 본격화됐던 이 같은 변화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더욱 영구화되고 심해지며 기존 GVC의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국에는 기회인 동시에 위기

이처럼 GVC가 과거와 비교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게 되면서 각국 정부는 무역 대신 국내산업 육성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가능하면 국내에서 직접 제조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목표다.
해외에 나가 있는 공장을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제조업 회귀) 역시 GVC 재편과정에서 나오는 전략이다. 코로나19 확산 이전까지만 해도 효율성 및 공급가격 인하가 GVC 구성의 주요 기준이었지만, 이제는 감염증 전파와 같은 비상상황에서도 얼마나 안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리쇼어링은 2010년대 초부터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정책화됐지만 당시에는 국내 일자리 창출이 주된 목표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의 리쇼어링은 원활한 GVC 자체의 작동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GVC 전략을 수정하며 리쇼어링을 중요한 방향으로 잡고 있다.
이 같은 GVC 체계 개편은 한국에 기회와 위기의 양면성을 띤다. 우선 코로나19 대처과정에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은 한국의 방역 역량은 기회로 작용한다.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코로나19가 유행해 전염병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도 정부와 국민이 효과적으로 대응해 다른 국가에서 나타난 공장 가동 중단이 거의 생기지 않았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GVC 체계 개편을 고민하는 글로벌 기업들에 매력적이다. 한국이 중국과 베트남 등 신흥국을 제치고 설비투자의 대안 지역으로 부상할 수 있다. 아울러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이 성과를 거둔다면 기업들의 국내 투자 증가로 일자리가 늘고 경기가 부양되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만만치 않다. 미국과 유럽 등 다른 선진국에서 한국의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와 같은 수입대체 전략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출의 70%가 소재와 부품 등 자본재인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재편되는 GVC가 글로벌 기업들 전반의 이익률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부담이다. 효율을 중심으로 꾸려져온 GVC에 안정성 등 새로운 가치를 추가해 재편한다는 말은 곧 효율성을 어느 정도 희생한다는 의미다. 효율성이 줄어드는 만큼 떨어진 기업들의 수익률은 코로나19가 세계 경제에 낸 상처의 회복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기회 요인과 위기 요인 중 어떤 부분이 현실화될지는 한국이 앞으로 어떻게 GVC 체계 개편에 대응하는지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가 GVC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통상> 용어사전

GVC(Glabal Value Chain)와 GSC(Global Supply Chain) GVC와 GSC 모두 생산 네트워크를 지칭하는 유사한 개념이지만 GSC가 네트워크 간 재화와 서비스의 이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GVC는 네트워크 단계마다 부가가치의 연결을 의미한다.

아웃소싱(Outsourcing) 국내 수요기업이 자회사가 아닌 해외 공급기업으로부터 중간재(재화·서비스)를 구입하는 것을 말한다.

인소싱(Insourcing) 국내 수요기업이 자회사가 아닌 해외 공급기업으로부터 중간재(재화·서비스)를 구입하는 것을 말한다.

리쇼어링(Reshoring) 국외로 생산 기지를 옮긴 기업이 제조원가 인상, 물류 및 노동비용 증가, 정부 고용정책 등으로 제조 거점을 본국이나 본국에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