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눈

클라우드 나인 태백
구름도 손에 잡힐 듯한 고원도시

이마로 여행작가 사진제공 이마로, 태백시청

세상 만물이 무채색의 고요에 빠져드는 계절, 하얗게 내린 눈은 잿빛 탄광도시 태백을 아름답게 조각하는 계절의 선물이다. 태백과 정선, 영월의 경계를 이루는 만항재에서 만난 낙엽송 숲은 북유럽의 설경처럼 이국적이고, 천년을 이어온 태백산의 주목 군락지는 신들의 정원을 보는 듯 신비롭다. 하늘과 가까운 고원도시 ‘겨울왕국 태백’으로 들어가보자.

태백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등산객들.

겨울은 이 땅의 모든 생명이 휴식을 취하며 새봄을 준비하는 시기다. 불과 한두 달 전, 만산홍엽의 화려한 자태로 치장하던 아름다운 산하는 무채색의 고요에 묻혀 완전히 다른 풍경을 선보이고 있다. 이 겨울의 고즈넉함을 제대로 즐기고자 한다면 두메산골이 제격이다. 특히 해발고도 700m 이상의 산간지방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최적의 지대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저지대와는 다른 식생과 환경으로 인해 이국적인 자연경관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거주는 물론 휴양과 여행을 즐기기에도 매우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찾아가는 길이 멀고 험하다는 이유로 여행 선호도에서는 다소 뒤처져 있었으나 요즘에는 오히려 미세먼지와 환경오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부러 청정 고지대를 찾아가는 사람들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듯 태백시는 지난해 자체 조사를 통해 태백 지역 전체의 평균 해발고도가 949.2m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행복의 절정’을 뜻하는 클라우드 나인(Cloud Nine)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클라우드 나인 태백’이라는 새로운 문구를 관광산업에 이용할 예정이라는 계획도 내비쳤다.
지금까지도 고속도로가 직접 닿지 않는 까닭에 첩첩산중이라는 수식어가 태백만큼 잘 어울리는 곳도 없을 것이다. 특히 겨울철 눈꽃열차가 통과하는 추전역(855m)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하는 기차역으로 유명하다. 또한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는 920m, 2000년대 들어 밝혀진 낙동강의 발원지는 은대봉 동쪽 1,235m에 위치한다. 태백시는 <동국여지승람>에 근거하여 황지연못을 낙동강 발원지로 보고 있다.

낙동강 발원지로 알려진 황지연못.
태백과 정선, 그리고 영월의 경계가 만나는 관문인 만항재.
북유럽을 닮은 만항재 하늘숲공원 산책

함백산(1,573m) 서쪽에 위치한 만항재는 국내에서 도로가 통과하는 가장 높은 고갯길이다. 태백과 정선, 그리고 영월의 경계가 만나는 관문이기도 한 만항재 정상에는 하늘숲공원이라 이름 붙인 이국적인 풍경의 작은 공원이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야생화가 피어나는 하늘숲공원의 겨울은 눈꽃으로 장식된다. 키가 큰 낙엽송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공원에 눈이 내리면 마치 북유럽의 노르웨이나 핀란드의 어느 숲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사방이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이국적인 풍경은 현실감각을 무디게 만들어버린다. 하루나 이틀 전 눈이 내렸다면 낙엽송 숲으로 몇 걸음만 걸어 들어가도 이처럼 환상적인 설국을 경험할 수 있다.
기왕 만항재를 방문할 예정이라면 정선의 사북과 고한을 거쳐 만항재로 이어지는 산간도로를 달려볼 것을 권한다. 구절양장처럼 이어지는 산길을 한 굽이 돌 때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설경은 도심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산촌 드라이브를 만끽하도록 해준다. 이른 아침이거나 혹은 해가 질 무렵이라면 빽빽한 아름드리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드라이브 코스 주변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만항재 정상의 하늘숲공원에 전시된 야생화 사진.
주목 군락지, 천년을 이어온 태백산의 신비

평소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태백산 겨울 산행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백두대간의 척추가 통과하는 태백산은 지난 2016년 8월 오랜 기다림 끝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 명성만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산세가 많이 험할 것 같지만 태백산은 초심자도 어렵지 않게 도전할 수 있는 산이다. 탐방로 역시 잘 정비되어 있어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정선에서 만항재를 넘어 태백으로 접어들면 곧 유일사 매표소를 통과하게 된다. 유일사 매표소는 당골광장과 함께 태백산 산행의 들머리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장소인데, 최고봉인 장군봉(1,567m)과 일출 감상 포인트로 알려진 천제단을 찾아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기도 하다.
유일사 매표소에서 시작되는 탐방로는 경사가 완만할 뿐 아니라 거리(편도 3.5km)도 짧은 편이어서 2시간 남짓이면 천제단에 도착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출발해 20분 정도 올라가야 하는 가파른 포장길을 따라 태백사까지 오르면 첫 고비는 넘긴 것이다. 여기서 다시 40분가량 오르면 유일사를 통과하게 되는데 태백산의 진면목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맘때면 천제단과 장군봉의 장엄한 일출과 함께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 간다는 주목 군락지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산꾼들이 태백산으로 모인다.

태백여행의 백미로 손꼽히는 눈꽃열차.
태백산 정상에 위치한 천제단.
옛 탄광촌의 추억을 찾아서

태백을 비롯해 정선, 문경, 봉화, 청송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간지방은 여러 곳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강원도 태백은 1960~70년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던 탄광의 역사와 함께 두메산골의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산촌이기도 하다. 과거 태백을 비롯해 정선, 삼척 등지가 석탄산업으로 크게 발전하자 전국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고, 6·25전쟁이 끝난 직후 인구가 수만 명에 불과하던 태백은 시로 승격되기에 이른다. 1980년대 말에는 태백 인구가 무려 11만5,000여 명에 달했을 정도라고 한다.
태백시 철암동에는 석탄으로 흥하던 그 시절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철암동에만 시 전체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 있었으니 그야말로 철암동은 탄광 노동자들의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겠다. 태백시는 텅 빈 건물로 남겨져 있는 철암동의 건물들을 엮어 철암탄광역사촌을 조성했다. 하천 위로 기둥을 세워 건물의 주거공간을 넓힌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인 ‘까치발 건물’은 한정된 땅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소화하기 위해 짜낸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다방과 식당, 슈퍼 등 옛 간판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 안에는 ‘아트 오브 철암’, ‘호남슈퍼갤러리’ 등 철암동의 과거와 추억을 복기할 수 있는 공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철암탄광역사촌 인근에는 태백 8경으로 꼽히는 구문소(求門沼·천연기념물 제417호)가 위치한다. 황지연못에서 용출되어 흘러온 물이 낙동강 상류인 구문소에 이르러 바위를 뚫고 지나가면서 거대한 석문을 만들어 절경을 이루었다. 이곳에서는 석회암 지대가 빗물이나 지하수의 영향으로 침식되면서 이루어진 카르스트 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

철암탄광역사촌의 까치발 건물.
추억 돋는 두메산골의 먹거리

태백의 명소들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면 마지막으로 미식 나들이를 떠나보자. 태백을 먹여 살린 특산품은 누가 뭐래도 연탄이다. 지금은 다양한 에너지원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지만 태백에서 생산한 연탄에 구워 먹는 소고기는 추억의 한 자락을 떠올리게 만드는 존재가 아닐까. 어딜 가나 맛있게 먹었던 여행이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연탄불 곁에서 몸을 녹이며 고기를 구워 먹던 기억,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옹심이(새알심) 한 그릇으로 속을 데웠던 기억. 겨울에 찾은 태백의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 있는 이유가 아닐까.

석탄도시 태백의 한우 연탄구이.
감자와 감자녹말로 만든 감자옹심이(새알심).
태백 동점산업단지

태백시 동점동 산 175 일원에 위치한 총 12만1,806㎡ 규모의 동점산업단지. 태백시가 총 사업비 361억여 원을 들여 2018년 7월 조성했다. 동점산업단지는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본사 이전 보조금(최대 5억 원), 투자설비 보조금(최대 20억 원), 부지매입 보조금 외에도 고용 및 물류보조금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므로 향후 유망 업종의 기업들로 채워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