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사

역사 속 마늘과 한·중 마늘 분쟁

박홍현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외식경영학과 명예교수, <우리 역사 속의 마늘> 저자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 공사에서 마늘이 일상 식량처럼 제공됐고 알렉산더 대왕의 병사들에게도 전장에서 지치지 않는 활력을 주기 위해 마늘을 지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로부터 5,000년이 지난 2002년, <타임>지는 마늘을 10대 건강식품 중 하나로 선정했다. 사신 접대 기록에서 무역분쟁까지 국제관계 속 마늘을 따라가본다.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한 굴에 살면서 늘 신웅(환웅)께 빌면서 인간이 되기를 발원했다. 신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단과 마늘 스무 매를 주었다.”
일연이 편찬한 역사서 <삼국유사> 고조선 편의 일부다. 하지만 한나라 장건이 서역에서 마늘을 들여왔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그 후일 테니 단군신화 속 웅녀의 마늘은 산마늘로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마늘이 언제 전래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일본서기>에 따르면 일본이 한반도와 통상할 때 전래되었다고 하니 그전인 4~5세기경 이미 우리나라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연행사의 기록으로 보는 마늘 교류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중국에 파견한 연행사나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를 통한 교류가 활발했다. 중국과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거나 사신이 올 때의 기록을 보면 그때의 식문화를 대략 이해할 수 있다. 연행사는 중국으로 갔던 사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려시대부터 19세기 말 원·명·청에 공식적으로 연행을 갔던 횟수가 600여 회에 달하는데 당시의 여정을 기록한 내용이 많이 남아 있다. 시대와 기록자의 관점에 따라 기록된 내용은 다르지만 대체로 중국과의 외교관계, 그곳의 문물제도, 중국인의 생활 양상, 상대 인사와의 교유, 여행 견문 등이 담겨 있다. 특히 식생활을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해서도 나온다. 대부분 음식을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식재료를 제공받아 동행한 요리사가 조리해서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노가재연행일기>는 조선 숙종 38년(1712)에 청나라에 다녀온 기록인데 식재료 중 하나로 마늘과 생강을 제공받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정조 4년(1780)에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는 청나라 건륭제 고희연을 축하하기 위해 열하(러허)를 견문하고 소상하게 기록한 연행일기다. <열하일기>에는 정식 사신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마늘과 생강을 지급하지 않아 차등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마늘은 교역품이 아니라 접대품목

일본 대마도는 조선 초기부터 거의 매년 사절을 파견하여 예물을 바치고 그 대가로 쌀과 콩 등을 받아갔다. 태종과 세종은 대마도주에게 다양한 물품과 식재료를 보냈는데 여기에 마늘이 포함되어 있었다. 향신료 중에서 마늘만을 계속 보내준 걸 보면 대마도 사람들도 조선 사람의 식생활과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조 8년(1462) 제주를 출발한 양성 일행이 표류하여 유구국(오키나와)에 이르렀을 때 양성은 이곳에서 보고 경험한 것을 장면별로 기록했다. 식생활에 대한 내용 중에는 유구국 사람들이 훈채(파나 마늘처럼 특이한 냄새가 나는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성종 8년(1477) 2월에 출항했다가 유구국에 표류했던 김비의 일행도 마늘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14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기진맥진하고 있는데 섬사람이 쌀죽과 함께 마늘을 먹여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들로 볼 때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이웃 국가들이 대부분 마늘을 식재료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늘은 생산량이 자급자족할 정도여서 교역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단지 이웃 나라와 통신사를 통해 교류할 때 접대품목 중에 마늘을 기록한 것을 보면 중요 품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이웃 국가 간 교류가 아주 적었으며 교류 내용도 거의 예물 중심이었다. 귀금속이나 피혁, 약품, 의복 재료 등이 주를 이루었다. 장기간 이동 시 변질되기 쉬운 식품이 교역품이 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도 마늘은 주 식재료가 아니기 때문에 재배에도 제한이 많았을 것이다.

2002년 한·중 마늘분쟁

전 세계 마늘 생산량의 65%는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되며 그중 거의 반을 중국이 생산한다. 그런데 마늘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는 한국이다. 브라질, 이탈리아 등 마늘을 많이 먹기로 손꼽히는 국가의 1인당 연간 소비량보다 6~7배나 많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2021 농업전망>에 따르면 2020년 1인당 마늘 소비량은 7.2kg이다.
역사 속 마늘과 달리 현대의 마늘은 중요한 교역품 중 하나다. 마늘을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 간에 느닷없는 무역전쟁이 발생한 적이 있다. 2002년의 한·중 마늘분쟁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국내 마늘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중국산 마늘에 관세율을 30%에서 315%로 대폭 올리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중국은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보복조치로 맞섰다. 중국산 마늘 수입액의 50배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하자 우리 정부는 백기투항을 하다시피 했으니 우리 정부로서는 흑역사가 따로 없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산 마늘의 미국 수출길이 끊기자 한국산 마늘이 반사효과를 얻으며 수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니 마늘 새옹지마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