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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규제의 새로운 방향

강병구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WTO협정 부속서 1A에 포함된 무역기술장벽 협정문(Agreement on Technical Barriers to Trade)이 발효됐다. 투명성의 원칙에 입각해 회원국의 비관세 장벽 중 하나인 무역기술장벽(TBT)을 제거하는 것이 이 협정문의 주요 목적이다. 이에 따라 회원국은 기술규제의 신설이나 개정이 이루어질 때 TBT위원회에 통보를 해오고 있다. 무역으로 성장해온 한국은 WTO TBT체제 이후 수출 상대국의 기술규제를 뛰어넘거나 우회하는 방안을 통해 TBT를 극복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신기술이나 환경 분야, 4차 산업혁명과 전자무역 등은 기술규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WTO 출범 이후 2019년 기준 25년간 142개 회원국이 기술규제를 통보한 건수는 총 3만6,641건이며 2019년 통보 건수는 전년 대비 9% 상승한 3,337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25년간 선진국과 개도국 간 신규 TBT 통보문 발행 변화를 살펴보면 WTO 출범 초기에는 미국, 유럽 등 전통적 기술강국들이 통보문 발행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나 2004년부터 아프리카와 중남미 회원국 등 개도국의 신규 통보문 발행 수가 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2019년의 TBT 통보문 발행 비중은 개도국이 63%, 최빈 개도국이 21%를 차지한 데 비해 선진국은 16%에 그치고 있다.

분야별·목적별 TBT 동향

TBT 통보문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2017년, 2018년에는 식의약품 분야와 화학 세라믹 분야가 각각 1, 2위를 차지한 반면 2019년에는 식의약품 분야와 전기전자 분야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규제 목적은 ‘인간의 건강과 안전’, ‘소비자 보호’가 누적뿐 아니라 2019년 신규 통보에 있어서도 압도적 건수를 차지하고 있다. 신흥국들의 제조업 중시 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철강제품 등 주요 품목의 공급과잉 현상을 불러왔다. 특히 중국이 자국 내 조강능력을 대폭 확대하고 내수에서 소모되지 않은 많은 양의 철강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면서 세계시장에서 철강제품의 가격이 급락하고 공급과잉에 따른 치열한 경쟁을 불러왔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들은 저가의 중국산 철강제품이 자국 내로 들어와 자국 내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인식하에 중국산 제품의 수입 규제 조치를 취하게 되었고, 그 결과 다수의 통상분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지난 25년간 신규 특정무역현안(STC; Specific Trade Concerns)을 TBT위원회에 가장 많이 제기한 국가는 1위 EU(277건), 2위 미국(271건), 3위 캐나다(127건)이며 한국은 68건으로 8위를 기록하고 있다. STC를 가장 많이 제기받은 회원국은 1위 EU(129건), 2위 중국(72건), 3위 미국(52건)이며 한국이 37건으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9년도 신규 STC의 경우 선진국이 13건(37.1%), 개도국과 선진국이 공동으로 9건(25.7%), 13건(37.1%)은 개도국이 독자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신규 STC의 유형을 살펴보면 투명성(통보 또는 의견을 제시할 기회 부족), 불필요한 무역장벽, 국제표준과의 불일치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TBT 통보문 발행 건수 (자료: 2019/2020 무역기술장벽(TBT) 연례보고서, 국가기술표준원, 2020)
기술규제, 기술선진국의 전유물에서 개도국 중심 제기

이와 같은 동향은 과거 기술선진국의 전유물로 간주되던 기술규제가 이제 개도국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개도국 시장 진출의 장벽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도국의 경우 기술규제와 관련하여 투명성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한국 정부를 통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며 정부는 이러한 기업의 요구를 파악하여 관련 개도국과의 규제 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 이외에도 개도국의 기술규제는 국제표준의 채택과 관련이 높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업은 항상 자사의 기술과 관련된 국제표준 동향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개도국들의 적극적인 STC 제기는 이들이 열심히 수출시장 진출을 시도한다는 것으로 우리 기업들과 경쟁이 발생할 수 있는 시장의 경우 이들 개도국의 동향 또한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한편, STC의 경우 한국이 제기받은 건수가 4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국제통상이 중요한 한국에 좀 더 국제적 기준에 맞는 통상정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데이터는 유럽연합(EU) 디지털 전략의 가장 핵심 요인이다. 유럽집행위원회는 유럽의 데이터 거버넌스에 대한 규제를 제안한 상태다. 사진은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집행위원회 건물.
신기술분야의 기술규제에 대한 분석

EU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향후 국제통상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와 관련된 EU 디지털 전략의 핵심은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전략이다. 이 중 데이터는 가장 핵심 요인으로 유럽집행위원회는 유럽의 데이터 거버넌스에 대한 규제를 제안한 상태다. EU는 데이터 기반 혁신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강한 법적 기반을 통한 데이터 단일시장을 확립하여 데이터 자주권과 EU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데이터 거버넌스법의 목적은 데이터 매개체의 신뢰를 증진하고, EU 역내에서 데이터 공유방안(Data-Sharing Mechanism)을 강화해 데이터의 가용성(Availability)을 확대하는 데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분절된 정책, 데이터 가용성, 시장 불균형, 데이터 운용성 및 품질, 데이터 거버넌스, 데이터 인프라 및 기술, 개인의 권리행사, 기술 및 데이터 활용능력, 사이버 보안 등이고 이를 위한 해결책은 교차 데이터 거버넌스(A Cross-Sectoral Governance Framework for Data Access and Use), 유럽의 산업별 데이터 스페이스 구축, 데이터 생산·처리·활용 역량과 인프라 투자, 개인의 데이터 역량 강화와 중소기업 지원,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국제협력 등이 있는데 이 중 TBT 이슈로서 검토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선을 넘는 데이터 거버넌스’와 ‘산업별 데이터 스페이스 구축’일 것이다. 선을 넘는 데이터 거버넌스는 강제적 데이터 공유를 위한 규제로서 EU 외부 국가와 기업이 EU에서 사업을 한다면 EU의 규제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산업별 데이터 스페이스는 보건, 환경, 에너지, 농업, 이동(Mobility), 재무, 제조, 행정 및 기술에 대한 것으로 이는 데이터 규제체계, 클라우드 인프라, 데이터 상호운용성 규약 등 규제와 기술의 결합체로서 TBT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편, EU의 그린딜 전략은 기후 및 환경위기 극복을 통한 EU의 자원보호·보존·증진 및 국민의 생명과 건강보호가 정책의 목적이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추진전략이다. 이를 이행하기 위하여 친환경 순환경제를 위한 산업전략을 추진하는데 순환경제는 EU의 주요 산업별(자동차·전기전자·섬유의류·건축물·포장재·플라스틱 등) 정책방향을 결정하게 한다. 이와 관련된 주요 이슈는 먼저 유럽 연비측정방식(NEDC)을 2021년부터 국제표준배출가스 측정방법(WLTP)으로 변경하여 승용차 및 소형상용차 이산화탄소(CO₂) 배출 성능 표준의 입법을 예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탄소국경조정에 따라 EU시장 수출기업은 자체 사업장과 협력사 사업장의 탄소배출량 저감 및 탄소발자국에 대한 관리가 요구된다. 또한 화학물질의 등록·평가·허가·제한에 관한 제도인 REACH(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zation and Restriction of CHemicals) 강화를 통해 모든 제품의 화학물질 정보를 관리기관이 통합관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강력한 화학물질 정책 도입이 가능한 상황이 됐고, 순환경제 실행계획의 일환으로 지속가능 제품설계를 위한 에코디자인 규제의 대상 범위 확대 및 순환성 강화를 위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그 대상 제품은 전자, 정보통신기술(ICT), 섬유, 가구이며 중간재는 철강, 시멘트, 화학물질이다.

EU는 연비측정방식(NEDC)을 2021년부터 국제표준배출가스 측정방법(WLTP)으로 변경하여 승용차 및 소형상용차 이산화탄소(CO₂) 배출 성능 표준의 입법을 예정하고 있다.

디지털화와 신기술이 통상의 방법에 있어서 변화를 주고 있다. 신기술은 국경을 넘는 혁신적인 협력을 통한 서비스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디지털 플랫폼과 물리적 기기를 이용하여 이들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방안을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통상은 선진국의 고용, 소비자 복지, 혁신, 생산성, 경제성 등에 크게 기여하지만, 특정 국가 서비스만 받게끔 강요하는 지역화 장벽, 개인정보의 국외 이전 규제 등의 프라이버시 또는 개인정보보호장벽, 불법 저작물에 대한 지식재산권 장벽, 정보 필터링과 같은 온라인 검열 등이 디지털 통상 성장의 장애요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WTO협정에는 디지털화 상품(Digitized Products), 디지털 상품(Digital Products), 전자적 전송(Electronic Transmission)에 대한 정의가 없으나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FTA)에서는 디지털 상품에 대하여 기존 체제의 상품 및 서비스를 의미하지 않으며, 상업적 판매와 유통을 위하여 전자적으로 코딩되고 전송이 가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문자, 영상, 이미지, 음성기록 혹은 다른 상품을 의미한다고 정의를 하여 ‘디지털 상품(Digital Products)’과 ‘상품(Products)’은 통상체제 내에 서로 다른 사안임을 명확히 했다. 이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 등에서 같은 정의가 사용되고 있다. 싱가포르-칠레-뉴질랜드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Digital Economy Partnership Agreement)에서 디지털 시스템의 상호 운용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표준은 개방형이 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미국-일본 디지털무역협정(USJDTA; US-Japan Digital Trade Agreement)과 USMCA에서는 금융서비스를 포함한 모든 데이터의 국가 간 이동을 허용하고 데이터 현지화를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디지털 통상의 규범이 확립되는 과정에 있으며 그에 따라 협정상 디지털 기기, 디지털 장치, 디지털 상품화 등에 대한 규정이 포함되고 이것이 국제통상에 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까지 적용 가능한 규범에 관한 명확한 구분은 없는 상태다. 디지털 통상 규범은 암호화 기술, 인공지능, 사이버 보안 등 신기술 규범을 포함하고 다자 거버넌스 확립과 표준화를 통한 기술확산 협력을 규정하고 있다.
한편 WTO TBT위원회에 중국, 베트남의 사이버보안법에 대해 STC가 제기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신기술 관련 표준화 회의에서 국제적 공조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화는 과거 물품으로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 서비스 거래에 관한 일반협정(GATS)의 대상이 되도록 하여 사이버 보안, 데이터 상호 운용성, 개인정보보호 등이 주요 표준화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신기술은 GATS와 GATT 적용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3D 프린팅의 경우 CAD 파일이 타국으로 전송될 때는 디지털화된 디자인 서비스가 제공됨에 따라 GATS가 적용된다. 그런데 이 파일이 3D기술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자가 사용할 경우에는 물품이 전자적으로 전달이 된 상황으로 GATT가 적용된다.
만약 제품 디자인을 플랫폼에 올려놓고 소비자가 이를 내려받아서 생산에 활용할 경우 국경을 건너는 기업과 소비자간(B2C; Business to Customer) 거래가 폭증할 것이고, 만약 누군가가 프린트 숍에서 이를 생산하고 소비자에게 판매할 경우에는 기업과 기업간(B2B; Business to Business) 거래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것들에 대한 통상 규범이 필요할 것이고 표준 및 적합성 평가가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데이터의 이동과 비즈니스 모델이 오프라인에서 존재하는 경우, 그리고 그 모델이 물품생산과 관련된 경우에는 어떻게 정보교환과 생산시스템이 관련된 적합성 평가절차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까도 논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기술표준원은 2020년 6월 24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 회의실에서 TBT 대응활동 참여기업 관계자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무역기술장벽(TBT) 대응전략 간담회'를 개최하고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정부와 산업계의 TBT 대응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신기술·디지털 통상 관련 기술장벽에 선제적 대응 모색

TBT는 어느 한순간 갑자기 중요해지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제기되는 것으로 전통적 산업 분야와 신기술 분야에서 기존 방식과 함께 새로운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기존에 진행하고 있는 대응시스템에 대한 성과를 검토하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이 부각되는 신기술과 디지털 통상 관련 기술장벽 대응방안도 선제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EU가 기술규제 REACH를 도입할 때에는 수세적 입장에서 제시 기준을 충족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4차 산업혁명 관련 신기술 규제는 제품영역이 확대되면서 그 영향이 지금보다 훨씬 클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는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규제는 드론이나 드론선박의 자율시스템 규제로 확대될 것이고, 스마트시티에 적용되는 기술에 대한 규제는 인간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통합·융합 시스템에 대한 규제 이슈를 선제적으로 발굴·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관련 기술규제 전문가 집단의 구축을 조기에 완료하고 주요국과의 대응협력체계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2015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제기한 디지털 통상의 장벽 요인들 중 표준과 관련된 명백한 이슈는 없다. 다만 새로운 통상규칙을 논함에 있어서 표준과 관련해 기기와 콘텐츠가 네트워크에서 상호 운용성을 가질 수 있도록 글로벌 표준을 개발해서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향후 이들 장애요인 중 국가 간 데이터 전송, 데이터 현지화 등 주요 통상 이슈로 제기될 문제를 TBT 이슈로 이끌기 위해서는 관련된 표준과의 연계가 필요할 것이다. 이와 같이 디지털 통상의 규범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규제 이슈를 우선 발굴하는 것이 향후 TBT 대응을 선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국가기술표준원의 해외 기술규제 대응 절차

  1. 1단계 정보 수집

    WTO TBT 통보

    FTA TBT 통보

    재외공관, 업종별 협회

    기업(해외지사)

  2. 2단계 조사 분석
    일반 분석

    WTO TBT 통보문 번역 규제 주제내용 요약 관련 산업별 분류 → TBT 포털 게시 및 업계 전파

    심층 분석

    국내외 규제와의 비교분석 예상 피해업계 파악 규제 극복 시경제효과 규제활동 가능성 분석 → 중요 규제 선별 후대응 전략 수립

  3. 3단계 전략 수립
    대응전략 수립

    규제국가별 대응전략 업종별 대응전략 규제유형별 대응전략

    업계 의견 수렴

    규제 피해 규모, 업계 대응 요청사항 등

  4. 4단계 대응
    외교적 대응

    WTO TBT위원회 활동, FTA TBT위원회, 양·다자 협의

    상호협력체계 구축

    MRA, MOU 등개도국 기술·시스템 전수

    컨설팅, 포럼 , 홍보

    업종별 맞춤형 컨설팅 TBT 포럼, 설명회

3단계, 4단계 Feedback 자료: 2019/2020 무역기술장벽(TBT) 연례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