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사

트러블 메이커, 옥수수

박정호 명지대 경제학과 특임교수

우리는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오래전부터 우리 식탁을 점령해 우리가 매일매일 먹는 것이 있다. 이것은 전 세계 역사를 바꿔놓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세계 물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바로 ‘옥수수’다. 이러한 설명을 들으면 옥수수를 매일 먹는 사람이 어디 있나 싶을 것이다.
그러나 식용유의 주원료는 옥수수이며, 전분으로 만든 과자, 빵, 인스턴트식품 역시 옥수수를 원료로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작물이니만큼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어떤 의미에선 고기를 섭취하는 것 역시 간접적으로 옥수수를 섭취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옥수수는 인간보다 가축을 먹이기 위해 재배되는 양이 더 많기 때문이다. 옥수수는 다른 작물에 비해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높은 작물이다. 게다가 옥수수는 이삭, 줄기, 잎 등 모두를 가축의 사료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배 전 과정이 기계화돼 가장 경제적인 작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옥수수는 밀, 벼와 함께 세계 3대 식량 작물로 불리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다.

유럽, 미국 등 전파되는 곳마다 인명피해

옥수수가 처음부터 모든 인류에게 애용되는 작물은 아니었다. 옥수수의 원산지는 중남미로 신대륙이 발견되기 전에는 중남미 주요 문명이 크게 발전하는 데 기여한 작물이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옥수수 덕분에 중남미 사람들은 일찍부터 농사 이외의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잉여 시간을 확보했고, 이 덕분에 중남미 고대 문명이 크게 발달할 수 있었다. 옥수수는 유럽으로 넘어와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유럽의 대기근이 있을 때마다 옥수수는 유용한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16세기에는 동유럽과 북아프리카까지 보급됐고, 이후 일본을 거쳐 한국에도 전해지게 된다. 명나라 이시진이 지은 의서 <본초강목>에는 옥수수에 대해 위 기능을 강화하고 소변을 편안히 보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기록돼 있으며, 옥수수 속대를 끓여 먹으면 치통을 억제한다는 민간요법이 널리 활용되기도 했다.
옥수수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어 전 세계로 빠르게 전파됐지만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영양 측면에서 비타민B 복합체 가운데 하나인 나이아신(B₃)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옥수수가 전파되는 지역마다 문제를 일으켰다. 18세기 유럽 국가 중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고 있던 국가에서는 나이아신이 부족할 때 발생하는 질병인 펠라그라가 확산돼 발열, 설사뿐만 아니라 사망에 이른 사람들도 많았다. 20세기 미국에서도 해외에서 이주해온 가난한 사람들이 옥수수를 주식으로 생활하다 펠라그라에 의해 사망한 숫자가 10만 명에 달했다.

미국의 옥수수 지배력은 중국에 가장 큰 부담

옥수수가 다시 주목받게 된 계기는 환경문제 때문이다. 옥수수를 원료로 바이오에탄올을 만들어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자는 이유로 더더욱 옥수수 재배량을 늘려왔다. 에탄올 생산 증가와 이에 따른 연료용 옥수수 소비 증가는 미국 내 옥수수 가격 상승을 유발해 우리나라 배합사료 산업 및 축산업계에 큰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2005년 당시 부셸(Bushel)당 1.89달러였던 것이 2007년에는 6달러까지 상승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옥수수 수급은 미국에 의해 좌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세계 옥수수 총생산량의 40%, 총 수출량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옥수수 생산국이다. 또한 옥수수를 단순 재배해 수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옥수수 종자에 대해서도 국제적 지배력을 갖고 있어 미국의 종자 수출에서 옥수수 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달한다. 미국의 옥수수 종자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로는 이탈리아, 캐나다, 프랑스, 스페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미국의 옥수수에 대한 지배력은 중국에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돼지고기는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육류 중 하나다. 이 때문에 돼지 사료로 쓰이는 옥수수 수요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물론 중국 내 옥수수 생산량이 증가하지만 수요가 워낙 많은 관계로 미국산 등 옥수수 수입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중국 농가 역시 수입산 옥수수를 더 선호하는데 이는 운송비를 고려해도 가격 측면에서 수입산이 국산보다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GMO 옥수수 유통에 따른 통상분쟁 야기

옥수수는 우리가 인지하는 것보다 국제적인 파급효과가 높은 농작물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옥수수를 기반으로 한 통상분쟁마저 야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유전자재조합식품(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을 기반으로 한 통상분쟁이다. 미국의 경우 벌써 수년 전부터 GMO 옥수수를 유통해 전세계 재배 물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2003년 EU가 유전자변형(GMO) 농산물 금수 조치를 내렸을 때 미국과 아르헨티나, 캐나다 등은 EU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GMO가 안전하다는 사실이 널리 인정되고 있는 추세임에도 EU는 1998년 10월부터 GMO 식품의 수입 인허가를 계속 유예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무역장벽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 피해를 준다고 주장한 것이다. EU의 GMO 농산물 금수 조치에 대한 WTO의 분쟁조정 절차가 3년 3개월여 만에 EU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EU의 GMO 농산물 금수 조치는 국제 무역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는 판결이었다. 이후 금수 조치는 철회되었지만 여전히 유럽과 일본 등은 GMO 옥수수의 유통을 철저하게 규제하고 있는데 특히 EU는 GMO 식품의 경우 반드시 표시를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 같은 옥수수를 둘러싼 통상분쟁은 그만큼 옥수수가 우리 인류의 편익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해온 농작물이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