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통상

국제 통상 분쟁,
자국법에 근거해 해결이 가능할까?

박정준 강남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4년의 브레튼우즈 회의,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현 세계은행) 탄생,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의 모태(母胎)인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발효까지 경제사와 무역사의 흐름을 동시에 바꾼 이 결정적 시기마다 미국과 유럽은 ‘원 팀’이었다. 그러나 보호무역의 고비 앞에 영원한 동지란 허상에 불과했다.

2017년 본격 과열된 미·중 무역전쟁은 진행 중이며 그 종전 시점을 예단할 수 없다. 미국에 수입되는 세탁기 및 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와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 관세,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미·중 관세전쟁까지 하나하나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일각에서는 보호무역조치를 과용한 미국의 정책기치에 대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으로 생각도 하지만, 이는 오해다. 위 조치들은 모두 미국 내 무역확장법과 통상법에 근거해 나름의 합법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를 지도자 개인의 일탈이나 행정부의 몽니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 연임 실패와 바이든 대통령 취임으로 미·중 무역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지만 가시적인 변화는 없다.
WTO가 여전히 제 기능을 회복하지 못해 미·중 보호무역 충돌 중재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대비해 오히려 자국법 정비에 더욱 신경 쓰는 모양새다. 최근 상원을 통과한 ‘미국혁신경쟁법(USICA)’이 대표적이다. 앞서 미국 중심의 대중 압박에 맞서고자 중국도 ‘반외국 제재법’을 통과시키며 서방에 대한 보복법 체계를 마련했다. WTO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각국이 경쟁적으로 새로운 입법을 통해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는 ‘개인플레이’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과거 미국과 유럽의 사례는 이 시점에서 살펴볼 가치가 충분하다. 또한 각국의 보호무역성 입법이 난무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긍정적일 수 없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통상법 301조 신설

1974년 미국은 ‘통상법 301조’를 신설하였다. 통상법 301조는 301~310조를 포괄하여 지칭하는 것으로, 무역 상대국의 부당한 대우가 확인될 시 대통령에게 수입제한조치로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외국의 무역관행에 대한 조사 및 제재 명령권은 이후 1988년 종합무역 및 경쟁법(OCTA)을 통해 미국무역대표부(USTR)로 이전됐으나 미국의 일방적인 보복조치가 용인되고 대상에 제한이 없으며, 이후 강화된 슈퍼 301조, 지식재산권 관련 스페셜 301조로 이어졌다는 점 등에서 정당성에 많은 의문과 비판이 따르고 있다.

유럽의 도전

국제기구 WTO 출범 전에 도입된 것이지만 301조는 분명 미국의 지나친 욕심이었다. 객관적으로 미국 한 나라에 과도한 무역제재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법인 WTO 분쟁해결협정에서 회원국 간 무역마찰을 다룰 때는 반드시 WTO를 거치도록 명문화하고 있어 미국이 자국법에 근거해 독단적인 분쟁해결에 나서는 것은 논란을 야기한다. 이러한 미국에 도전한 것이 유럽이다. 유럽은 1998년 11월 301조가 WTO협정에 위배된다며 미국을 WTO에 제소했고 우리나라도 제3국 자격으로 참여했다. 유럽은 304조를 통해 미국이 WTO 절차와 관계없이 자국 피해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306조에서 보복 수준을 WTO 분쟁해결기구(DSB)가 아닌 USTR이 결정하도록 한 점, DSB 승인 없이 보복이 가능하게 한 305조 등을 문제 삼았다. 특히 WTO협정에 합치하도록 국내법 정비를 의무화한 WTO 마라케시협정에 301조의 존재 자체가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301조상 USTR에 부여된 재량이면 WTO협정에 합치하는 운영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현재 여전히 301조가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은 승소했다. 패널은 301조 자체는 일견(Prima Facie) 위반 소지가 있으나 미국이 우루과이라운드이행법과 대통령 성명을 통해 301조를 WTO에 합치하게 운영하겠다는 서약을 했고, 이번 과정에서 미국 진술도 이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일단 문제없다고 결론 냈다.

보호무역주의 격화와 WTO

자유무역체제 탄생에 힘을 모았지만 바나나, 301조, 항공기 등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 간 무역전쟁은 늘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그렇다고 그 결과가 늘 긍정적이었는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앞선 결과는 301조 이전에 DSB의 역할이 견고했고 이에 대한 미국의 존중을 기대한 데서 기인한다. 지금은 당시와 다르다. 상소기구는 기능마비 상태고 WTO의 위상 역시 많이 약화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국은 보호무역을 뒷받침할 자국법 도입에 꽤나 적극적인 모양새다. 그러기에 WTO 재건에 대한 노력과 주변국의 입법 모니터링을 더욱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미·유럽 간 301조 무역분쟁(DS 152)1)

  1. 1975.1 : 미국 301조(1974년 통상법) 발효
  2. 1988.8 : 미국 301조 (1988년 종합무역 및 경쟁법) 강화
  3. 1994.12 : 미국 우루과이라운드이행법 및대통령 성명 발효
  4. 21995.1 :WTO 설립
  5. 1998.11 : 유럽, 미국을 WTO에 제소
  6. 1999.12 : WTO 패널보고서(미국 승소) 회람
  7. 2000.1 : WTO 패널보고서 채택
1) DS 152: EC vs. US - Section 301 사건 자료: 국제법 판례·통상법 해설 포털(https://disputecase.kr/)

참고 : <국제통상분쟁사례이해>(박형래, 2010),
<WTO통상분쟁판례해설(2)>(김승호, 2010) 및 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