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아카데미

메르켈 정부 16년, 그 이후의 독일

강유덕 한국외대 Language and Trade 학부 교수

독일은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9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렇다 보니 근대에 산업생산력을 갖춘 후 무역과 물류의 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반면에 독일은 제1·2차 세계대전과 같은 유럽 현대사의 질곡을 거쳤고, 특히 동서 냉전의 첨예한 갈등의 무대가 된 장소다.
전후에는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부흥을 달성했고 1990년 동서독 통일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오늘날 독일은 EU의 중심국가로 독일이 유럽 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의 중앙으로

오늘날 독일은 세계 4위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으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5,000달러에 이르는 선진국이다. 특히 유럽연합(EU)의 중심국가로서 EU 회원국 중 경제규모와 인구가 가장 큰 국가다.
최근 독일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이유는 메르켈 총리가 퇴진했기 때문이다. 16년의 총리직 수행 중 메르켈 총리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재정위기, 우크라이나 사태와 난민위기, 그리고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굵직한 위기들을 이겨냈다. 같은 기간 프랑스는 4명의 대통령(총리 8명), 이탈리아는 9명(재선 포함)의 총리를 거쳤고, 양당제인 영국도 5명의 총리가 정부를 이끌었다. 메르켈 총리가 집권한 2005년 당시 독일은 유럽 내에서 성장률이 가장 낮은 국가였다. 통일 후유증으로 장기간 저성장·고실업에 시달리면서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당시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20%를 웃돌았지만 독일 기업들은 정작 국내 투자보다는 막 체제전환을 마친 동유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취임 이후 메르켈 총리는 공약대로 경제개혁을 진행했고, 유럽통합에 대한 독일의 적극적인 참여와 대미관계 개선을 주도했다. 이후 여러 난제에서 국내외 협상을 주도하면서 독일의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경제에 있어서도 독일은 견조한 성장률과 낮은 실업률, 안정적인 재정 관리로 모범 국가로 탈바꿈했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독일인 중 75%는 메르켈 총리 시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독일의 산업 네트워크를 통해 전체 유럽이 북미 또는 아시아와 연결

독일은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한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을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일은 EU 회원국 중 이례적으로 대(對)미국·대(對)중국 무역수지 흑자를 동시에 누리고 있다. 독일이 무역적자를 기록하는 국가들은 자원수출국(중동) 또는 독일의 투자대상국(중동부유럽) 등에 불과하다. 수출주도형 경제의 결과 독일은 2011~2020년 중 GDP 대비 6% 이상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독일 경제는 EU 총 GDP의 25.7%를 차지하는 큰 경제규모와 수출 지향성으로 인해 EU 경제에서 두 가지 독특한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독일의 경제상황에 따라 EU 전체의 경제성장률이 영향을 받는다. 즉 전체 EU 경제에 대한 견인력이 크다. 둘째, 독일 기업의 투자 결과 서유럽-동유럽 간에는 촘촘한 산업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독일의 수출이 5% 증가할 때 EU 회원국의 GDP가 0.6~0.7%p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중동부유럽→독일→세계’ 순서로 글로벌 공급망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즉 독일의 산업 네트워크를 통해 전체 유럽이 북미 또는 아시아와 연결되는 효과를 갖는다.

코로나19에도 독일과의 교역량 꾸준히 증가

2021년 우리나라의 대(對)독일 무역은 수출 111억 달러, 수입 220억 달러를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코로나19로 세계경제가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2020년 수출은 10.3%, 수입은 3.7% 증가했다는 점이다. 2021년에는 국제적 경기반등의 여파 속에서 수출과 수입이 더 크게 증가했다. 다만 대(對)독일 무역 구조가 수출에 비해 수입이 두 배 정도 많은 적자구조로 고착되었다. 그 원인은 상대적으로 수출이 부진한 반면, 수입은 급속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자동차·반도체·전자 등 한국의 주력 산업에서는 생산시설의 해외이동, 유럽의 경기, 환율 등의 요인으로 수출이 정체·감소한 반면, 자동차·기계장비·의약품·정밀화학재료 등의 수입은 크게 증가했다. 이에 지난 수년간 대(對)독일 무역적자는 연평균 120억 달러 내외로 고착화되어 구조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코로나19 직후 적극적 경기부양책 실시로 경기반등

독일 또한 코로나19 사태로 큰 타격을 받았다. 2022년 1월 말 기준 독일의 확진자 수는 864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0.3%에 이른다.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유럽 내 인접국에 비해서는 낮아 적어도 유럽 내에서는 방역에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2020년 독일 경제는 –4.6%의 역성장을 겪었다. 독일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직후 615억 유로 규모의 지원책을 발표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도입한 단축근무 지원제도를 재도입했다. 2021년 6월 GDP의 3.9%에 해당하는 1,300억 유로를 차세대 이동통신·인공지능(AI)을 포함한 디지털 경제에 투자하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독일은 유로존의 다른 국가에 비해 국가채무 수준이 비교적 낮기 때문에 대응여력도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2021년에는 2.7%의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하며 경기가 반등했고, 2022년에는 4.6%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그린딜 주도, 탈원전 추진

EU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유럽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추진 중이다. 이 계획은 얼핏 기후변화 대책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산업·에너지·교통·농업·공정 등 다양한 영역에서 관련 정책이 추진되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 계획을 주도하고 있고, 실제로 일찍부터 준비해왔다. 2011년에는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철폐하는 탈원전 일정을 추진해왔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이미 전체 전력공급의 40%를 상회한다. 따라서 독일은 산업 및 무역 구조가 비슷한 한국에 정책협력 대상국인 동시에 기술파트너이기도 하다. 또한 수많은 중견기업이 포진해 있는 만큼 수출확대뿐만 아니라 기업 차원의 기술협력 가능성이 높다.

현지인터뷰
최승훈 코트라 프랑크푸르트무역관 과장
Q 독일 진출 기업이 꼭 알아야 할 현지 관행이나 주의사항을 말씀해주세요.

A 독일 기업은 의외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한번 신뢰가 형성된 업체와는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 거래선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강해서 충동구매 가능성이 적으며 사실(Fact) 위주의 의사결정을 추구한다. 대부분 실무자 선에서 미팅 전에 상대방의 상품 및 기업 정보를 정확히 파악한다. 철저히 객관적인 자료 및 정보 위주로 판단하기 때문에 독일 기업과의 비즈니스 미팅을 준비할 때는 장황하게 상품을 홍보하기보다는 제품의 상세정보를 제공하고 전문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Q 독일에서 현재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제품이나 진출 유망 산업군을 소개해주세요.

A 환경, K뷰티 및 K푸드, K방역 분야가 독일에서 주목받고 있다. 독일의 소비 회복으로 신차 구매 수요가 늘고 전기차 보조금 지원 확대로 한국산 승용차, 특히 전기자동차 등 내구 소비재 수출액이 대폭 증가했다. 올해도 독일 내 친환경 정책이 더욱 확대됨에 따라 2차 전지와 전기차 분야가 유망한 산업군으로 손꼽힌다. K프리미엄이 형성되면서 한국산 색조화장품·마스크팩 등 화장품류와 홈쿠킹·가공식품 등 식료품류 수출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K방역이 주목받으면서 한국의 의약품과 진단시약 등 방역제품 역시 유망 산업군으로 분류된다.

비즈니스 에티켓
독일 비즈니스 에티켓 이것만은 꼭 알아두세요.

공식적인 자리의 인사는 남녀불문 악수
공식적인 만남에서의 인사는 남녀불문 손을 힘차게 잡고 악수하면서 상대와 눈을 맞춘다. 호칭은 이름이 아닌 성을 부르되 성 앞에 Herr(Mr.) 또는 Frau(Ms./Mrs.)를 붙이고, 직함이 있는 경우에는 직함을 꼭 붙여서 부르는 것이 좋다.

약속은 몇 주 전에 미리 조율
상담 일정을 정할 때는 몇 주 전에 약속을 잡아야 만날 수 있는 등 보수적인 면이 강한 편이다. 독일 기업과 미팅을 잡는 것은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우나 일단 잡히면 중도 취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몰토크보다 본론을 더 중시
독일인은 비즈니스 미팅을 할 때 스몰토크(Small Talk)가 적은 편이며, 본론으로 빨리 들어가려고 한다. 독일인에게 ‘눈치’ 또는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방법은 잘 통하지 않는다. 독일 문화는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편이라 파트너의 주장을 말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고 숨은 의도 등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주로 미팅 시간 내에 협의를 마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나친 접대는 지양
독일 기업의 윤리경영은 한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독일 바이어가 국내 방문 시에 지나친 접대로 거래가 성사되지 않기도 한다. 특히 신뢰관계가 형성되기 전에는 과한 접대를 조심해야 한다. 부담 없는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선물을 주는 시기가 중요하다. 협상이나 방문의 마지막 단계에서 선물을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