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대식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한국생산관리학회 회장 사진 한경DB
코로나19로 글로벌 가치사슬(GVC) 체계에 위기가 발생함에 따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할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 전략 마련이 절실하다. 각국 정부의 봉쇄조치 국면에서 제조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중요 협력사 직접 관리, 협력업체 네트워크 실시간 가시성 확보 등 기업 차원의 대응책과 기업들의 가치사슬 운영방식 재구조화 필요성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자.
기업의 공급망(Supply Chain)은 원재료 공급업체로부터 시작하여 최종소비자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제품, 정보, 자금의 흐름에 참여하는 모든 기업을 총괄적으로 일컫는 개념이다. 이 공급망에서 제품 기획, 개발, 부품 조달, 생산, 물류, 유통 및 판매, 서비스의 가치 창출 활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기업의 경계를 초월한 가치사슬(Value Chain)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지난 30여 년간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전되고,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이 세계 경제에 편입되면서 기업의 공급망은 전 세계로 분할 배치되어 글로벌 공급망으로 성장해왔다. 가트너사가 지난 10년간 글로벌 공급망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한 애플사는 45개국에 걸쳐 1,049개 기업으로 구성된 공급망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중 미국에 위치한 협력회사는 60개에 불과하다. 글로벌 공급망의 대표적인 한 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 어떤 충격을 가져왔을까? 2008년 금융위기는 수요 측면에 의한 충격이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공급 측면의 공급망 단절을 초래하였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수요와 공급의 양측에서 모두 공급망에 충격을 가져와 기업들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 먼저 코로나19의 확산을 억지하기 위해서 중국 정부가 지난 2월에 우한에 내린 봉쇄령과 3월 중순 이후 각국 정부가 시행한 봉쇄조치(The Great Lockdown)로 인해서 글로벌 공급망 가동이 중단되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공장이 조업을 중단하였고, 봉쇄조치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의 공장도 부품 부족 등으로 조업을 중단하거나 휴업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또한 국경 봉쇄와 항공운항 중단 및 항만 폐쇄 등은 육상, 해운, 항공 물류 전체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봉쇄 기간이 길어지면서 수요 충격이 더욱 큰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민간 소비가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어 기업들은 기존에 발주한 주문을 취소하거나 물품을 인수하지 않고 있으며, 신규 주문도 급격하게 줄여나가고 있다. 향후 봉쇄조치가 완화된다고 할지라도, 실업 증가로 인한 실소득 감소와 소비자의 불안 심리로 인해서 수요 회복 속도가 느려질 것이므로 공급망의 수요 충격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수출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기업에 피해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이 작년 대비 24% 감소하였고, 5월 첫 주는 46% 감소하는 등 전 세계 시장의 수요 감소로 인한 공급망 충격이 현실화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진행되어온 탈세계화(Deglobalization)를 가속화하고 자국우선주의를 더욱 강하게 확산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 상위 20개 국가에서 전 세계 확진자와 사망자의 80%가 발생한 점은 국가 간 활발한 교역 및 인적교류가 바이러스의 확산을 가져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면서 자국 중심의 고립적 정책을 강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적 공조는 찾아보기 어렵고 각 국가는 국경을 폐쇄하고 의료장비 등의 교역 금지를 선언하는 등 자국우선주의가 팽배한 것이 현실이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시작되면서 가장 피해를 본 나라 중 하나가 미국이다. 이에 따른 미·중 무역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일례로 5월 15일에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로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는 대상 기업을 미국 밖 해외기업으로 확대하는 조치를 발표하였다. 미국의 장비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반도체 생산기업은 화웨이에 수출하기 전 미국 상무부의 허가를 먼저 취득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대만의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와 삼성전자의 수출을 겨냥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이에 대한 즉각적인 보복 조치로 애플과 보잉을 제재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 간 무역갈등과 상호보복조치가 유발하는 경제의 불확실성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켜서 세계경제 회복속도를 더욱 저하시킬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미국은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체결하면서 현지화율 기준이 되는 미국 내 부품생산비율을 상향 조정하였으며, 미국 기업들의 리쇼어링(Reshoring)을 위한 파격적인 법인세 인하 정책을 통해서 기업들을 유인하고 있다. 유사하게 독일도 최근에 ‘국가산업전략 2030’을 발표하고 핵심산업의 공급망을 유럽연합(EU) 역내에 유치하는 역내완결형 공급망(Closed Supply Chain)을 구상하고 있다. 중국도 ‘중국제조 2025’를 통해 한국, 일본, 미국 등의 나라에서 수입하던 중간재를 국내 생산으로 대체하고 공급망의 자기완결성을 구축하는 홍색공급망(Red Supply Chain) 전략을 추진해왔다. 따라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지역 간 갈등 심화 및 자국우선주의 강화로 자국으로의 제조업 회귀를 촉진하는 리쇼어링 정책이 더욱 강해질 것이며,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도록 압력이 가해지면서 주요 경제 권역별 지역주의가 대두될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경험한 의료장비와 기초 물품의 심각한 부족은 국가안보 및 국민보건을 위해서 이러한 제품들을 국산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또한 디지털화가 획기적으로 기업 및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서 ‘일하는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봉쇄 기간에 언택트 경제가 급속하게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B2C뿐만 아니라 B2B까지 확대되어 기업 간 거래에도 비대면 판매 및 협상이 일상화되고 있다.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와 인공지능(AI)이 광범위하게 적용되면서 업무 자동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클라우드 산업이 성장하고 원격근무가 일상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시장환경 및 세계 경제 지형의 변화에 대응하여 우리 기업은 기존 글로벌 공급망 전략을 재검토하고 시장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 세계화에 기반을 둔 글로벌 공급망은 거세지는 탈세계화, 지역주의, 자국우선주의, 리쇼어링 추세를 반영하여 재설계되어야 한다. 필자는 한국 기업의 공급망 재설계의 원칙으로 복원력(Resilience)과 유연성(Flexibility) 강화, 지역 현지화를 통한 공급망 시장 대응력(Responsiveness) 강화, 국내 제조역량 강화를 통한 혁신 플랫폼 구축을 제안한다. 이에 더불어 2차 이상에서 고위험군 협력회사를 파악하여 직접 관리하고, 공급망 디지털화를 가속화하여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안정성과 시장대응력을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
❖ 공급망 분산 설계로 복원력과 유연성 강화
지난 30여 년간 세계화 추세에 발맞추어 기업은 저비용구조의 신흥국에 대규모 생산거점을 구축하였다. 특히 2000년 초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며 세계 경제에 편입된 중국은 세계 최대의 최종재 조립 가공 국가로 성장하였다. 인도, 베트남 등도 저비용생산국가(LCC; Low Cost Country)로서 다국적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되면서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낮은 제조원가에 기반한 공급망의 취약성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지난 2월 초 중국 내 봉쇄조치로 와이어링 하네스의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한국의 주요 자동차업체가 모두 조업을 중단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와이어링 하네스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생산되어 인건비의 제조원가 비중이 높다 보니 한국 부품업체들은 생산거점을 중국으로 이전하여 생산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11일, 기아차는 9일간 조업을 중단해야 했다. 또한 코로나19가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미국 정부는 3M에 마스크 증산을 요구했으나 3M은 미국에 한 개의 공장만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의 마스크 생산은 중국에서 이루어져서 정부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었다.
이처럼 현재의 글로벌 공급망은 특정 지역 혹은 특정 업체에 집중되어 있어 공급망 단절을 유발하거나 시장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고 공급망의 복원력과 유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급망을 재설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첫째, 부품 표준화 및 공용화를 추진하여 유사시 부품 간 대체가능성을 확보해야 하며 둘째, 핵심 부품에 대하여 복수 업체를 선정하고, 이들 업체를 지역적으로 분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며 셋째, 단일 업체만 존재하는 경우 대체품을 개발하거나 대체생산거점을 확보해야 하고 넷째, 협력회사의 복원리드타임(TTR; Time To Recover)을 추정하여 안전재고 설정을 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공급망을 재설계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전략은 중국을 주요 생산거점으로 사용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 중국 내 생산거점을 베트남 혹은 인도네시아 등으로 이전하거나 중국의 거점을 유지하면서 ‘차이나+1’ 전략으로 대체생산거점을 타 국가에서 구축하는 것이다. 복원력과 유연성이 강조된 공급망 설계는 단기적으로 제조원가를 악화시키지만, 공급망 단절 시에 복원비용 및 기회비용을 감소시켜서 총비용(Total Cost of Ownership)은 감소하게 될 것이다.
❖ 권역별 공급망 현지화로 시장대응력 강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탈세계화와 자국우선주의, 지역주의가 강화되므로 우리 기업이 최종소비자의 수요 변화 및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급망을 해당 권역에 현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국가 간 인적·물적 교역이 급격하게 감소되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최소 2~3년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권역 밖에서 최종소비자 시장의 수요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렵다. 지역주의 대두와 역내무역 강화를 위한 각종 인센티브로 USMCA, EU, ASEAN 등 지역경제블록이 강화될 것이며 해당 경제권역의 중심국가(미국, 독일, 중국)는 자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여 역내에서 고용증대와 부가가치 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역내기업과 역외기업의 차별적 대우를 시도할 것이다. 2018년에 트럼프 정부가 한국산 세탁기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면서 삼성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LG는 테네시주에 각각 연간 100만 대, 120만 대 생산 규모의 공장을 건설한 바 있다. 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을 고객으로 하는 해외기업들의 미국 내 공장 유치를 위한 압박을 지속적으로 행사해왔다. 예를 들면 대만의 TSMC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회사로서 미국의 애플, 퀄컴, 엔비디아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하여 공급해왔으며, 미국 고객사 매출이 전체의 60%에 육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TSMC에 미국 공장 건설을 지속적으로 압박하여 왔는데 지난 5월 14일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15조 원을 투자해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은 USMCA, EU, 중국, ASEAN 등의 최종소비자 시장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전진 배치하여 시장대응력을 강화하고 역내기업에 대한 혜택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보호무역주의로 생겨나는 관세 및 비관세 무역장벽을 회피하고, 경제권역 내 현지화 인센티브를 최대한 활용하여 조달-생산-판매의 완결적 공급망의 현지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비용적 효율성을 위해서 각 권역의 전진기지로 활용할 수 있는 국가(멕시코, 폴란드, 체코, 베트남, 태국 등)에 공급망 전개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현지 조달 확대를 위해서 협력회사와 동반진출을 확대해야 한다.
❖ 국내 제조역량 강화로 혁신 플랫폼 구축
글로벌 공급망의 복원력과 시장대응력을 고려하여 공급망을 재설계하면 세계시장에 공급망을 분산, 중복해서 구축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기업은 이로 인해서 상당한 규모의 중복투자를 유발하게 되어 비용경쟁력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시장이 협소한 우리 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안정적 수입기반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은 국내의 제조역량을 강화하여 제조혁신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경쟁우위의 원천으로 개발해야 한다. 먼저 우리 기업의 연구개발(R&D) 및 신제품·신기술 개발과 밀접한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기술집약적 생산공정은 국내에 집중해야 한다. 국내 생산거점은 경제권역별로 분산된 생산거점의 모공장(Mother Plant)으로서 기술혁신 및 공정혁신을 주도하고 이를 해외공장에 교육, 확산하는 공장으로 그 위상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또한 미래 신산업에 필요한 신소재, 부품, 장비의 경우 국내에 대체업체를 끈기 있게 파트너로 육성하고 해외 동반진출 등을 통해서 비용경쟁력과 혁신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 많은 설비투자와 R&D 투자가 필요한 경우에는 대기업이 직접 내부화하는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
❖ 2차 이상 핵심 협력회사 직접 관리로 공급망 안정성 강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발견하게 된 공급망의 가장 약한 링크(Weakest Link)인 공급업체를 직접 관리해서 공급망의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 기업들은 통상 직접 거래관계가 있는 1차 협력회사보다는 거래관계가 없는 2차, 3차 이상의 공급업체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공급망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5~6개월간 자동차업체가 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자회로(Micro Controller Unit) 시장의 40%를 지배하고 있는 르네사스사의 공장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2차 이상의 고위험군 공급업체는 1차 협력업체의 협조를 통해서 파악하고, 유상·무상의 사급 계약이나 필요시 지분투자 등을 통하여 직접 관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위험군이 해외 제조업체인 경우 대체생산을 위해서 국내업체를 적극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필요한 EUV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등 조달이 어려워지자 국내 대체업체를 육성한 것이 좋은 예다. 이와 같이 통상적인 관리범위인 1차 협력업체를 넘어서서 2차, 3차 이상의 공급업체를 파악하여 거래함으로써 공급망 전체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공급망 단절 시 복원비용을 선제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 공급망 디지털화로 공급망 가시성 및 민첩성 강화
공급망 디지털화를 가속화하여 공급망 전체의 실시간 가시성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신속한 의사결정 및 최적화를 통해서 전체적인 비용효율성과 시장대응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공급망 가시성은 공급망 관리의 첫 번째 단계로서 데이터 애널리틱스 및 인공지능 등의 고도화된 디지털화를 시도하기 전의 필수 조건이다. 공급망의 하류인 유통 및 판매 네트워크는 비대면 경제의 급성장으로 디지털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협력업체 네트워크의 디지털화는 답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1차 협력업체와의 공급망 디지털화의 목적은 제조기업과 협력회사 간 수요예측, 공급계획, 생산계획, 재고정보, 품질정보 등의 공급망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함으로써 두 회사 간 생산계획의 동기화를 추구하고 고객 대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17년에 삼성전자는 전 세계 통신사와 유통업체들의 스마트폰 수요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그 결과를 곧바로 다음 날 생산에 반영하는 ‘1일 SCM 제조 혁신’을 이루었는데, 이는 삼성전자의 전사적자원관리(ERP), 공급망관리(SCM) 시스템과 협력업체의 ERP 시스템을 연계하기 위해서 2000년대 초부터 많은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다. 협력업체와의 공급망 디지털화의 핵심은 협력회사의 스마트공장 고도화가 병행되어야 가능하다. 중소 협력회사의 경우에는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재원과 노하우가 부족하므로 종단간(E2E; End-to-End) 가시성 실현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포스트 코로나의 환경 변화는 일개 기업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며, 시장의 조정기능에 맡겨놓을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정부의 환경 조성자(Enabler)로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대두된다. 먼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경제지형에 대응하여 우리나라 제조업 환경을 개선하고 우리 기업 및 글로벌 기업의 국내 유치를 위해서 혁신적인 인센티브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세계 제조업 4대 강국인 미국, 중국, 독일, 일본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강력한 자국 제조업 보호 및 리쇼어링 정책을 통해 자국에게 유리한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서 경쟁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이러한 노력은 더욱 배가될 것이다. 지역주의 대두와 함께 권역별로 우리 기업의 현지화가 가속화된다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공동화(Hollowing Out) 위험이 높아진다. 우리 제조업은 국내총생산(GDP) 30%를 차지하고 고용의 20%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심장이다. 정부는 우리 제조기업의 국내 유턴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혁신적인 제도적 개선 및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국내 소재·부품·장비 업체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조업체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R&D 지원, 경영 컨설팅 서비스, 해외진출 지원, 디지털 전환 지원을 범부처 합동으로 계획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제로베이스에서 기존 정책 및 규제를 재검토하는 정부의 과감성과 유연성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19세기 프랑스의 생화학자이며 세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이 파스퇴르는 한 강좌에서 “관찰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얻는다(In the field of observation, chance favours only the prepared mind.)”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