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김선녀 기자 사진 박충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최근 한국과 러시아 간 유의미한 교역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수교 30주년을 맞이한 한국과 러시아 양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미래차, 소재‧부품‧장비, 의료‧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의 협력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양국 간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산업협력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어떤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양국 간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학계의 혜안은 무엇인지, 러시아 진출기업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본다.
1990년 9월 30일 한국과 소련의 역사적인 수교가 체결되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로 바뀌면서 한-소 수교가 한-러 수교로 바뀌었고, 옐친 대통령 초기에 한-러 관계에 대한 기본조약이 체결되었다. 2008년에는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가 체결되었다. 수교 후 많은 우여곡절이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과 러시아의 교역은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올라갔다 떨어졌다 반등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중요한 건 위기 이후 회복 과정에서 양국 간 교역이 이전보다 더 큰 폭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양국 협력의 보완성과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우리 기업과 양국 정부의 노력이 합쳐져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과 러시아와의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크게 네 개의 시기로 구분된다. 먼저 1990년대 양국 관계 형성기로 처음 수교를 맺은 시기다. 2000년대는 1차 성장기로 양국 관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 후반 이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관계가 주저앉는 모습을 보이다가 2010년대는 2차 성장기로 양국 관계가 다시 도약하는 단계였다. 2014년 이후부터 지금은 전환기라고 볼 수 있다. 2014년 이후 계속된 유가 하락, 서방의 대러 경제 제재 이후 표면적으로는 양국 관계가 이전보다 못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글로벌 경제환경 변화에 따라 양국 관계가 자원과 상품의 교환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의 시기다.
러시아의 경제 구조에서 에너지 자원이 가지는 비중은 매우 높다. 러시아 같은 큰 나라가 자원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자원 탈피 경제구조는 러시아 정부의 중요한 과제다. 푸틴 집권 4기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 바로 디지털 경제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 정보기술(IT)이나 디지털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비교적 낮지만 최근 3~4년간 러시아에서 디지털 경제 부분이 많은 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앞으로도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러시아는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제조업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 또 하나는 불균형한 요소의 해결 부분이다. 국토가 넓어 모스크바 서부 지역과 시베리아, 그리고 동부의 경제적 격차가 크다. 이로 인해 지역 간 불균등이 심화되고 국가 차원에서 이것들을 조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극동지역에 대한 재정투입 확대 등을 통해 지역경제를 균등하게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이 러시아를 바라보는 시각은 러시아의 넓은 영토에 따른 많은 인구와 소비력에 기반한 소비시장 중심이었다. 물론 이 틀은 기본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현재 양국 관계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를 기술과 과학 협력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 러시아 기업 주체들과 과학기술은 물론 혁신산업에 대한 협력을 통해 우리 기업과 그들이 함께 도약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틀에 적합한 산업으로는 한국의 하드웨어(HW)와 러시아의 소프트웨어(SW) 사업 등 양국의 강점이 결합한 IT 산업, 그리고 제약과 의약 분야 등이 있다. 시장 중심으로 본다면 조선과 화학산업 분야도 접근할 필요성이 있고. 최근 수출이 늘어나고 있는 화장품 시장도 러시아 내 발전 전망이 매우 크다.
지난 30년간 한국은 상품을, 러시아는 자원을 수출하는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한-러 교역량을 늘려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원-상품 교환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중요시해야 하는데, 먼저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과 북극의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큰 폭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중동 해협을 거쳐오는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아 우리의 에너지 공급망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북극을 단순히 자원 수입 통로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기후 변화로 인해 북극 항로가 상시화될 경우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조선산업의 수주도 늘고 북극 관련 항만인프라 개발에 우리 기업이 참여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두 번째는 글로벌 가치사슬(GVC·글로벌 공급망)의 혁명적 변화다.
과거에는 높은 인건비로 러시아가 제조업 생산단계로서 장점이 없었지만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러시아도 제조업의 메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러시아가 가진 비교우위 분야는 과학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현대모비스, KT 등 우리 기업들이 러시아가 자랑하는 첨단 과학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지속적으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1992년 | 2000년 | 2010년 | 2020년 5월까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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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출액 | 118 | 788 | 7,760 | 2,439 | |
1 | 의류 21 | 합성수지 185 | 자동차 2,082 | 자동차 469 | |
2 | 영상기기 13 | 의류 71 | 자동차부품 765 | 자동차부품 424 | |
3 | 공조화기기 11 | 편직물 44 | 선박해양구조물 609 | 합성수지 105 | |
4 | 기호식품 10 | 영상기기 43 | 합성수지 449 | 비누치약 및 화장품 94 | |
5 | 컴퓨터 8 | 농산가공품 38 | 무선통신기기 375 | 철강판 79 | |
5대 품목 | 합계 | 63 | 381 | 4,280 | 1,171 |
비중 | 53.4% | 48.4% | 55.2% | 48.0% |
현대모비스는 자동차 분야의 티어원(이하 Tier 1)1) 부품 사업자다. 자동차에서 Tier 1 사업자는 완성차 고객 대상으로 안전과 신뢰성, 품질 및 가격 경쟁력을 갖춘 핵심부품을 개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안전이나 주행기능에 직결되는 조향·제동 부품부터 최근 각광 받는 자율주행이나 전동화 등 첨단기술을 필요로 하는 부품까지 다양한 제품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얀덱스는 러시아 최대 IT 기업으로 구글, 네이버와 유사한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얀덱스가 자체 개발해서 확보한 자율주행 기술은 세계 선도 수준이다. 러시아 기업을 파트너로 선택한 이유는 기술과 사업 관점에서 시너지 창출 효과가 상당히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픈 이노베이션 시대에는 국가를 초월해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대모비스와 얀덱스의 협력은 안전 및 성능을 보증하고 양산성을 책임지는 전통적 자동차 부품 사업자와 최고 수준의 SW 기술력을 가진 IT 기업의 제휴로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선도적 기술을 가진 한 기업이 모든 첨단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현대모비스가 자체 확보한 HW 및 SW 플랫폼 기술과 외부 혁신기업이 개발한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기술을 결합하여, 혁신적 제품을 개발 제공하는 시너지 창출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전통적 자동차 부품업체와 SW 및 IT 사업자는 경쟁관계로 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서로 협력을 통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파트너이다.
한편, 자동차부품 Tier 1 사업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협력을 끌어내지 못하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Tier 2 또는 Tier 3 사업자로 분류되던 SW 전문사나 자동차용 반도체 기업이 기술혁신을 강화하면서, Tier 1 사업자는 완성체 업체와 혁신기업 사이에 끼어, 차별적 가치창출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향후 5년이 중요한 기로라고 내다보고 있다. 얀덱스와 같은 혁신기업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기술개발뿐 아니라, 모빌리티 혁명에 대응한 새로운 Tier 1 사업모델을 창출해 나가야 한다.
현재 러시아는 과거 자원 경제 중심에서 벗어나 IT 산업 등 다양한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나 관련 규제나 정책은 아직 경제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일례로 얀덱스는 러시아 내에서 자율주행 로봇택시 사업 등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정책이나 규제가 완전하게 정비되어 있지는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외국 기업으로부터 연구개발(R&D)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현재 공장, 설비 등 전통적 물적 자산을 대상으로 한 투자의 경우만 R&D 투자로 인정하고 있다. 앞으로 외국기업의 지적재산권 (IP) 투자나 지분투자 등이 폭 넓게 R&D 투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러시아 정부의 정책이나 규제가 변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현재 우리 정부는 러시아와의 협력방안을 크게 세 가지로 보고 있다. 먼저 코로나19 이후 경제관계 재편에 따라 IT 수요가 확장될 것에 대비해 언택트 산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중이며, 방역산업 수요가 커지면서 관련 협력 분야를 찾고 있다.
두 번째로 경제협력 틀을 만드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한-러 서비스 관련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 중으로, 양국 기업이 기존 규제에서 벗어나 쉽게 사업할 수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 특히 현재 추진 중인 ‘나인브리지(9-Bridge)’ 2단계 사업에 철도나 가스, 인프라 등이 포함되는데 이 부분에서 협력의 틀을 만들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트렌드가 혁신산업으로 옮겨오면서 이를 지원하기 위해 한-러혁신센터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양국의 기술협력이 이뤄질 예정으로, 러시아와 한국 기업이 조인해서 각 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신기술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투자 측면에서 우리 기업은 소비시장을 목적으로 한 투자에서는 나름의 성과가 있지만, 러시아에서 잠재력이 큰 자원과 첨단 과학기술 분야 부분은 조금 아쉽다. 앞서 말한 얀덱스라는 기업의 알고리즘 기술은 구글에서도 관심을 가질 만큼 뛰어나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서 이런 알고리즘 기술은 자율주행 시스템부터 위성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이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투자를 늘려나가야 한다. 현재 러시아 역시 한국의 IT와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주목하고 있어 러시아 첨단기술 기업 액소아틀레트 글로벌 본사가 경기도로 이전하였다. 이런 쌍방향 투자가 이뤄지면 산업 내 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다.
자원 협력 분야도 장점이 많다. 우리나라는 석유화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졌다. 러시아는 헬륨, 액화석유가스(LPG) 등 그들이 가진 방대한 에너지의 부산물을 좀 더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로 확장하는 데 관심이 많다. 개발된 에너지의 정제, 관리 능력이 뛰어난 우리 기업이 이들의 자원 파생 분야에 결합하면 자원 분야의 추가 투자도 가능하다.
이전까지 러시아와의 관계가 주로 대기업의 시장 위주 경제활동이었다면, 지금은 글로벌 경제환경의 변화,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등으로 양국 관계가 변환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앞으로는 많은 중소기업이 러시아를 단순한 시장 관점이 아닌 기술 및 산업협력 대상으로 본다면 좀 더 많은 플레이어가 러시아에 진출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양국 관계가 크게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코트라는 러시아무역관들과 함께 산업기술 데스크를 운영 중으로 우리 기업들이 진출할 러시아 시장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서 사례로 든 얀덱스와의 제휴는 이제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되는 단계에 와 있다. 앞으로 양 사가 윈-윈 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에 합의하고 이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외에도 현대모비스는 러시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등 역내 뛰어난 SW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현지 SW 전문사들과 SW House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모델을 검토할 계획이다.
1)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는 1차 부품공급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