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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쟁, 국제 방위산업

김진기 법무법인 민주 파트너 변호사, 전 합동참모본부 법무실장 / 방위사업청 법무지원팀장 사진 한경DB

소련 붕괴 후 전 세계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사람들은 전쟁에 대비하던 군비(軍費)를 교육과 복지예산으로 돌려 세계가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1990년대 초 각 지역에서 군축회의가 열리고 그러한 기대는 고조됐다. 이는 착각이었다. 전선을 구축하고 벌이는 재래식 전쟁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모습의 적들이 21세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 그 양상은 글로벌 차원에서 심각한 국제안보를 해치는 것이었고 새로운 전쟁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다시 군비가 급증하게 된다.

5월 22일 한미 정상이 경기도 오산공군기지(한국항공우주작전본부·KAOC)에 방문했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방산 분야의 자유무역협정에 비견되는 한미 국방상호조달협정(RDP-MOU) 체결을 위한 논의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이제 다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러시아의 중간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2022년 4월 25일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www.sipri.org)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군사비는 처음으로 2조 달러를 돌파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군사비 지출이 많은 나라는 미국, 중국, 인도, 영국, 러시아 순이다.

세계는 지금 군비지출 2조 달러 시대

미국은 2021년에 8,010억 달러를 군사비로 사용해 전년에 비해 1.4% 감소했다. 무기조달비는 5.4% 줄였으나 연구개발(R&D) 비용은 크게 줄이지 않았다. 실패를 두려워 말라고 주문해 R&D의 천국이라는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이 의료안보의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신속하게 코로나 백신 개발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한 것도 이러한 뒷받침이 축적된 덕분일 것이다. 스푸트니크 충격(Sputnik Crisis)에 대한 대응이 항상화돼서인지 미국이라는 거버넌스는 항상 플랜B를 준비하고 병행한다. 미국의 핵심이익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더라도 또 다른 행위를 실행에 옮긴다. 몇 가지 상황을 살펴본다. 미국은 상설 국제형사재판소를 설치하자고 제안해놓고 클린턴 대통령은 서명하고 의회는 비준하지 않아 미가입 상태로 있고,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면서도 의회는 곧바로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여전히 대만에게 전투기까지 수출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러시아는 전쟁 준비로 군사비가 증가했다. 우크라이나 국경을 따라 병력을 증강하던 2021년 러시아의 군사비는 전년 대비 2.9% 증가한 659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4.1%에 달하는 액수다. 2020년까지 지속적으로 군사비를 줄여온 것과는 대조적인데, 석유와 가스를 팔아 군비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우크라이나의 군사비 지출은 2021년까지 72% 증가했다. 2021년 지출은 59억 달러였고 국가 GDP의 3.2%를 차지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러시아의 전쟁 상대국인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유럽연합(EU) 각국이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를 구매함으로써 러시아 군사비에 보탬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가 중립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EU 각국을 적극적으로 적대시하며 가스와 석유 수출을 중단하지 않는 상황도 종래의 전쟁 현황과 확연히 다르다. 결국 새로운 성격의 전쟁이 유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군사비로 2021년에 전년 대비 4.7% 증가한 2,930억 달러를 지출했다. 중국이 군사비를 27년 연속 늘리고 있다는 점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인도의 2021년 군사비 지출은 766억 달러다. 인도 군사비 지출에서 특이한 것은 자국에서 생산한 무기 구매 비율이 현저히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군비증강은 괄목할 만하다. 2021년 전년 대비 7.3% 증가한 541억 달러를 지출했다. 호주는 2021년에 전년 대비 4.0% 증가한 318억 달러를 군사비로 지출했다.
그사이 중동의 이란이 전년 대비 14% 증가한 246억 달러를 이슬람 혁명수비대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면서 지역 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도 2021년에 전년 대비 56% 증가한 45억 달러를 군사비에 지출했는데, 아프리카 각국은 극단적 폭력에 기반한 분리주의자들의 반란과 같은 수많은 안보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군사비를 늘리는 것으로 보인다.

스푸트니크 충격(Sputnik Crisis)

옛 소련(소비에트연방)은 1957년 10월 4일 카자흐스탄의한 사막에서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는 데성공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과학기술 분야에서 소련을 압도하고 있다고 믿었던 미국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 이를 스푸트니크 충격이라고 한다.

국제 방산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

오늘날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은 몇몇 강대국 대형 방산기업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30여 년간 국제 방산시장에서 미국 빅6(록히드마틴·레이시온테크놀로지스·보잉·노스롭그루먼·제너럴다이내믹스·L3해리스테크놀로지스) 방산업체의 지위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그다음 순위에 영국의 BAE 시스템스, 프랑스의 탈레스, 이스라엘의 엘빗 등이 거론된다. 방산기업의 대부분은 정부와 특수관계로 탄생하고 운영된다. 러시아가 여전히 방산시장에서 뚜렷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중국의 발전상황은 무서운 속도이기는 하지만 미국은 국제 방산시장의 절반 정도를 독점하고 있다. 미국의 국방비가 전 세계 국방비의 40%를 상회하므로 당연한 수치라고 볼 수는 있다. 일반적 예측과 달리, 미국 방산기업은 외국에 수출하는 액수보다 미군에 공급하는 액수가 월등히 많은데, 자국산 우선구매법(Buy American Act)은 국방획득 분야에는 법 제정 이전부터 그 취지대로 이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방산기업 매출의 90%는 미국 정부가 차지하고, 외국 정부에서 벌어들이는 것은 10% 정도에 그친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결국 국제 방산시장의 향배는 미국이 이끌고 있는 것이다. 미국 방산기업은 외국에서 훨씬 많이 팔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 종류에 따라서는) 미국 정부의 입장에 따라 공급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이외 국가의 방산기업은 다른 입장이다. 다른 국가들은 방산수출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은 해외군사판매(FMS; Foreign Military Sales)는 말할 것도 없고 상용판매에도 절충교역을 삭제하려고 하나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은 자국산 무기판매를 위해 어떤 옵션도 수행할 태세다. 최고의 성능과 기능을 가진 무기라면 가성비로 무기의 가격이 결정되지 않지만, 유사한 성능을 보유한 무기가 존재하고 비교와 대체가 가능한 상용 무기라면 가격 흥정도 가능하고, 절충교역도 부가할 수 있으며 수입국 군대의 특수훈련까지도 계약조건으로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이다. 미국 방산기업이 세계 최고 기능을 보유한 무기만을 국제 방산시장에 내놓는 것은 아니므로 각국은 미국과도 상당한 경쟁을 하고 있다. 각국 방산기업은 국제 방산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세일즈를 하는 명실상부한 비즈니스의 하나가 됐다. 이제 치열한 국제 방산시장에서 대한민국도 수출규모가 70억 달러를 상회하는 방산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세계 군비 지출 상위 10개국

  1. 1위 미국 8,010억
  2. 2위 중국 2,930억
  3. 3위 인도 766억
  4. 4위 영국 684억
  5. 5위 러시아 659억
  6. 6위 프랑스 566억
  7. 7위 독일 560억
  8. 8위 사우디아라비아 556억
  9. 9위 일본 541억
  10. 10위 한국 502억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경제와 안보의 분리 또는 일치, 그리고 경제안보

방산물자 등을 R&D하거나 생산하는 산업을 총칭하는 방위산업은 전형적으로 경제 분야에 포함돼 경제논리에 따라 작동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방위산업은 국가방위를 최고의 가치로 하므로 경제논리만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예컨대, 대한민국이 파격적인 기술이전을 약속하는 등 F-35보다 경제성이 뛰어난 것으로 간주된 유로파이터 타이푼3을 구매하지 않은 것도 미국을 상수로 둔 안보 방정식을 과제로 받아 든 대한민국의 상황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방위산업은 정확히 경제와 안보가 오버랩되는 분야이면서도 경제보다는 안보가 이니셔티브를 가지는 분야다. 미국 방산기업이 국제 방산시장에서 절대우위와 비교우위 모두를 가지는 것은 미국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 세력의 대표국가로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국제관계에서 더 이상 경찰국가 임무를 수행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고, 안보동맹이라는 명분을 잠시 보여주고 합리적이지 않은 방위비 분담금을 국제사회에 요구했다. 또한 끝까지 지켜줄 것 같았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충분한 설명과 준비도 없이 철수하면서 전 세계인의 눈앞에서 실리를 획득하기 위해 지금껏 지켜온 명분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많은 국가가 경제성을 포기하면서까지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프레임을 수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가 되기도 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2019년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국제 제재 요구에 동맹국가조차 능동적으로 따라주지 않은 사례를 특별히 예외적 사항이라 말할 수 없기까지 하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 조야와 유수의 싱크탱크는 대표적으로 제니퍼 해리스(Jennifer M. Harris)와 로버트 블랙윌(Robert D. Blackwill)이 2016년 공저로 발간한 를 자주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경제적 수단을 사용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것을 강조하고 있고, 경제와 통상을 무기화하는 경제안보 시대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지난해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안보보좌관이 반도체 회의를 주재한 것처럼 과거 서방 vs. 중국·러시아로 양극단화하던 신냉전 시대는 기술패권 시대로 볼 수 있고 오늘날엔 전쟁의 양상이 재래식 무기가 아닌 첨단기술을 통한 안보확보 시대라는 것이다. 급기야 군사적 수단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와 경제적 수단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첫마디는 “경제가 안보고, 안보가 경제인 시대에 살고 있다”였다.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전 세계 공급망 교란 등에서 미국은 통상정책을 대외 레버리지로 활용하며 방산시장에서 더욱 강화된 경제와 안보의 일치를 강조하고 있다.

한미 상호국방조달협정 논의 개시

2022월 5월 21일 한미 두 정상은 양국 공동성명에서 상호국방조달협정(RDP-MOU; Reciprocal Defense Production-MOU)에 대한 논의를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과 영국, 호주, 캐나다,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세계 28개 동맹 및 파트너국이 RDP-MOU를 통해 상호 공급망 협력과 방산조달거래를 확대하고 있다. 자유무역과 국가 간 거래 활성화를 위한 정부조달협정(WTO-GPA)에서도 방산 분야는 제외하는 것이 원칙이고, 양자 간 자유무역 확대를 위한 협약인 자유무역협정(FTA)에서도 방산 분야는 거론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EU조차도 각 회원국의 방산 분야만큼은 독자성을 인정해주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상호국방조달협정 체제는 자유무역체제의 예외현상으로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국제 방산시장의 중요한 거버넌스다.
우리의 경험과 제도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정부 탄생,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바이든 대통령 방한, 한미 방산FTA, 방산수출 확대 등 우리가 국제 방산시장에 관심을 가져야 될 사유는 많다. 현재 우리의 방위산업에 대한 개념은 2021년 12월 30일 방위사업법에서 분리 시행된 방위산업 발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2호의 “방위산업”에 명시된 대로다. 국가방위 목적에 필요하거나 사용되는 모든 재화와 용역을 R&D하고 생산하는 업을 ‘방위산업’이라고 하는 열린 의식을 보유하게 될 때 국제 방산시장이 제대로 보이고 그 시장에서 우리가 해봄직한 일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