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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회복세를 덮친 돌발변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경제정책 운용에 자신감을 보여온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표정이 부쩍 어두워졌다. 올해 1월 중순 이후 급속히 확산한 중국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홍 부총리는 수차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와 비교하면 당시보다 중증환자 수가 적은 데도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라고 우려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국무회의에서 “중국과 연계돼 있는 공급망과 생산활동이 차질을 빚고 있다. 대중(對中)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등 비상경제 시국인 만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0% 가까이 된다. 2018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조6,194억 달러, 수출은 6,048억 달러였다. 수출을 GDP로 나누면 37.3%다. 이렇게 중요한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 정도다. 우리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지난해 부진했던 수출은 올 초부터 살아날 기미를 보였다. 무엇보다 주력 품목인 반도체 D램 단가가 1월부터 반등세를 보였다. 8기가비트(Gb) 가격이 2019년 12월 개당 2.81달러에서 한 달 만에 2.84달러로 뛰었다. 단가 상승은 2018년 12월 이후 처음이었다. 낸드플래시 고정가격 역시 지난해 8월 첫 반등한 후 7개월 연속 상승세를 탔다.
올 1월의 하루 평균 수출액도 작년 동기 대비 4.8% 늘어난 20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전체의 일평균 수출금액(19억9,000만 달러)을 웃도는 수치다. 하루 평균 수출이 늘어난 주요 품목은 반도체, 일반기계, 석유제품, 선박, 컴퓨터, 플라스틱 제품, 바이오·헬스, 화장품, 로봇 등 9개나 됐다.

회복세 보이던 수출, 중국에서 불어오는 한풍

이처럼 회복세를 보이던 수출에 치명타를 가한 건 코로나19다. 가뜩이나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중국의 주요 생산라인과 유통망이 ‘셧다운’된 탓이다. 한국의 중간재·소비재 수출도 차질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질 때 우리나라 수출은 1.74%포인트 감소한다. 그러므로 올해 수출 3%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목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대중 수출품목 중 중간재 비중이 압도적이란 점이 위기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중간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품목이다. 작년 대중 수출에서 중간재가 차지한 비중은 79.4%다.
삼성전자 등 국내 제조업체는 한국산 부품을 중국 공장에서 조립한 뒤 미국 등 제3국으로 재수출해왔다. 일종의 가공무역인데, 원가절감을 위해서다. 중간재의 중국 수출길이 제한적이나마 막힐 경우 중국 현지법인의 완제품 수출까지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수입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중간재를 제때 공급하지 못할 경우 국내 제조업계가 받는 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현대·기아자동차가 ‘와이어링 하니스’ 등 일부 부품을 조달받지 못하자 며칠간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코로나19 등 변수가 중국에서 발생했을 때 한국 제조업계가 올스톱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최근 자료에도 가치사슬로 얽혀 있는 한중 간 무역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중국의 대한(對韓) 중간재 수출 규모는 2017년 기준 752억 달러였다. 중국의 전체 중간재 수출 중 한국 비중이 6.5%였는데, 미국(10.7%)을 제외한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일본(5.5%), 독일(3.3%), 대만(2.7%), 베트남(2.6%), 인도(2.1%)보다 훨씬 높았다.
코로나19 사태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다른 나라를 통해서도 한국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역시 상당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한국 전기전자 업종은 전체 부품 및 원자재의 25.9%, 자동차·기계 업종은 20.0%, 섬유·의류 업종은 19.8%를 각각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다.

설비투자 감소로 전이 가능성

코로나19 사태가 단기간 내 종식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이 전염병과 유사한 특징을 보였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경우 2002년 12월에 등장해 이듬해 7월 소멸됐다. 메르스는 2015년 5월 시작해 그해 겨울(12월) 종식됐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역시 올여름까지는 사그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문제는 소비·관광 등 내수 경기에 끼치는 악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각 산업이 위축되고 장기적으로 설비투자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경제 예측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매우 취약한 구조로, 특히 한국의 자동차와 전자업계는 중국 산업생산 차질에 취약하다”라고 꼬집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 역시 “코로나19 확산이 중국 소비심리와 지출을 위축시키고 생산·공급망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라며 “다수의 한국 기업 신용도에는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기관이 우려한 업종은 유통, 자동차, 반도체·전자, 정유, 화학, 철강 등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에도 비상이 걸렸다. 해외 분석기관들은 중국과 함께 한국 성장률을 줄줄이 낮추고 있다. 영국 경제분석기관인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한국의 올해 GDP 성장률 예측치를 종전 2.5%에서 1.5%로 하향조정했다. 아시아 신흥국 중에선 중국을 제외하고 세 번째로 큰 낙폭이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중국의 봉쇄 조치가 2월, 4월, 6월까지 계속되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올해 한국 성장률이 가장 긍정적일 때도 1.8%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충격,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