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史 큐레이터

탐험가 콜럼버스와 바스쿠 다가마, 목숨을 건 생애 최고의 베팅
후추 무역사(史)

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사진 한경DB

세계 최고의 후추는 캄보디아 캄폿 후추(Kampot Pepper)다. 2010년 세계무역기구(WTO)로부터 캄보디아 농작물 최초로 상표권의 일종인 지리적 표시(GI; Geographic Indication)를 인정받았다. 대항해시대 최고의 사치품이자 ‘향신료의 왕’ 후추 무역 이야기의 첫 페이지는 중세 십자군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무려 6세기 전이다.

지금이야 캄보디아가 세계적 후추 재배지로 유명하지만 후추의 원산지는 남인도 서쪽 해안지방이다. 후추는 아열대 식물이자 대표적인 향신료로서 지금도 세계 향신료 시장의 25%를 차지한다. 중세시대 십자군 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유럽에 전파됐다. 당시에도 유럽은 목축에 의존한 육식을 즐겼다. 냉장고나 통조림 등이 있을 리 만무하던 시절이니만큼 고기를 염장, 건조, 훈제 등의 방법으로 저장하지 않으면 보존이 어려웠다. 물론 때마다 신선한 고기를 구할 수 있었던 부자들은 예외다. 주식으로 소금에 절인 냄새나는 고깃덩어리를 먹을 때 요긴한 것이 바로 향신료였다. 그중에서도 후추는 단연 으뜸이었는데 단순 육식을 위해서뿐 아니라 당시 커피나 차, 설탕, 초콜릿과 같은 기호식품이 많지 않았던 정황을 고려하면 유럽인에게 후추의 맛은 매력을 넘어 마력에 가까웠다. 부자들은 후추를 과감하게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600년 전에도 고민거리였던 유통 거품

당연히 인도에서 수입하는 후추의 인기는 나날이 신기록을 경신했다. 이때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콜럼버스의 출신지로 알려진 제노바의 상인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지중해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 덕분이다. 두 도시는 경쟁 관계에 있었지만 어쨌든 국가 차원에서 이탈리아는 후추 무역의 절대강자였다. 이에 비해 저 멀리 떨어진 서유럽의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은 상대적으로 후추 획득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감칠맛을 내는 후추 수입에 오매불망 감질내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지리적 불리함에서 파생되는 가장 큰 문제는 인도에서 오는 동안 이슬람 지역 등 여러 곳을 거치며 발생하는 관세와 중간상인의 마진, 운송비 등으로 인한 일종의 유통 거품이었다. 이역만리 먼 길 통한 수입 자체도 쉽지 않았지만 가뜩이나 금보다 비싼 사치품의 가격이 유통 과정에서 천정부지로 오르자 스페인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포르투갈은 1498년 바스쿠 다가마를 필두로 안정적인 후추 직거래 루트 확보를 위한 대항해 시대의 막을 열기에 이른다. 후추 외에도 황금, 다른 향신료, 기독교 전파, 모험심 등 다양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돛을 올리긴 했지만 망망대해와 괴혈병 등 각종 질병의 위험에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한 출항이었다.
후추로 개막된 대항해 시대는 고귀한 문명과 화려한 문화를 자랑하던 중동, 인도 등 아시아와 그리스 및 로마로부터 거리상 멀어 유럽의 변방으로만 여겨지던 서유럽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발전과 번영의 영광으로 이끌었다. 이후 17세기 해상 루트를 확보하고 유럽 각국은 인도, 동남아시아 무역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한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들을 세우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졌던 네덜란드까지 모두 영국의 산업혁명 이전 헤게모니를 가진 국가들이다. ‘페퍼(Pepper, 후추)’를 가진 자가 ‘패권(霸權)’도 갖던 시대의 이야기다.

콜럼버스, 바스쿠 다가마
류성룡, <징비록(懲毖錄)>에 후추의 굴욕을 남기다

“그대들의 나라는 망하겠구나. 기강이 이미 이렇게나 떨어져 있으니 어찌 망하지 않기를 기대하겠는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신 자격으로 조선을 찾은 다치바나 야스히로가 한 말이다. 류성룡의 <징비록>에 따르면 당시 그는 인동(현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조선의 무기 수준을 조소하고, 상주에 이르러서는 지역 으뜸 벼슬아치인 목사(牧使)를 모욕하는 외교적 결례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더니 기어코 한양에 도착했을 때 예조판서가 마련한 동평관(東平館) 연회에서 사달을 내고 말았다. 야스히로는 술에 취한 척 주머니에서 후추 열매를 한 줌 집더니 이내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자 눈앞에 흩뿌려진 ‘검은 황금’에 관료, 궁녀, 악공, 기생 가릴 것 없이 달려들어 연회장은 순식간에 난리 법석이 됐다. 이를 보고 야스히로는 조선의 미래를 이같이 예견한 것이다. 일본으로 돌아간 그가 이를 조선의 정세라며 히데요시에게 보고했고 이후 임진왜란의 침략전쟁이 준비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후추로 보는 균형의 중요성

후추의 종류는 실로 다양해 검은 후추도 있고 흰 후추도 있다. 후추 무역사도 마찬가지다. 후추를 찾는 과정에서 신대륙 발견이나 유럽의 패권 등 하얗게 빛나는 역사가 있는가 하면 그 이면에는 식민지 경쟁과 원주민 약탈 등 검은 역사도 존재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절대 잊지 말고 역사의 균형을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후추가 대표하는 향신료도 그러하다. 이들은 혼자 맛을 내지 못한다. 메인 메뉴와 향신료가 적절하고 공평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미각을 사로잡는 환상의 맛을 낸다. 누군가의 손이 식탁 위 후추를 집기 전, 칼과 도끼를 집어든 손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반성해야 한다.

후추

참고 : 식탁 위의 세계사(이영숙, 2012),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이나가키 히데히로, 2019),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미야자키 마사카츠, 2018), 음식 경제사(권은중, 2019) 및 인터넷 자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