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사

토마토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강석기의 과학 카페> 저자

토마토는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리코펜 같은 영양분이 풍부하면서도 당도가 높지 않아 건강에 좋은 먹거리다. 우리나라에서 토마토는 부가가치세법에 따르면 채소이고 농업통계 조사 규칙에 따르면 과일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채소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 결론은 생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아니었다. 생뚱맞게도 미국의 관세제도 때문에 채소라는 신분을 갖게 되었다. 120여 년 전 미국에서 토마토를 채소라고 결론 내린 배경과 토마토 교역을 둘러싼 교역사를 소개한다.

식물이 수정한 뒤 씨방이 자란 게 열매이고, 먹을 수 있는 열매를 ‘과일’이라고 부른다. 영어로 열매와 과일은 모두 ‘프루트(Fruit)’다. 토마토에서 우리가 먹는 부위는 열매이므로 식물학적으로 토마토는 과일이라는 말이다. 토마토가 과일이든 채소든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1893년 미국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법원까지 나섰다. 소송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 연방대법원 판례(Nix v. Hedden, the U.S. Supreme Court)에서 “토마토는 식물학적으로는 과일(Botanically Fruit)이고, 법적으로는 채소(Legally Vegetable)”라고 명시했다. 발단은 토마토가 과일이라고 주장한 한 과일 수입업자의 소송에서 비롯됐다.

수입관세 때문에 법적 다툼

때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2년 미국 21대 대통령 체스터 아서는 상당 수준의 관세인하 검토를 지시했지만, 이듬해 의회에서 평균 1.47% 인하에 그치는 관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때 수입 과일은 무관세, 수입 채소는 10% 관세로 결정됐다. 당시 토마토는 과학보다는 관습(상식)에 따라 채소로 분류됐고 그 결과 관세 대상이 됐다. 토마토가 채소로 분류돼 관세를 물게 된 데 불만을 품은 수입업체는 토마토가 과일이라며 소송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1893년 뉴욕에서 가장 큰 과채류 수입업체였던 존닉스&컴퍼니가 뉴욕항 세관 책임자 에드워드 헤든을 상대로 재판을 걸어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원고 측은 열매인 토마토가 식물학적으로 엄연히 과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전까지 갖고 가 들이밀었지만 법정은 “어떤 단어가 무역이나 상업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일상의 의미로 쓰여야 한다”며 사전을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판결을 맡은 그레이 판사는 “토마토는 덩굴식물에 열리는 과일이지만 디저트보다는 메인요리에서 주로 먹기 때문에 채소로 봐야 한다. 이는 오이와 호박, 완두, 콩도 마찬가지다”라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패소 이유 중에는 ‘토마토가 달지 않기 때문’이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단순히 채소 수업업자의 패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싼 토마토 수입이 늘어나 자국 토마토 농가의 피해가 커지고 관세도 받지 못하게 되자 법적으로 토마토를 채소로 만들어버린 사건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멕시코의 토마토 전쟁

토마토를 둘러싼 미국의 관세 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특히 멕시코는 미국과 가깝다 보니 매일매일 토마토가 트럭을 타고 접경지를 넘어온다. 멕시코가 워낙 인건비가 낮고 기후도 잘 맞아 미국 농부들이 농사지은 토마토보다 더 싸게 팔린다. 그러다 보니 미국과 ‘토마토 전쟁’ 위기가 여러 번 있었다. 1996년에도 미국은 멕시코에 대해 토마토를 일정 수준 이하로 팔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토마토 반덤핑 조사와 반덤핑 관세 부과를 일시 정지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 합의가 그동안 협상을 통해 꾸준히 연장되면서 두 나라 교역에 평화가 유지되는 듯했으나 트럼프 행정부에서 제동을 걸었다. 2019년 트럼프는 “멕시코가 접경지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중미 이주민들을 막지 않으면 멕시코로부터 수입하는 상품 전체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관세 부과라고 하면 철강·알루미늄, 자동차, 희토류 같은 것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주요 교역물은 농산물로, 특히 토마토는 멕시코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3대 농산물 중 하나이다 보니 졸지에 관세전쟁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당시 멕시코의 헤수스 세아데 북미담당협상국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이 모든 수입 토마토를 검사하겠다고 한다”며 “전부 검사하게 되면 12만 대 이상의 토마토 트럭이 국경에 멈춰서야 한다”고 적어 눈길을 끌었다. 과일이건 채소이건 토마토는 ‘신선식품’이다. 미국과의 토마토 관세 합의가 녹록지 않다고 토로한 멕시코 협상국장의 심정에 감정이입이 되는 이유다.

최근 토마토를 일상적 의미에서도 과일로 만들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오늘날 토마토가 채소로 취급되는 건 단맛과 함께 향기도 약해졌기 때문이다. 2017년 <사이언스>에는 토마토 향미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규명하는 논문이 실렸는데 재배 품종에서 향미와 관련된 휘발성 분자의 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량과 저장성 등에 집중한 개량과정에서 이런 특성이 희생된 결과다. 앞으로 연구를 통해 유전자를 개량해 향미가 풍부한 토마토를 얻게 된다면 머지않아 토마토는 법적으로도 과일의 지위를 얻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