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사

파프리카 주도권 경쟁, 국제무역 분쟁으로

박정호 명지대 경제학과 특임교수

파프리카는 우리나라에 수입된 지 15년 만에 수출 기여도가 가장 높은 농산물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중반 항공기 기내식에 쓰려고 제주도의 유리온실에서 재배하던 파프리카가 수출까지 하게 된 계기는 외환위기였다. 환율 상승으로 유리온실의 경영 악화가 가중되자 많은 농가가 이를 타개하기 위한 고부가가치 작물로 파프리카에 주목한 것이다. 이후 파프리카의 재배 면적은 2010년까지 연평균 25%씩 급성장했다.

현재 국내에서 재배되는 파프리카의 절반가량이 수출되고 있다. 그중 99% 이상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에 수출된다. 일본 자국산 파프리카는 2018년 현재 자급률이 14% 수준에 불과해 부족분의 상당부분을 한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의 파프리카 시장 규모는 2019년에 약 4억5,811만 달러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2026년까지 약 5.8%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파프리카가 이처럼 각광받는 이유는 항우울, 항염증, 항산화 및 노화 방지 특성을 갖추고 있어 단순히 식자재 자료를 넘어 암, 관절염, 이질, 구토 치료제 등 의약품과 화장품에서도 크게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프리카 종자전쟁, 부가가치 회수 움직임 커져

국제적으로 파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파프리카에 대한 주도권과 부가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국제 분쟁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자국이 확보한 종자를 외국에 고가에 판매하여 재배로 인한 부가가치의 상당부분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농산물 수출입 검역을 강화하면서 해외 농산물 수입을 억제하여 자국 농가 소득을 보전하려는 움직임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한국에서 파프리카는 단일품목으로는 신선농산물 수출 1위인 효자품목이지만 종자를 전량 수입하고 있다. 이는 과거 외환위기 당시 종자회사가 대거 외국에 매각된 탓이 크다. 해마다 파프리카 종자를 수입하기 위해 100억 원을 지출하고 있다. 물론 국산화를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제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나고야의정서 비준국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파프리카 종자전쟁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나고야의정서는 2010년 일본 나고야에서 채택되고 2014년 발효된 협약으로 ‘유전자원의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의 공정하고 공평한 공유’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적 약속이다. 한국은 2017년 참여국이 됐으며, 올해까지 전 세계 126개국이 비준했다. 참여국은 생물자원을 이용해 각종 제품을 만들 경우 해당 제품 판매로 발생한 수익을 상호 합의된 계약조건에 따라 자원보유국에 배분해야 한다.

파프리카 생산 및 수출 추이
지원내용
구분 2016 2017 2018 2019 2020
재배면적(ha) 724 712 698 728 734(p)
생산량(톤) 77,476 78,108 75,138 80,770 77,880(p)
수출량(톤) 30,276 34,843 31,920 35,325 30,274
수출액(천 달러) 93,793 89,485 92,260 91,515 86,437
수출비중(%) 39 44.6 42.5 43.7 38.9
자료: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식품수출정보
주요 수출국인 일본의 수입제한조치 등 견제 심화

일본은 중국 및 한국산 농산물의 수입증가로 인한 농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다각도의 수입제한조치를 취하고 있다. 2001년 일본은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등의 한국 농산물 수입에 대해 세이프가드 발동을 검토한 바 있다. 세이프가드란 상품의 수입이 급증함에 따라 경합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자국 산업에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일시적으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또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의무를 정지하고, 당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수입제한조치를 말한다.
또한 2001년 4월 1일부터 모든 신선채소 수입에 대해 시모노세키항을 포함해 항구별로 신선농산물의 요일별 검역건수 상한을 설정하고 초과건수에 대해서는 익일 검사로 이월하였다. 검역건수 제한조치는 주로 수입이 급증하는 한국산을 겨냥한 조치로 한국 정부에 사전 통보 없이 취해졌다. 이러한 일련의 사례를 볼 때 일본 이외의 지역으로 수출을 다변화할 필요가 커졌다.
현재 우리나라가 파프리카 수출 검역협정국 기준 수출 가능국은 약 15개 국가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너무 멀어 수출 시 신선도 등에 문제가 발생하며, 동남아시아의 경우는 가격경쟁력에서 밀린다. 이에 많은 농가가 중국 수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실정이며, 나름의 판로를 개척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수출품목에는 반도체, 배터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농민들의 소득 창출에 기여해왔던 파프리카 같은 작물 또한 대표적인 수출품목에 해당한다. 하지만 최근 국제사회에 전개되는 보호무역주의의 대두와 종자 주권 등의 움직임 속에서 파프리카의 수출환경이 위축될 소지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파프리카에 다시금 주목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