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논쟁

정진섭 법률사무소 솔 변호사, 전 경희대 법대교수

지난 5월 초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백신의 신속한 생산 및 보급 확대를 위해 백신 관련 지식재산권을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국가 간 백신 접종 격차가 벌어지면 코로나19 극복과 세계경제 회복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우려에서 세계보건기구(WHO)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백신이 개발되면서 빠르게 보급,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왼쪽부터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스푸트니크 V, 모더나.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이하 지재권) 일시 면제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지재권을 면제한다 해도 여전히 대다수 국가는 백신 생산능력이 없고 백신 품질관리의 위험성은 높아져 글로벌 차원의 공급부족 사태를 일거에 해결하기가 요원하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다. 그래서 백신 지재권 면제에 독일·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EU) 국가들이 강력한 반대의견을 내고 있으며, 개발을 주도한 제약회사들 역시 난색을 표하고 있다.
문제는 오늘날 국제사회가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빈부격차에 따른 환경문제·자원문제·인구문제·식량문제 등 난제를 겪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그 격차와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의 모든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을 사활적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자국 이기주의를 앞세우고 있는 상황이지만, 역설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은, 지구는 하나이며 지구 위에 사는 인류도 하나라는 사실이다.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분배 문제에 각 국가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류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번영의 길로 들어서거나, 아니면 공멸의 위기에 빠질지도 모를 기로에 서 있다.

특허발명의 분배 공유를 위한 국제협력의 역사

사실 국제적인 특허발명의 개발이익 분배공유 문제는 140년 전부터 이미 논의가 시작됐다. 1883년 체결된 ‘산업재산권보호에 관한 파리협약’은 내외국인 평등원칙, 우선권 제도, 특허독립의 원칙을 3대 원칙으로 삼되,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으로 긴급 상황에 필요한 경우 특허권자의 허가 없이 특허기술을 강제 실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을 두었다. 그로부터 111년 후인 1994년 체결된 세계무역기구(WTO)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 협정(TRIPs; Agreement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에도 특허기술에 대한 강제실시권 제도를 명문화했고, 2001년 WTO 각료회의에서 채택된 ‘TRIPs 및 공공보건에 관한 선언’에는 (코로나19와 같은) 공공보건 위기 발생 시 TRIPs의 목표 및 역할을 각국의 기술협력을 통한 위기상황 극복에 두고, 공공보건을 보호하기 위해 회원국들이 협력하여 국가 간 의료기술 및 의약품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후, 지난해 6월 방글라데시 국적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를 비롯한 10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예술가, 정치 지도자들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대해 세계의 공통이익이라며 무상 배포하도록 제안하였고, 그 무렵부터 G20 선언,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의료진 및 고령 위험자 접종이 끝나면 글로벌 차원에서 분배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확산됐다. 국제적인 의약품 개발과 공평한 분배 이용 문제는 일찍이 19세기 후반부터 국제 지식재산권 제도의 일부로서 논의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선진국과 후진국 간 남북문제 해결 측면에서 그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19 백신 제조업체의 투자비용은 각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하에 이루어졌으므로 정부 차원의 공공재라는 측면이 있다. WTO 협의 및 의결에는 만장일치를 요해 상당기간을 필요로 하는 반면, 정작 백신의 생산 및 분배는 매우 단기간에 실행되어야만 한다는 긴급성 때문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전례 없는 경제·보건 위기를 야기한 코로나19는 신속히 종식되어야 한다. 다만, 백신의 신속한 생산 및 보급 확대에는 백신 생산설비 부족 문제, 백신 원료 수급 문제도 있어 지재권의 공유만으로 해결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일반의약품과 백신 등 생물학적 제제 허가 및 출하단계

일반의약품
제품 개발 → 허가 → 제조 수입 → 제조·수입사 자체 품질검사 → 출하 시판
백신 등 생물학적 제제
제품 개발 → 허가 → 제조 수입 → 제조·수입사 자체 품질검사 → 국가출하승인 (식약처) → 출하 시판
국가출하승인 절차
  • 국가출하승인 신청 (제조·수입사) → 국가출하승인 접수 (식약처) → 검정시험 시료 채취 (식약처) → 검정시험 및 제조및품질관리요약서 검토 (식약처) → 국가출하승인 적합 (식약처) → 출하·시판 (제조·수입사)
  • 국가출하승인 신청 (제조·수입사) → 국가출하승인 접수 (식약처) → 검정시험 시료 채취 (식약처) → 검정시험 및 제조및품질관리요약서 검토 (식약처) → 국가출하승인 부적합·반려 (식약처) → 폐기 (제조·수입사)
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지재권 면제인가? 특허 공개인가?

TRIPs협정 제31조의 강제실시권 조항을 보면, 최근 거론되는 지재권 면제방안과 유사한 내용을 이미 담고 있다. 즉 각국 정부는 원개발자인 특허권자의 승인 없이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ing)을 부여할 권한을 갖고, 위기상황 해결에 필요한 의약품, 백신 등 의료기술에 대한 사용을 허락할 수 있다.
이에 캐나다 등 일부 국가는 이미 특허법을 개정해 정부가 관련 특허 및 기술사용을 허가할 수 있도록 입법조치를 하였고, 다만 특허 사용을 허가하는 대신 권리자에게는 적절한 보수를 제공하며, 그 기술이 전염병 확산 방지 조치에만 사용되도록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특허법상 강제실시권 제도를 두고 있기 때문에 권리자의 허락 없이 실시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실시 요건이 까다롭다는 이유로 그 완화를 위한 특허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지재권 면제나 특허의 전면 공개보다는 원천기술에 대한 지재권을 살려두고, 백신 생산능력을 가진 다른 나라들이 동시에 대량생산을 할 수 있도록, 그 지재권을 보유한 국가나 연구기관, 제약사에 적정한 실시료를 내고 기술이전을 받아서 위탁 생산하게 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백신 개발에 관한 원천기술이 없는 우리나라가 백신 생산역량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강제실시 방식보다는 원개발자와 실시계약을 통한 위탁생산 방식이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의약품 제조기술은 0.01%만 공개되지 않아도 그 효과를 내지 못하고 부작용이 클 수 있는데, 바이오 기술의 경우 특허출원할 때 기술내용을 전부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며, 설령 백신 기술을 공개하라고 해도 그 개발자가 출원할 때 공개하지 않은 핵심기술을 내놓았는지 여부를 검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1일 로마에서 화상으로 열린 세계보건정상회의. 참가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공평하고 충분한 백신 보급을 위한 협력과 저소득국 지원 지속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주요 쟁점과 대응전략

앞으로 지재권 면제방안을 둘러싼 본격적인 논의는 WTO TRIPs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TRIPs의 통합적인 지재권 보호 규정은 국제적으로 공통된 기준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WTO는 코로나19와 같은 공공 보건위기 상황에서 의약품, 의료기술 등의 공유를 권장하고 있으며, 주요 용어 등 다양한 분야의 잠재적 혼돈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 언급한 강제실시권 조항 이외에도, 우리 정부 및 민간기업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TRIPs 내용에는
① 최적 실시형태(Best Mode)의 공개의무(TRIPs 29조 1항)
② 영업비밀 보호(TRIPs 39조 2항)
③ 정부제출 데이터 보호(TRIPs 39조 3항)
④ 파이프라인 프로덕트(Pipeline Product)의 보호 문제 등이 있다.

먼저, 특허등록에 의해 독점적인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실시 가능할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하며, 최적 실시형태(Best Mode)를 공개해야 한다. 구체적이고 최적의 실시형태를 공개하는 것은 국제적인 기술이전에도 불가피한 요건이다. TRIPs뿐만 아니라 미국도 이러한 내용을 국내법에 규정하고 있고, 우리나라 특허법도 똑같은 규정을 두고 있으며(제42조 3항), 일본의 특허법도 마찬가지다 (제36조 4항).
TRIPs는 특허출원을 하지 않은 미공개 정보(영업비밀)와 정부기관에 제출된 데이터에 대해서도 보호조항을 두고 있다. 영업비밀 보호대상은 비공지성·경제성·비밀유지성을 구성요소로 하여 건전한 상업적 관행(Honest Commercial Practices)에 반하여 취득되거나 이용되는 경우에 적용된다. 신규 의약품 또는 신규 화학물질을 사용한 농약품 등의 제조허가와 관련해 정부에 제출된 임상시험 자료에 대한 보호규정도 두고 있다.

또한 특허등록의 대상이 되지만, 아직 개발 중이거나 시판되지 않은 의약품에 대한 보호를 파이프라인 프로덕트(Pipeline Product)라고 하는데, TRIPs 체결 당시 소위 파이프라인 프로덕트에 대해서도 과도기적인 보호대책을 강구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TRIPs가 ‘파이프라인’에 들어 있는 의약품을 포함해 모든 대상물에 적용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TRIPs는 파이프라인 의약품 등에 대하여 WTO 발효일 이후 5년간의 독점시판권을 보장하도록 경과규정을 두었으나, 협정 본문에는 채택되지 못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부분은 백신 개발 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논란이 커질 수 있어, 매우 민감한 주제이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주요 코로나19 백신 개발국과 생산 가능국

주요 개발국
미국: 화이자-바이오엔텍, 모더나, 존슨앤드존슨(얀센), 노바백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
러시아: 스푸트니크 V
중국: 시노백, 시노팜, 칸시노, 시노팜-우한
인도: 바라트바이오테크
주요 생산 가능국
미국, 영국, 인도, 노르웨이, 프랑스, 스위스, 중국, 체코, 네덜란드, 벨기에, 일본, 인도네시아, 한국, 러시아, 아르헨티나, 캐나다
자료: 네이쳐

우리 정부는 무엇보다도 백신 개발 관련 특허출원 시 ‘최적 실시형태(Best Mode)’ 공개의무 원칙의 준수 여부를 특허청에서 철저하게 심사하고, 백신 생산 확대를 위한 △원료 수급 원활화, △바이오 투자 지원, △기술이전·라이선싱 협력 확대 등을 위한 정부 지원 강화 등 ‘적극 행정’을 펼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바이오산업의 새로운 성장과 도약의 계기를 맞이한 우리나라에는 강제실시권 확대방안보다 이 방안이 더 효과적이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의 바이오산업은 새로운 성장과 도약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모든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을 사활적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백신 개발을 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후발국가에 속하던 우리나라가 백신 생산의 허브국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일 것이다.
우리 정부나 민간기업은 단지 우리만 안전하고 강대국이 된다는 근시안적 관점이 아니라, 인간존엄과 인류공통의 번영이라는 보편적 목표에 중점을 두고, WTO TRIPs에서의 지재권 논의나 백신 공동구매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한 공평한 분배 이용을 동시에 추진해나가야 한다.

캐서린 타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 5월 5일,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면제 지지’를 밝히는 자리에서 백신 제조를 확대하고 원료 공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