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사

총성 없이 치열했던 한·일 딸기 전쟁사

박정호 명지대 경제학과 특임교수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당시 경기장 밖에서는 한·일 간에 치열한 번외 경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딸기 전쟁’이다. 우리나라가 제공한 딸기를 맛본 일본 선수가 “한국 딸기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다”고 한 말이 방송을 탔는데 일본에서 “일본 품종이 유출된 것”이라고 공개발언을 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이 즉각 반박에 나서면서 2000년대 총성 없이 치열했던 ‘한·일 딸기 전쟁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대부분의 사람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품을 떠올릴 때면,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등과 같은 공산품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효자 수출품목이 되어준 것 중 하나가 의외로 농수산물이었다. 광복 이후에는 중요 생필품의 가격이 폭등했고, 전반적인 물가 역시 급격히 상승했다. 이때 부족한 생필품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해오는 무역이 성행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국내 상인들이 수입품의 대금 결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현금이 아니라 오징어·새우·미역과 같은 현물이었다. 광복 이후 불안정한 국내 통화로 대금을 결제하려 해도 중국 상인들이 이를 거절했으며, 달러 같은 외화는 더더욱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후 우리 경제의 부족한 외화보유고를 채워준 수출품목 또한 농산물이었다. 특히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선전한 수출품목 중에도 농산품이 적지 않다. 딸기가 대표적이다. 최근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는 ‘한국산 딸기는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인기 폭발이다. 싱가포르·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에서 한국산 딸기는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사용되는 디저트 등의 식재료로 각광받고 있다.
딸기는 재배기간이 길고 노동력이 많이 드는 작물이지만, 저온에서도 생육이 양호해 난방비 부담이 적고, 시장 가격이 안정돼 있는 소득 작물이다. 최근에는 고랭지 여름딸기 생산 농가도 늘어나고 있어 딸기의 연중생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딸기가 대표 수출품목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연중생산이 가능하다는 사실보다는 품종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 덕분이다.

비싼 로열티 주던 일본 품종 대신 국산 개발

한국 딸기 시장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아키히메(장희)·레드펄(육보) 등 일본 품종의 시장점유율이 90%를 넘어 ‘일제(日製) 치하’였다. 국산 개발 종자가 없었기에 일본에 비싼 로열티를 주고 종자를 수입해 생산해야 했다. 1995년부터 정부 주도하에 품종 개발을 시작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자 언론에서는 “일본에 로열티 주고 뭐가 남나, 딸기 농가 속 탄다”(2004년, 중앙일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쓸 정도였다. 외래품종 교배를 통해 국산 품종 개발에 성공한 것은 2005년 들어서다. 현재 국산 딸기(개량품종)의 품종 보급률 94.5%를 차지하고 있으며 더 이상 일본에 지급하는 로열티도 없다.
품종 개발 초기에는 기형 발생률이 높았다. 재배도 까다롭고 과실의 크기도 작아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었다. 국내 품종 육성기관들은 이런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며 신품종 개발에 매진했다. 그 결과 대표적인 국산 딸기 ‘매향’을 시작으로 설향·킹스베리·금실·비타베리·하이베리 등 우수한 품종 개발에 성공했다. 지금은 국산 품종 수만 90여 가지에 이르며 국립종자원에 등록되지 않은 품종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내수용 딸기 시장은 설향이 85%를 차지한다. 설향이 국내 시장을 휘어잡은 이유는 생육이 쉽고 맛이 좋은 반면 경도가 약해서 수출용으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출용 딸기는 금실과 매향이 전체 품종의 75%를 차지한다. 과육이 단단해서 생으로 수출하기 적합하다.
일본 품종이 장악하던 딸기 시장은 2005년을 기점으로 국산 품종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2005년 전체의 9.2%에 그쳤던 국산 딸기 재배 면적은 현재 95%를 넘어섰다. 한국산 딸기는 이제 일본산과 수출 경쟁을 벌인다. 한국이 신선딸기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는 홍콩,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순이다. 2021년 12월 기준 홍콩에 1,800톤, 싱가포르에 1,100톤, 태국에 583톤을 수출했다. 한국의 딸기 수출 경쟁국으로는 미국과 일본을 꼽을 수 있다. 가장 큰 경쟁국인 미국산 딸기는 대체적으로 당도가 낮지만 품종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다. 일본은 딸기 농가가 줄면서 수확량이 감소 추세인 데다 한국산에 비해 가격이 두세 배 비싸다. 반면 우리나라는 적극적인 품종 개발을 통해 매향·금실·킹스베리 등을 육성해 해외시장에서도 품질을 인정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격경쟁력도 있다. 수출액도 증가 추세로 2020년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하던 수출도 정상화되어 2020년 5,370만 달러에서 2021년 7,45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0%나 늘어났다. 수출이 늘어나면서 딸기 전용 항공기도 등장했다. 코로나19로 물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수출 시기인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싱가포르와 홍콩 노선에 전용 항공기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자생종이 없어 외국 품종들이 활개치던 한국의 딸기 시장이 품종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이룬 성과들이다.

(위 그래프) 연도별 딸기 수출액 추이, 한국산 딸기 수출국 TOP5 - 홍콩 21,684, 싱가포르 15,414, 태국 8,886, 베트남 7,346, 말레이시아 4,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