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실리콘밸리를 축으로 한 인공지능(AI) 기술 기반과 완성차·스타트업 연구 인프라를 두루 갖추며 미국 자율주행차 산업의 심장부로 자리매김했다. 한때 제한된 구역에서만 시험하던 자율주행 기술은 이제 도심 한복판에서 승객을 실어 나르는 로보택시(robotaxi) 서비스로 진화하며 일상의 이동 수단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구글 모기업인 알파벳의 자회사 웨이모(Waymo)를 필두로 한 주요 자율주행 기업은 최근 몇 년 새 캘리포니아주 내 서비스 권역을 빠르게 넓히며 본격적인 상업화 궤도에 올라섰다. 웨이모는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는 완전자율주행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스마트폰 앱으로 일반 차량 호출 서비스를 이용하듯 자율주행차를 부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도로 위 자율주행차가 늘면서 안전과 책임 소재를 둘러싼 문제도 함께 불거지고 있다. 기존 교통법규는 사람이 운전대를 잡는다는 전제로 설계돼 있어, 운전자가 아예 없는 차량이 법규를 위반하거나 사고를 일으켰을 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이런 규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캘리포니아주는 자율주행 기술의 성장을 뒷받침하면서도 실제 운영 과정에서 불거지는 문제를 관리할 법적 장치를 마련해 왔고, 그 결과물이 2026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AB 1777(Assembly Bill 1777)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자율주행차 역시 일반 차량과 동일하게 교통법규의 적용을 받으며, 위반 시 명확한 관리·처벌 절차를 거치도록 한 데 있다.
책임 소재 공백을 메우는 AB 1777
자율주행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운전자 없는 차량의 법규 위반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였다. 사람이 운전하는 차량은 신호 위반이나 불법 정차, 교통 흐름 방해 등이 적발되면 경찰이 곧바로 운전자에게 신호 위반 티켓을 발부하고 벌금을 매기면 됐다. 하지만 완전자율주행차는 차에 아예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아 이런 기존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자율주행차가 도로 표지판을 잘못 인식하거나 교차로 통과 중 문제를 일으키고, 소방차 등 긴급차량의 진로를 막아서는 사례까지 이어지면서 경찰과 소방 등 대응 기관 사이에서 새로운 현장 절차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AB 1777은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자율주행차 운영 기업에 명확한 책임 구조를 부여했다.
법에 따르면, 경찰이 자율주행차의 법규 위반을 확인하면 관련 정보를 캘리포니아주 차량관리국(DMV)에 통보하고, DMV가 이를 근거로 행정 절차와 관리·감독을 맡는다. 이는 자율주행 기업은 단순히 기술 개발과 서비스 확장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도로에서 벌어지는 운행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로보택시 운행 대수가 늘어날수록 개별 차량의 운행 데이터 관리와 교통안전 기준 충족 여부가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요소로 부상할 전망이다. 캘리포니아주 DMV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 자율주행차 시험과 상용화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지역 중 하나로, AI 기업과 완성차 제조사, 센서·반도체 기업이 한데 몰려 있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생태계가 동시에 갖춰져 있다는 점이 경쟁력으로 꼽힌다.
최근 자율주행 산업의 경쟁 구도가 ‘누가 가장 빨리 차량을 자율주행화하느냐’보다 ‘누가 가장 안전하고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스마트카 융합 산업, 한국 기업엔 새로운 기회
AB 1777의 시행은 캘리포니아주 자율주행 산업이 기술 검증 단계를 지나 실제 상용화, 운영·관리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이는 단순한 지역 트렌드가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산업 전반의 방향을 가늠케 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차가 늘어날수록 안전 기준, 사고 대응 체계, 데이터 관리 규정의 중요성 역시 함께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자율주행 산업은 완성차 업계를 넘어 AI, 반도체, 통신, 클라우드, 사이버 보안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융합 산업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캘리포니아주는 이런 흐름을 실증하는 대표 시장으로서 글로벌 기업의 기술 검증대 역할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 기술 확산은 자동차 산업만의 변화가 아니다. 반도체, 전자 부품, 통신, AI, 클라우드 등 다양한 산업이 함께 견인력을 얻고 있으며, AI 알고리즘과 차량용 반도체, 카메라·라이다(LiDAR) 센서, 통신망, 클라우드 데이터 처리 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모빌리티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차량이 단순 이동 수단을 넘어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으로 진화하면서 자동차 공급망도 내연기관 중심에서 전자·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으며,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산업으로 전환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완성차 기업뿐 아니라 관련 부품·기술을 보유한 한국 기업에도 새로운 미국 진출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반도체 제조 역량과 전자 부품 기술력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한국은 전기차 배터리, 카메라 모듈, 차량용 디스플레이, 통신 부품 등 스마트카 핵심 분야에서 이미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자율주행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에서 한국 기업이 단순 부품 공급 업체를 넘어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크다. 코트라(KOTRA) 로스앤젤레스 무역관이 인터뷰한 현지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최근 자율주행 산업의 경쟁 구도가 ‘누가 가장 빨리 차량을 자율주행화하느냐’보다 ‘누가 가장 안전하고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의 스마트 교통 인프라와 자율주행 서비스 확대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 기업은 현지 규제 변화와 기술 트렌드를 꾸준히 살피며 차량용 반도체, AI 기반 소프트웨어, 센서, 통신 모듈, 원격 관제 시스템 등 미래 모빌리티 전반에서 협력과 진출 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