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소비재가 한국 수출의 문법을 바꾸고 있다. 지난해 화장품 수출은 114억 달러로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랐고, 농수산식품도 124억달러를 기록하며 나란히 100억달러 벽을 넘었다. 반도체·자동차 등 대기업 품목이 이끌어온 수출 전선에 중소·중견기업이 주도하는 소비재라는 새 축이 더해진 것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아마존, 틱톡숍, 쇼피 등 플랫폼 기반 역직구 구조가 있다. 정부도 2030년까지 ‘국가대표 K-역직구 플랫폼’ 10개 사를 육성하겠다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통상’은 유통산업 전문가인 구진경 산업연구원(KIET) 신산업전략연구실장과 유통 현장 전문가인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에게 K-소비재 열풍의 실체와 지속 성장의 조건을 물었다.
화장품과 농수산식품이 연이어 수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단순 한류 효과로 봐야 하나, 한국 소비재 산업의 체질 변화로 봐야 하나.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이하 이종우) “기술집약형산업과 중공업이 해외 기업을 상대하는 기업 간 거래(B2B) 수출이라면, 소비재는 해외 소비자를 직접 설득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제품 개발과 생산을 넘어 현지 소비자 마케팅 역량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판매 난도가 훨씬 높다. 1960년대 경공업, 1980년대 중공업, 1990년대 기술집약형산업으로 이어져 온 수출 역사에서 화장품·식품의 각각 100억달러 돌파는 대한민국 ‘브랜드 역량’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큰 의미가 있다.”
과거 반도체·자동차 같은 대기업 중심 수출구조와 달리 K-소비재는 중소·중견기업 비중이 높다. 한국 수출구조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
구진경 산업연구원 신산업전략연구실장(이하 구진경) “수출 ‘주체’의 변화와 함께 ‘유통 진입 장벽’의 변화를 같이 봐야 한다. 농수산식품은 중소·중견기업 비중이 83%, 화장품의 경우 70%를 넘는데, 이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채널 자체가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과거 반도체·자동차는 총판, 딜러망, 현지법인이라는 막대한 고정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만 수출할 수 있었다. 반면 K-소비재는 플랫폼에 입점하는 순간 전 세계 소비자와 접점이 생긴다. 유통이 ‘자본력의 문제’에서 ‘콘텐츠와 기획력의 문제’로 바뀐 것이다. ‘수직 계열화된 소수의 챔피언’에서 ‘수평적으로 분산된 다수의 브랜드’로 한국 수출의 기본 문법이 바뀌는 신호다. 다만 중소기업 중심 구조는 환율 변동이나 플랫폼 정책 변경 하나에 휘청일 만큼 취약하다. 정책의 무게중심도 개별 기업 보조금에서 해외 인증, 공동 물류센터, 데이터 분석 지원처럼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공동 인프라 제공’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종우 “B2B 방식의 기술집약형산업은 소수의 해외 기업을 설득할 기술·제조 역량이 관건이지만, 소비재는 다수 소비자 니즈에 맞는 제품과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한다. 글로벌 소셜미디어(SNS) 이용 증가가 한국 제품 노출 효과를 배가시키면서 중소·중견기업까지 해외 진출 판로가 넓어지고 있다. 현지 마케팅과 플랫폼에서 제품 노출이 수출 성공의 핵심이 되었다.”
과거에는 현지 유통망 확보가 핵심이었다면 지금은 아마존, 틱톡숍, 쇼피 같은 플랫폼 기반 직판 구조가 커지고 있다. 수출 공식이 바뀌고 있다고 보나.
구진경 “수출 공식이 바뀐 정도가 아니라 유통 단계 자체가 압축됐다. ‘생산→무역상사→현지 총판→매장→소비자’의 4~5단계가 ‘생산 →플랫폼→소비자’로 줄었다. 다만 플랫폼마다 성격이 전혀 다르다. 아마존은 검색 기반이라 리뷰·평점 관리가 중요하고, 틱톡숍은 알고리즘이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발견 기반이다. 실제 틱톡숍이 지난 1분기 미국 뷰티·퍼스널케어 시장에서 약 20% 점유율을 기록한 것은 콘텐츠 큐레이션의 힘이었다. 쇼피는 동남아 현지 물류망을 자체적으로 갖춘 물류 통합형이고, 알리익스프레스는 초저가, 롱테일 상품1) 구색으로 대결하는 구조이며, 쿠팡 글로벌은 역직구 자체를 특화한 플랫폼이다. 즉 ‘플랫폼에 올린다’는 하나의 동작이 실제로는 전혀 다른 다섯 가지 유통 전략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유통 기능의 ‘언번들링(unbundling)2)’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과거 유통사가 통째로 담당하던 소싱, 물류, 마케팅, 정산기능이 이제는 플랫폼(마케팅·결제·트래픽), 풀필먼트 대행사(물류·통관), 브랜드(상품 기획) 세 주체로 쪼개졌다.”
이종우 “과거 해외 진출 방법은 현지 유통 업체 입점, 총판 계약, 직접 진출 세 가지 방안 모두 리스크가 컸었다. 이제는 플랫폼에 입점해 해외 배송 시스템만 이용하면 곧바로 현지 소비자에게 제품을 소개할 수 있다. 과거처럼 큰 투자를 하지 않고 현지 소비자 반응을 볼 수 있게 돼서, 해외 직구 플랫폼을 통해 타깃 국가에 판매 테스트를 한 후 본격적인 마케팅과 현지화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수출 프로세스의 혁신적 변화라 할 수 있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ODM·OEM 기반 중소 브랜드의 글로벌 성공 사례가 많다. 한국 제조 생태계의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종우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의 ODM3)·OEM4) 제조 역량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다. 오랫동안 세계 주요 화장품 브랜드의 입맛에 맞춰 제품을 개발·생산·공급해 온 덕분에, 레시피 개발부터 원료 공급, 제조·생산까지 어느 국가도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 화장품 콘셉트와 제조 비용만 있으면 며칠 만에 브랜드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산업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는 점이 중소 브랜드 글로벌 성공의 토대다.”
정부가 2030년까지 ‘국가대표 K-역직구 플랫폼’ 10개 사를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성공할 수 있을까.
구진경 “개별 기업 보조금에서 벗어나 유통 인프라를 공공재처럼 육성한다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관건은 네 가지다. 첫째, 플랫폼이 단순 입점 접수를 넘어 카테고리별 전문 MD의 실질적 큐레이션 기능을 갖춰야 한다. 둘째, ‘인천 물류센터까지만 보내면 통관·배송은 플랫폼이 전담한다’는 구상은 속도와 비용에서 개별 기업이 직접 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해야 한다. 셋째, 환전, 수수료, 관세 환급이 얽혀 길어지는 정산 주기에 대해 표준 정산 주기와 선지급 옵션 같은 금융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넷째, 10개 플랫폼이 권역별·카테고리별로 역할을 나누지 않으면 정책 자원이 분산된다.
‘몇 개를 육성하느냐’보다 ‘어떤 조합으로 시장을 나눠 맡기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대표 K-역직구 플랫폼’ 구상도 결국 언번들링 기능 중 물류와 통관 기능을 국내 물류센터 기반으로 표준화하겠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구조의 함정도 분명히 짚어야 한다. 유통 단계가 압축된다는 것은 리스크도 압축된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현지 총판이 재고관리와 환리스크, 고객 클레임 처리 등을 일정 부분 흡수해 줬지만, 지금은 그 모든 부담이 브랜드사와 플랫폼 사이에서 직접 오간다. 특히 정산 주기, 반품·클레임 처리, 알고리즘 노출 변경 같은 리스크를 개별 중소기업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다음 단계는 이 언번들링 기능을 다시 누가, 어떻게 재조합해서 중소기업의 리스크를 흡수해줄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해외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수수료, 알고리즘, 가품 문제 등 플랫폼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정부나 기업 차원의 대응 방향은.
구진경 “플랫폼 유통은 편리한 만큼 ‘협상력의 비대칭’이라는 근본 문제를 안고 있다. 수수료율이 플랫폼 정책에 따라 사전 예고 없이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개별 중소기업 브랜드는 이 변화에 대응할 협상 창구조차 없다. 국내 유통 대기업과 중소 납품 업체 간 힘의 불균형 문제가 국경을 넘어 더 큰 규모로 반복되는 셈이다. 틱톡숍 같은 발견 기반 플랫폼은 알고리즘 변경 하나로 어제까지 잘 팔리던 상품의 노출 자체가 막힐 수 있고, 검수 기능이 느슨한 오픈 마켓형 역직구 플랫폼에서는 가품 탓에 정품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대응은 세 갈래다.
특정 플랫폼에 매출이 쏠리지 않도록 ‘멀티채널 전략’을 정부 컨설팅으로 지원하고, 지식재산권 등록 지원과 정품 인증 체계, 플랫폼과 공동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정부나 수출 지원 기관이 판매 데이터를 모아 플랫폼과 협상 창구를 일원화하는 것이다. 결국 플랫폼을 인프라로 삼되 그 인프라에 종속되지 않도록 대안 채널과 협상력을 함께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이종우 “아직 해외 역직구 시장 선두에 선 국내 플랫폼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역직구 플랫폼이 거대하게 성장하면 수출 기업은 플랫폼에 종속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 셀러와 브랜드를 보호하려면 정부 통제가 가능한 국내 역직구 플랫폼이 필요하고, 국내 유통 업체가 역직구 플랫폼에 진출한다면 국가 차원의 지원을 통해 시장 리더로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K-소비재 열풍이 일시적 유행에 그칠 가능성은 없나. 현재 산업의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인가.
구진경 “여러 해에 걸쳐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수출 대상국이 200개국을 넘어서는 저변을 보면 단순 유행으로 보기 어렵다. 다만 리스크는 네 가지 층위로 나뉜다. 미국 관세정책이나 중국의 화장품 원료 규제 강화 같은 통상 환경 불확실성, 특정 플랫폼의 알고리즘·수수료 정책 변경 하나가 업계 전체 매출을 흔드는 유통 채널 집중 리스크, SNS발 트렌드 휘발성 그리고 베트남 등 후발국의 추격이다. 열풍을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굳히려면 연구개발(R&D) 투자, 브랜드 자산 축적, 채널 다변화라는 세 축이 동시에 강화돼야 한다.”
이종우 “이미 해외시장에서 K-식품과 유사한 콘셉트를 가진 카피 상품이 나오고, 타국 제품이 한국산인 척 판매되는 사례도 있다. 지금은 한류 유행 덕에 호기심 구매가 일어나지만, 유행이 지나면 오로지 제품 경쟁력으로 현지 소비자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지금의 열풍은 해외시장에 진입할 큰 기회이며, 단기 실적을 넘어 현지 안착을 위한 현지화 전략이 필요한 때다.”
화장품은 미국·유럽 인증 규제, 농수산식품은 물류·인프라가 변수로 꼽힌다. 글로벌 확장 과정의 현실적 과제는.
이종우 “미국과 유럽은 화장품의 안전성과 환경 기준이 엄격해, 화장품 수출에 큰 허들이 되고 있다. 정부가 화장품을 수출 중점 산업으로 지정하고 국가별 인증 전문 센터나 대행 기관을 세워 맞춤형 인증을 지원한다면, 국내 여러 브랜드에 기회가 열릴 것이다. 반면 관세는 큰 이슈가 아니라고 본다. 미국·유럽이 한국에만 차별적 관세를 적용할 수는 없어 경쟁국인 일본·중국도 같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식품은 경쟁이 치열한 산업으로 현지화가 관건이다. 플랫폼 진출 후 현지 반응이 좋다면, 현지 유통 입점이나 총판 단계로 가는 게 일반적이다. 현지 기업과 경쟁하려면 장기적 관점에서 현지 법인과 공장 설립 투자가 필요하다. 현지에서 원재료를 수급하고 소비자 맞춤 마케팅 전략으로 접근해야 안착할 수 있다.”
앞으로 K-소비재가 추가 성장하려면 ‘다음 타자’는 무엇이 될 것으로 보나.
이종우 “화장품과 식품의 성공 공식은 제품에 한국의 특별한 가치가 결합했다는 점이다. 다음 타자로는 패션과 건강기능식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패션은 SNS·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노출도가 높고 한국 소비재를 좋아하는 해외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1~2010년생)와 연계성이 크다. 건강기능식품은 식품의 확장 카테고리로, 일본도 세계적인 일식 유행 이후 약·건기식 유행으로 발전한 전례가 있다. 저성장 국면에서 소비재 수출은 기술 산업을 잇는 미래 국가 먹거리가 될 수 있는 만큼,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용어설명
- 1롱테일 상품
판매량이나 수요가 적은 다수의 틈새(niche) 상품군을 가리키는 개념. 통계학에서 나온 용어로, 2004년 ‘와이어드’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이 비즈니스 용어로 대중화했다.
- 2언번들링(unbundling)
기존에 하나로 묶여 있던 서비스를 개별 앱이나 모듈로 분리해 소비자가 필요에 따라 선택하도록 하는 전략을 말한다.
- 3ODM
주문자가 제조 업체에 제품 생산을 위탁하면 제조 업체는 이 제품을 개발·생산해 주문자에게 납품하고, 주문 업체는 이 제품을 유통·판매하는 형태를 말한다.
- 4OEM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는 주문 업체에서 생산성이 있는 제조 업체에 자사에서 요구하는 상품을 제조하도록 위탁해 완성된 상품을 주문자의 브랜드로 판매하는 방식을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