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는 나이지리아와 앙골라 등 주요 산유국이 다수 있다. 에너지자원 공급원으로서 중동을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훌륭한 ‘플러스 원(+1)’ 보완 옵션은 될 수 있다.” 2월 28일(현지시각),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은 글로벌 에너지·원자재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통행을 사실상 차단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가격과 물류비용 상승 압력이 커졌고, 자본시장에도 충격파가 전해졌다. 문제는 호르무즈해협을 비롯한 중동 불안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자원과 리튬·니켈·코발트 등 핵심광물의 공급원과 수송로를 다변화하기 위해 절치부심 중이다. ‘영원한 기회의 땅’ 아프리카가 다시금 주목받는 원인이기도 하다.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티머시 디킨스 주한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상공회의소 회장은 “에너지자원과 핵심광물이 풍부한 아프리카와 EPC(설계·조달·시공)와 에너지 솔루션 등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의 파트너십은 아프리카 경제가 성장할수록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며 중국과 일본에 비해 민간 기업이 아프리카 진출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을 아쉬워했다. 주한남아공상공회의소는 한국에 있는 유일한 아프리카국가의 상공회의소다.
남아공 프리스테이트대와 영국 런던법과대를 졸업하고 런던에 있는 로펌 링크레이스터의 변호사로 근무하던 디킨스 회장은 2013년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로 한국에 왔다. 2010년 한국과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국내 로펌과 기업에서 외국 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남아공과 영국 변호사 자격증을 모두 보유한 그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과 아프리카 간 경제 교류가 워낙 드물었기에 남아공 변호사 자격증은 ‘장롱면허’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런데 2016년 대륙아주가 국내 로펌 최초로 아프리카 전담 그룹을 출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소속 로펌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주한남아공상공회의소를 출범한 디킨스 회장은 낮에는 아프리카 전문 변호사로, 퇴근 후에는 주한남아공상공회의소 회장으로 한국과 아프리카 국가 간의 경제 교류를 돕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주한남아공상공회의소는 어떤 단체인가.
“한국에 있는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의 상공회의소다. 그래서 남아공은 물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와 한국의 경제협력과 무역 증진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친목 단체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비즈니스와 무역에 초점을 맞춘 전문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30개 남짓한 한국 기업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직 한국에 진출한 아프리카 기업은 많지 않다는 한계는 있다. 한국의 해외투자와 무역에서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율도 2% 미만에 불과하다. 하지만 에너지와 인프라, 핵심광물을 중심으로 한국과 아프리카 간 교역이 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해협 봉쇄 사태 여파로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앞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때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좀 더 에너지, 특히 석유와 LNG 관련 움직임이 크게 부각됐다. 더 저렴한 에너지 공급원을 찾기 위해 모두가 바빠졌기 때문이다. 국가를 불문하고 새로운 파트너십을 통해 공급망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게 중요한 과제가 됐다. 그런 점에서 나이지리아와 앙골라 등 산유국은 물론, 나미비아·모잠비크·탄자니아·세네갈 등 ‘LNG 부국’이 포진한 아프리카와 한국의 협력은 잠재력이 매우 커 보인다.”
북·서 아프리카의 산유국과 한국의 자원 협력을 어떻게 전망하나.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본다. 에너지자원 수급 채널 다변화가 절실한 한국은 아프리카를 일종의 보완재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중동산 석유와 LNG를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아프리카산 에너지 자원이 훌륭한 플러스 원(+1) 보완 옵션은 될 수 있다. 아프리카 국가는 전통적으로 천연자원을 수출해 해외에서 가공한 뒤 다시 사 왔다. EPC와 에너지 솔루션, 물류·운송 부문에서 기술력이 뛰어난 한국이 혜택을 볼 수 있는 모델이다. 현지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협력 초기에는 비용 부담이 클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프리카 경제가 성장을 거듭할수록 한국에 더 큰 몫이 돌아갈 것이다. 아프리카는 에너지자원뿐 아니라 한국이 갈급한 전략 광물도 풍부하다. 식량 안보 부문에서도 ‘윈윈’ 협력이 가능할 것이다.” 아프리카는 금(전 세계 매장량 40%)과 다이아몬드 등 귀금속을 넘어 기후 위기로 시급해진 친환경 에너지전환에 필요한 핵심광물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우라늄, 다이아몬드, 철 등 주요 광물의 30%가 매장돼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이미 전기차 양극재에 사용하는 코발트의 매장과 생산 세계 1위다. 탄자니아와 마다가스카르에는 음극재의 핵심 소재로 중요성이 커진 흑연이 풍부하다.
현지에 정유 시설을 건설해 유럽 등으로 함께 수출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만 유럽이 친환경 에너지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수요가 충분할지는 모르겠다.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호르무즈해협 사태로 전통적 화석연료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됐다. 청정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 등으로 에너지 소비가 급증하면서 특정 에너지에만 의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석유는 앞으로 최소한 20~30년 동안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전통적인 화석연료도 기술 발전으로 더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기본적인 일상 전력도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인프라 투자를 앞세운 중국이 핵심광물 확보 경쟁에 앞서 있는데.
“인프라를 깔아주는 조건으로 그렇게 하는데, 채굴한 광물을 가공해 다시 아프리카에 팔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그런 조건부 인프라 투자가 아니라 선제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고 나면 아프리카 경제도 잠재력을 꽃피울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도 점점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나온 핵심광물을 아프리카에서 가공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한국 기업이 아프리카에서 중국 기업보다 어떤 부분에서 앞선다고 보나.
“무엇보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매우 좋고 전 세계에서 존경받고 있다. 아프리카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는 EPC 역량을 두루 갖춘 대기업이 많다. 핵심 인프라가 부족한 아프리카의 현 상황은 그런 한국 기업에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5년 앞을 보고 가면 곤란하다. 30~40년 파트너십을 보고 움직여야 한다. 한국은 70여 년 전 한국전쟁 당시 아프리카 국가(남아공과 에티오피아)의 도움을 받았다. 이후 한국의 눈부신 발전과 성장을 아프리카 국가에 청사진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렇게 접근하면 한국 기업에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고 나면 아프리카 경제도 잠재력을 꽃피울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도 점점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들이 한국과 협력이 유망할까.
“에너지 분야에서 인프라가 이미 성숙한 시장으로는 남아공을 빼놓을 수 없다. 자원이 풍부하고 잠재력이 큰 나라가 아프리카에 많지만, 기본적인 인프라까지 잘 갖춰져 있다면, 한층 협력이 수월할 수 있다. 케냐와 탄자니아, 모로코 등도 인프라 조건이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다. 한국은 남아공 정부가 2025년 10월 발표한 통합자원계획(IRP) 개정안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2039년까지 105GW(기가와트) 이상의 발전 용량을 추가하고 5200㎿(메가와트) 규모의 신규 원자력발전을 포함해 태양광·풍력 확대, 6000㎿ 가스 발전 도입, 청정 석탄 실증 등을 추진, 전력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는 것이 골자다. 한국 기업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 기업이 남아공을 기반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건 괜찮은 전략일 수 있겠다.
“(영미권 문화 영향이 강한) 생활과 비즈니스 환경의 친밀도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경제 환경 측면에서 좋은 선택일 수 있다. 또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파이낸싱을 스탠더드은행을 비롯한 남아공의 주요 은행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자금 조달 측면에서도 유리할 수 있다. 도로와 공항 등 교통 인프라도 훌륭하다. 아프리카 54개국은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를 통해 지역경제공동체 중심에서 더 확장된 거대한 단일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14억 소비자와 연결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AfCFTA는 아프리카연합(AU) 55개국 중 에리트레아를 제외한 54개국이 가입하고 48개국이 비준한 자유무역지대다. 재화와 서비스가 아무런 장벽 없이 오가는 경제 공동체로 설계됐다. 2021년 공식 개시된 AfCFTA는 역내 상품 90%에 대한 관세를 단계적으로 없앤 뒤 향후 전면 철폐할 계획이다. AfCFTA는 서명국 수를 따질 때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자유무역지대로 꼽힌다. 회원국 인구는 14억 명, 54개 서명국의 국내총생산(GDP) 총합은 3조4000억달러(약 5000조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