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법률 전문가가 보는 통상 가격·품질 넘어 산업 정책 대상 된 철강 교역 동시에 높아지는 美·EU 철강 수입 문턱 韓, 면밀한 전략 세워야
  • 이주형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세계 철강 교역 질서가 새로운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8년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철강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유럽연합(EU)은 미국 시장에서 배제된 물량이 역내로 전환될 가능성을 이유로 철강 글로벌 세이프가드를 도입했다. 이 조치는 세이프가드 협정1)상 최대 적용 기간인 8년에 도달해 2026년 6월 말 종료됐지만, EU는 곧바로 EU 신철강 수입관리제도2)에 따라 철강 관세를 50%로 대폭 올리고 연간 무관세 수입 쿼터를 큰 폭으로 축소했다. 한국은 협상을 통해 전용 국가 쿼터를 확보해 EU 전체 감축률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철강 시장 접근이 각국 산업 정책과 통상 협상에 따라 재조정되는 대상이 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美 301조 조사와 겹치는 이중 압박

    미국의 최근 무역법 301조3) 조사도 같은 흐름에서 이해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구조적 과잉생산·설비를 조사하면서 철강을 주요 대상으로 거론한 것은 과잉생산 문제가 전통적인 반덤핑·상계관세를 넘어 산업 정책과 경제 안보 문제로 다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 국내법에 기초한 일방적 통상 수단이며, 그 적용 방식은 WTO 규범과 관계에서 논란이 있어 왔다. 그럼에도 추가 관세나 비관세 조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사실은 한국 철강 산업의 대외 환경을 더욱 불확실하게 한다. 문제는 미국과 EU가 동시에 장벽을 높이면 해당 시장에서 배제된 물량이 제삼국으로 전환되고, 상대적으로 개방도가 높은 한국 시장에 수입 압력이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철강 수출 감소뿐 아니라 국내 가격 하락, 가동률 저하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세이프가드, 보호주의가 아닌 정상적 통상법 수단

    반덤핑관세는 정상가격보다 낮은 가격의 수출과 그 피해를, 상계관세는 외국 정부의 특정성 있는 보조금과 피해를 대상으로 한다. 반면 세이프가드는 수입 행위 불공정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수입이 절대적으로 또는 국내 생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급증해 동종 또는 직접 경쟁 상품을 생산하는 국내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거나 그 우려가 있는 경우, 일정 기간 관세나 수량 제한을 통해 산업 조정 시간을 확보하는 제도다. 글로벌 공급과잉과 제삼국 조치에 따른 무역 전환처럼 여러 국가의 물량이 동시에 유입되는 경우에는 개별 수출자의 덤핑이나 보조금을 일일이 입증하는 것보다 세이프가드가 사실관계에 더 부합할 수 있다.

    엄격한 발동 요건과 절차적 정당성

    세이프가드는 적용 요건이 엄격하고 법적 비용도 많이 든다. WTO 세이프가드 협정과 GATT 19조에 따르면, 수입 증가, 국내 산업의 심각한 피해 또는 그 우려 그리고 양자 간 인과관계가 객관적 자료로 입증돼야 한다. 판매량, 생산량, 생산성, 설비 가동률, 이윤, 손실, 고용 등 산업 전반의 지표를 종합 검토해야 하며, 내수 부진, 원재료 가격, 환율, 기업의 투자 판단 등 다른 요인으로 발생한 피해를 수입 증가의 효과로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 이해관계인에게 의견 제출과 방어의 기회를 보장해야 하고, 조치는 피해 방지 또는 치유와 산업 조정에 필요한 범위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장기 조치에는 단계적 자유화가 요구되며, 주요 공급국과 협의 및 보상, 경우에 따라 상대국의 양허 정지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韓의 과제, 상시 감시 체계와 비례적 조치 설계

    우선 필요한 것은 철강 수입 변화를 상시 감시하고 법정 요건 충족 여부를 조기에 판단할 수 있는 체계다. 관세청 통관 자료와 업계 생산·판매 자료를 연계해 품목별 수입량과 단가, 국별 점유율, 재고, 가동률, 수익성, 고용 변화를 월별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과 EU 등의 조치 전후로 수입 증가율이 급변한 세부 품목에 대해서는 무역 전환의 여부를 분석해야 한다. 동시에 조선·자동차·건설·기계 등 철강 수요 산업의 조달 비용과 공급 안정성도 검토해야 한다. 국내 생산 기반 유지가 필요하더라도 수요 산업의 비용을 과도하게 높이거나 공급 부족을 초래한다면, 조치의 비례성과 공익성이 문제 될 수 있다. 조치 형식도 품목과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야 한다. 수입 증가가 특정 품목에 한정된다면, 조사 대상 상품 범위를 넓혀서는 안 된다. 관세율 할당으로 피해를 치유할 수 있다면, 전면적인 추가 관세보다 덜 제한적인 수단을 우선 검토할 수 있다. 잠정 조치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이 임박하고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조치 기간에는 고부가가치 강재 전환, 탄소 저감 설비투자 등 조정 계획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 세이프가드는 경쟁력 회복을 위한 일시적 조정 장치이지 생산성 개선을 지연시키는 상시적 보호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조사 신청과 증거 수집 역량 보완도 중요하다. 무역위원회·관세청·연구기관·업종별 단체가 통계 자료 표준화와 피해 지표 분석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다만 정부 지원이 조사 결과를 예정해서는 안 된다. 산업의 대표성·동종 상품의 범위, 수입 증가, 피해 간 인과관계는 독립·공개된 절차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돼야 국내 수요 산업의 수용성을 높이고 상대국의 WTO 제소에도 방어가 가능하다. 철강 세이프가드 검토는 EU나 미국의 조치를 모방하자는 제안과 구별돼야 한다. 한국은 규범 중심의 통상 국가로서 WTO 협정과 국내법이 정한 요건을 적용하고, 필요한 경우 한시적·비례적으로 조치해야 한다. 개방경제에서 무역구제제도는 자유무역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예외적 충격을 관리함으로써 개방 체제의 지속 가능성을 보완하는 장치다. 현시점 과제는 세이프가드 발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채 품목별 수입 동향과 산업 피해를 법적 기준에 따라 점검하는 데 있다. 한국의 대응은 법률과 증거에 기초한 구체적인 무역 구제 정책이어야 한다. 수출 시장 접근을 확보하기 위한 협상과 국내시장의 급격한 교란을 관리하는 무역 구제는 상호 대립하는 정책이 아니라, 통상 국가가 함께 운용해야 할 두 축이다.


    용어설명
    • 1세이프가드 협정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19조에 근거해 수입 급증으로 국내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을 때, 회원국이 관세 인상이나 수량 제한 등 긴급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한 WTO 협정. 반덤핑·상계관세와 달리 수입 행위의 불공정성을 전제하지 않으며, 조치 기간과 요건에 제한을 둔다.

    • 2EU 신철강 수입관리제도

      EU가 철강 글로벌 세이프가드를 대체하기 위해 도입한 신규 철강 수입 관리 규정. 철강 관세를 50%로 인상하고 연간 무관세 수입 쿼터를 대폭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한국은 협상을 통해 EU 전체 감축률보다 유리한 국가별 쿼터를 확보했다.

    • 3무역법 301조

      USTR이 외국 정부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조사하고 대응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 미국 국내법상 통상 수단. 협정 위반 여부와 무관하게 적용될 수 있어 일방적 성격을 띠며, WTO 규범과 정합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