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트렌드 글로벌 인사이트 채텀하우스 보고서
美·이란 잠정 평화협정 이후 해상 안보 리스크
"호르무즈는 열리지 않았다"… 다음 위기는 '복수 길목' 동시 봉쇄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Chatham House)는 최근 발표한 전문가 논평에서 미국과 이란의 잠정 평화협정에 호르무즈해협 재개통 계획이 담겼음에도 “해협은 열린 것도, 곧 열릴 것도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협정이 유지되더라도 이란은 언제든 해협을 다시 봉쇄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바브엘만데브해협을 동시에 차단할 경우 그 결과는 재앙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 논평은 미국과 이란의 잠정 평화협정이 사실상 파기된 7월 8일(이하 현지시각) 이전에 작성됐다.

기뢰 제거·통행료·보험료…재개통까지 ‘산 넘어 산’

미·이란이 6월 17일 서명한 양해각서(MOU)는 30일 내 미국의 봉쇄 해제와 전쟁 이전 수준의 해운 통항 복원을 약속하며 “상선 통항이 즉시 시작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양해각서는 동시에 이란이 해협 내 기뢰와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란은 협정 체결 후 30일 이내에 제거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채텀하우스는 이 기뢰 제거 과정이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외부 검증과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전쟁 중 바다에 떨어진 미폭발 잔존 탄약 제거도 병행돼야 한다. 설령 제거가 끝나더라도 국제적으로 공인된 통항분리체계(traffic separation scheme) 등 안전장치가 없다면 선박은 통항을 어렵게 하는 항행 위험에 계속 직면하게 된다. 해협의 향후 운영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 보험사와 해운사는 미국과 이란 양측으로부터 더 많은 이행 의지의 증거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채텀하우스는 재개통 과정에 시간과 신뢰 구축, 다수의 안보 보장이 필요하며, 그사이 더 심각한 ‘길목(chokepoint) 위기’ 리스크가 상존한다고 분석했다.

후티 반군이 나서면, 수에즈운하까지 ‘연쇄 마비’ 가능성도

핵심 경고는 동시다발 봉쇄 시나리오다. 호르무즈해협이 재개통돼도 이란은 재봉쇄 능력을 그대로 유지한다. 봉쇄 위협만으로도 해운을 위축시키고 상당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데, 테헤란이 치러야 할 비용은 많지 않다. 향후 분쟁이 재발하면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해협 차단에 나설 수 있다. 이런 전략의 징후는 휴전 합의 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후티 반군은 6월 8일 홍해를 지나는 이스라엘 및 이스라엘 연계 선박을 차단하겠다고 위협했고, 6월 10일에는 예멘 연안에서 활동하는 소형 선박이 바브엘만데브해협 인근 상선을 위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홍해 해운은 이미 대규모 교란을 겪은 바 있다. 후티 반군은 2024~2025년 홍해에서 상선 190척 이상을 공격해 글로벌 무역에 큰 차질을 빚었고, 2025년 5월 미국과 휴전으로 공격이 멈춘 뒤에도 언제든 해상 교통을 위협할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호르무즈해협이 사실상 폐쇄된 현재, 남아 있는 우회 경로 일부가 홍해 접근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원유를 육로로, 사우디아라비아 홍해 연안 얀부항까지 운송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바브엘만데브해협의 불안이 재현되면 호르무즈해협의 기존 대안마저 위협받는 셈이다. 여파는 또 다른 길목인 수에즈운하로도 번진다. 바브엘만데브해협은 수에즈운하의 남쪽 관문으로, 후티 반군의 공격이 이어지던 2024년 수에즈운하 통항량은 90% 급감했다. 실제 공격이 없어도 위협만으로 보험료 상승과 선원 안전 우려 때문에 해운이 위축된다.

유가 밀어 올리는 봉쇄…충격은 약한 경제에 집중

하나 이상의 해상 길목에서 발생하는 교란은 글로벌 해운 네트워크 전반에 파급효과를 일으킨다. 즉각적 충격은 운송비 상승으로 나타난다. 선박이 고위험 운항 환경에 진입하면서 보험료가 오르고, 희망봉 우회에 따른 항해 장기화로 연료 소비와 선박 운영비가 늘어나며, 대체 항만과 항로 정체가 추가 지연을 낳는다. 바브엘만데브해협 교란은 에너지 시장에도 압력을 가한다. 걸프산 에너지 수출 접근이 줄고 항로가 길어지면 유가와 가스 가격이 올라 광범위한 산업에 인플레이션 효과가 발생한다. 수입의존도가 높은 경제, 특히 이미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국가는 운송·원자재 비용 상승으로 식량·연료·필수재 접근이 줄어들 수 있다. 충격은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소규모 경제와 취약한 수입국이 불균형하게 큰 비용을 떠안으며 기존 인도주의 위기가 악화한다. 경제적·인도적 압박은 각국이 이란·후티 반군과 통항권 협상에 나서도록 내몰 수 있다. 실제 전쟁 기간 인도·파키스탄·말레이시아 등은 테헤란과 개별적으로 호르무즈해협 통항 협상을 시도했고, 민간 기업도 안전 통항을 위한 개별 거래를 추진했다. 심각한 경제 교란에 직면한 국가가 장기 공급망 차질 비용을 감수하느니 양자(兩者) 통항 협정이 낫다고 판단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해적 대응 염두에 둔 기존 체제로는 역부족

홍해 일대에는 이미 해운 보호를 위한 국제 이니셔티브가 여럿 가동 중이다. 유럽 해군 임무, 국제해사기구(IMO)1)의 해상 안보 수송 회랑, 지부티 행동강령 같은 지역 프레임워크가 대표적이며, 여러 나라가 해군을 주둔시키며 상선 호위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한계는 뚜렷하다. 기존 체제 다수는 지속적인 미사일·드론 위협이 아니라 해적 대응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예멘과 소말리아의 분쟁은 지역 협력을 약화하고 해상 안보합의 이행을 어렵게 하고 있다. 자원 제약도 문제다. 해군 작전을 지속하는 비용은 비싼 반면, 해운을 교란하는 도구인 소형 보트, 드론, 저가 미사일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이 비대칭 탓에 방어보다 교란이 쉬운 구조가 고착됐다. 채텀하우스는 교란이 주요 해상 길목 전반으로 확산할 경우에 대비해 정부와 업계가 사후 대응을 넘어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호르무즈해협·바브엘만데브해협·수에즈운하 동시 교란은 글로벌 경제 전반에 연쇄 충격을 촉발할 수 있는 만큼, 정책 당국은 핵심 수로 보호뿐 아니라 복수의 길목이 동시에 제약되는 상황의 시스템적 결과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용어설명
  • 1국제해사기구(IMO)

    1948년 3월 6일 채택되고 1958년 3월 17일에 발효된 국제해사기구에 관한 협약에 따라 설립된 기구다. 해상에서 안전, 보안과 선박으로부터 해양오염 방지를 책임지는 국제연합 산하의 전문 기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