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책으로 읽는 경제 통상 지정학·역사·심리로 풀어낸 달러 자산의 미래
페트로 달러의 위기와 CIPS의 부상, 달러의 영광은 끝났나
  • 김정아 작가
  • 환율 너머의 경제. 백석현ㅣ위너스북ㅣ2만4000원ㅣ416쪽ㅣ6월 25일

    사상 최대 반도체 호황과 무역 흑자에도 원화 환율이 금융 위기 시절과 비슷한 달러당 1500원을 넘나드는 고환율 시대이다. 이란 전쟁 이후 달러 강세 추세 속에서도, 유난히 두드러진 원화 하락이 우리 경제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환율 너머의 경제’는 지정학과 역사 심리를 통해 환율 메커니즘을 풀어내며 달러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또 이를 기반으로 투자자가 자산을 잃지 않고 지키기 위한 현실적 대안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패권 국가의 흥망에 대한 역사가의 통찰을 빌려, 이민 제한처럼 미국에서 나타난 배타성을 달러 패권이 약화하는 신호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국내 금융권에서 많이 읽혔던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교수가 쓴 ‘제국의 미래’는 역사적으로 패권국이 쇠락하기 시작한 신호는 관용을 잃고 배타성으로 돌아설 때 나타난다고 간파한 적이 있다.

    이란 전쟁으로 흔들린 페트로 달러

    저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이번 이란 전쟁이 페트로 달러 체제에 균열을 냈다고 본다. 페트로 달러1)는 걸프 지역의 에너지 공급 안정성, 달러 중심의 원유 거래, 걸프 지역의 안보 우산이라는 세 가지 기둥에 의해 유지돼 왔다. 그러나 전 세계 원유 20% 이상, 비료 30% 이상이 통과하던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서 걸프의 에너지 공급 안정성이 무너졌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유조선에 위안화나 암호화폐로 통행료를 받겠다고 나서 달러 중심의 원유 거래 관행에 대한 균열을 공식화했다. 걸프 지역의 안보 우산 역시 취약한 상태다. 이란의 미사일이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와 바레인 등을 타격하는 동안 미국은 이 지역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다.

    달러 패권의 힘 남용으로 달러 우회 시도 증가

    저자는 달러의 진정한 위력은 세계 어디서나 쓰이는 보편적 통용 능력보다 제재 능력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 힘을 미국이 남용하자,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는 점점 더 달러를 우회하기 위한 대안을 찾게 된다. 미국이 경제제재를 부과하는 국가는 달러의 기축통화 구조를 지탱하는 스위프트(SWIFT) 결제망2), 달러 거래의 최종 결제를 처리하는 뉴욕의 글로벌 은행 청산 시스템, 해운과 보험 네트워크 같은 연결망에서 축출된다. 이는 곧 세계경제와 연결이 끊어지는 타격이다. 이 결과 미국의 제재를 받는 국가가 중국과 거래할 때 위안화로 송금·결제할 수 있는 국경 간 위안화 지급결제시스템(CIPS) 이용이 증가하고 있다. 이란 전쟁 이후 4월 초에 CIPS 일일 거래액이 사상 최초로 1조2200억위안을 돌파했다.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도 달러를 거치지 않고 자국 통화로 직접 결제 가능한 통합 결제망을 구축, 원자재 결제 통화의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중 갈등 구조로 달러 독점 구조 희석 불가피

    저자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갈등이 불가피한 지정학적 조건에서 달러의 패권적 지위가 점점 희석될 것으로 예상한다. 확대되는 미국의 재정 적자, 위안화의 국제화 같은 요소도 달러의 신뢰성 저하를 가속화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의 주식시장과 달러는 과거 영광과는 다른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미국 달러 자산의 일부라도 홍콩의 항셍테크 지수나 중국의 나스닥으로 불리는 과창판 지수 같은 중국 위안화 자산으로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주장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혁신을 높이 평가하고 장기적으로 미국 주식시장을 낙관하는 견해와는 다르다. 그러나 전 세계 중앙은행이 달러 위주의 보유 자산을 유로화, 금 등으로 다양화하는 통계를 보면 무리한 주장만은 아니다.

    강달러와 원화 약세

    과거 에너지 수입국이었던 미국이 에너지 수출국으로 변하면서 이란 전쟁 이후 강달러 현상이 두드러졌다.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 같은 요소까지 더해졌다. 달러와 비교해 유독 한국 원화가 약한 현상에 대해 저자는 자본 유출 구조를 먼저 지목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특수와 한류로 뜬 일부 산업을 제외하면, 수출 경쟁력이 약화해 달러 공급은 늘기 어려운데, 기업과 개인 모두 해외투자에 나서 달러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환율 같은 돈의 흐름이란 예측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저자는 미국의 투자 전략가인 해리 브라운이 제안한 ‘영구 포트폴리오’ 개념을 소개했다. 이것은 주식 25%, 채권 25%, 금 25%, 현금 25% 비율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에 환율 변수를 추가해 다음과 같은 한국판 수정 포트폴리오를 제안했다.

    이 구조를 기반으로 비율이 무너질 때마다 비율을 넘어선 자산은 팔고, 비율이 줄어든 자산은 매수하는 리밸런싱으로 모든 가능성을 준비하라고 권한다. 환율은 다른 자산보다 가장 먼저 세상의 불안을 반영한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달러와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균열을 응시하면서 돈이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강조점은 귀 기울일 만하다.


    용어설명
    • 1페트로 달러

      전 세계 원유 거래가 미국 달러로 결제되는 국제 금융 질서. 달러의 금태환을 전제로 한 브레턴우즈 체제가 1971년 무너지고 달러 위상이 흔들리자, 미국은 1974년 사우디아라비아에 군사적 보호를 제공하는 대신 모든 원유 거래를 달러로 하도록 하는 합의를 했다. 이후 OPEC 회원국 대부분이 이 관행을 따르면서 원유 거래=달러 결제라는 체제가 확립됐다.

    • 2스위프트(SWIFT) 결제망

      전 세계 200여 개국, 1만1000개 이상의 금융기관이 국제 송금과 결제 지시를 주고받는 표준 메시지 네트워크. 사실상 달러 결제의 고속도로인 셈이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강제 합병과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SWIFT 결제망에서 퇴출되는 제재를 받아왔다. 이란과 북한, 베네수엘라도 제재 대상 국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