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루 경제협력 성과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나라가 상호 신뢰와 공동의 이익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긴밀하고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한 모범 사례다.” 파울 두클로스(Paul Duclos) 주한 페루 대사는 한국과 페루의 경제협력 성과에 관한 기자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1963년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한 한국과 페루는 2011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2012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수립을 기점으로 단순한 교역 상대국을 넘어 국방과 자원 안보, 고부가 인프라 건설 등을 매개로 한 핵심 파트너로 거듭났다. 양국 간 교역은 FTA 체결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10년 만에 거래 규모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페루산 구리와 아연은 한국의 반도체 및 배터리 산업 등 국가 경제·안보에 필수적인 핵심 자원이다. 페루는 아연은 세계 2위, 구리는 세계 3위 생산국이다. 도금과 합금 소재로 널리 사용하는 아연은 철강의 수명을 늘려 유지·보수 비용 절감과 자원 낭비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구리와 결합하면 황동, 알루미늄·마그네슘과 결합하면 다이캐스팅용 합금이 된다.
한국으로 건너오는 페루의 주요 수출품 중에는 포도와 망고, 아보카도 등 농산물과 오징어와 새우 등 수산물도 있다. 최근 들어 양국 협력 관련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국방 및 안보다. 한국은 페루를 단순한 무기 수출국이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 대우하며 기술력을 전수하고 있다. 두클로스 대사는 “페루는 한국의 첨단 제조업 및 기술 발전에 필요한 핵심광물 공급에 유리한 입지를 갖추고 있다”면서 “한국의 기술력과 투자가 페루 산업화와 인프라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금의 한·페루 협력 관계, 어떻게 보나.
“2011년 FTA 발효와 2012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수립은 한국과 페루 간 호혜적 관계 구축을 위한 굳건한 틀을 마련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양국 관계는 이중과세방지협정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양국은 지난 15년 동안 거의 모든 분야에서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오늘날 한국은 페루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중 하나이자, 최대 교역 파트너 중 하나다. 앞으로도 페루 정부 차원에서 ‘서울푸드’와 ‘부산국제수산엑스포(BISFE)’ 등 한국에서 열리는 주요 무역 박람회에 적극 참여해 수출 품목 확대와 다각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양국 간 유대 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국가마다 외교 관계 분류 체계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순 수교국에서 △동반자 관계 △포괄적 동반자 관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 △글로벌 포괄적 전략적 동맹 관계 등 순으로 등급을 나눈다. ‘포괄적 동반자’는 수교하는 양국이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우호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의미를 담는다. ‘전략적’이란 뜻은 주로 군사·안보·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틀의 협력을 하겠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는 2011년 7월 페루와 이중과세방지협정을 체결하고 2012년 9월 국회 비준을 마쳤다.
양국 경제협력의 미래도 밝게 전망하나.
“페루 정부는 한국을 전략적으로 중요한, 매우 귀중한 파트너로 여긴다. 페루가 중남미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투자 친화적인 방식으로 경제정책을 운용하고 있는 만큼 양국 관계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페루는 한국의 첨단 제조업 및 기술 발전에 필요한 핵심광물 공급에 유리한 입지를 갖추고 있다. 페루는 세계 2위 구리 생산국(2023년 기준, 2025년엔 3위)이며, 전 세계 구리 매장량의 약 12%와 은 매장량의 15.3%를 보유하고 있다. 수익성만 좇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광업과 책임 있는 자원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친체로(Chinchero) 국제공항과 새로운 철도망, 고속도로 등 신규 인프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파트너와 협력하고 있다. 한국의 기술력과 투자가 페루의 산업화와 인프라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친체로 국제공항 사업은 잉카문화 유적지인 마추픽추 여행의 관문인 쿠스코에서 북서쪽으로 15㎞ 떨어진 친체로에 연간 57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항을 조성하는 공사다. 현대건설은 앞서 2021년 페루, 멕시코, 중국 업체와 JV(Joint Venture)를 구성해 이 사업을 수주했다. 또한, 2019년 페루·한국 정부 간 계약(G2G)에 따라, 한국공항공사(KAC)를 중심으로 하는 ‘팀 코리아’가 발주처인 페루 정부를 대신해 설계 검토, 건설 공정 및 품질 관리, 시운전 등 건설 사업 전반을 총괄 관리(PMO)하고 있다.
투자 매력을 높이기 위한 페루 정부의 노력 소개 부탁한다.
“페루의 법체계는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투자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다. 광범위한 투자 보호 협정 및 무역협정 네트워크도 큰 힘이 될 것이다. 덕분에 페루는 전 세계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로 자리매김했다. 페루에서 한국 기업의 입지가 갈수록 굳건해지고 있는 것은 그 증거 중 하나다. 일례로 SK이노베이션은 페루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개발 사업 중 하나인 카미세아(Camisea) 천연가스 프로젝트의 주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페루에서 한국 기업은 인프라·광업·에너지·제조업·서비스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카미세아는 페루 쿠스코 지역에 있는 가스전이다. 아르헨티나 플루스페트롤이 주도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SK이노베이션은 미국 헌트오일, 스페인 렙솔 등과 함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페루를 중남미 진출 거점으로 삼는 건 괜찮은 전략일까.
“물론이다. 실제로 많은 다국적기업이 수년 동안 성공적으로 추진해 온 전략이기도 하다. 페루는 남미 태평양 연안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안정적인 거시 경제구조, 광범위한 FTA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주요 글로벌 시장으로의 무역 접근성이 우수하다. 이 같은 장점 덕분에 중남미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지역가치 사슬에 참여하고자 하는 기업에 이상적인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페루 경제, 어떻게 전망하나.
“견고한 거시 경제 여건과 낮은 공공 부채, 풍부한 핵심광물, 독립적이고 신뢰할 만한 중앙은행의 뒷받침 등에 힘입어 페루 경제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중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 구체적으로 페루 정부는 녹색 성장, 순환 경제, 재생에너지, 지속 가능한 인프라와 관련된 이니셔티브를 추진 중이다.
이 같은 노력은 녹색 수소 및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개발을 포함해 경제 전환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장기 비전을 제시하는 ‘2050 국가 전략 개발 계획’과 궤를 같이한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도 경제성장에 힘을 보탤 것이다. 특히 약36억달러가 투자된 찬카이(Chancay)항구는 페루를 남미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주요 무역 및 물류 허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3년에 수교 60주년을 맞이한 양국은 경제·기술 협력 위원회같은 제도적 메커니즘을 발전시켜 왔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페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
“한·페루 경제협력 성과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나라가 상호 신뢰와 공동의 이익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긴밀하고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한 모범 사례다. 문화는 다르지만, 양국 모두 서로를 깊이 신뢰하며 전문성과 헌신,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페루에서 한국 기업의 성공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공통점을 바탕으로 접근할 때 문화적인 차이가 강점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페루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과 투자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국이 경제적으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페루는 한국이 필요로 하는 천연자원을 수출하고, 한국은 기술과 투자금, 전문적인 산업 지식을 제공한다.”
추가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2023년에 수교 60주년을 맞이한 양국은 그동안 경제·기술 협력 위원회 같은 제도적 메커니즘을 발전시켜 왔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칼라오(Callao) 조선 시설 현대화, 해군 함정 및 장갑차 공동 생산 그리고 페루의 글로벌 방산 제조 가치 사슬 참여와 관련된 협정 안보·국방 같은 전략적 분야의 협력 확대는 매우 고무적이다.”
한국 방산 기업은 기술이전을 내세워 페루를 중남미 시장의 거점으로 삼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페루 매체 헤스티온은 6월 16일(현지시각) 한국 방위사업청(DAPA)이 K2 흑표 전차의 공급과 현지 생산 협력 방안을 공식화했다고 보도했다. 국산 주력전차가 중남미 대륙에 진출하는 사실상 첫 사례다. 이와 관련해 소형 전술 차량 주계약자인 STX社는 지난해 리마 초시카 지역에 특수·군용 차량 조립 공장을 구축하고 준공식을 마쳤다. 현대로템은 K2 흑표 전차 및 K808 차륜형 장갑차 협력을 위해 동 시설을 추가 확장할 예정이며, 향후 이곳 공장에서 K808차륜형 장갑차와 소형 전술차를 현지 조립·생산할 예정이다. 이 밖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페루 국영 항공정비회사(SEMAN)와 KF-21·FA-50 부품 공동 생산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HD현대중공업은 페루 국영 시마(SIMA)조선소와 전략 파트너십을 맺고 호위함·상륙함 등 함정 네 척의 현지 공동 건조와 차세대 잠수함 공동 개발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