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법률 전문가가 보는 통상 절차 투명성으로 다자주의 되살리는 IFDA WTO 재건 분기점… 한국, 수혜자 아닌 설계자로
  • 이주형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2025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세계투자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투자에 경고등이 켜졌다. 지정학적 갈등, 공급망 재편, 보호주의적 산업 정책, 고금리와 부채 부담이 겹친 탓이다. UNCTAD는 2024년 전 세계 외국인직접투자(FDI)1)가 11% 감소했고, 인프라 투자에 중요한 국제 프로젝트 파이낸스도 26% 줄었다고 밝혔다.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매년 약 4조달러의 투자 공백을 메워야 하는데, 이는 단순한 경기순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의 구조적 과제로 볼 수 있다.

    IFDA, 투자 절차 개선으로 FDI 유치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발을 위한 투자원활화협정(IFDA)’은 주목할 만하다. IFDA는 투자를 ‘보호’하거나 ‘자유화’하는 협정이 아니고, 시장 접근, 투자 보호,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2)를 명시적으로 제외한다. 대신 △투자 관련 법령과 절차의 투명성 △인허가 절차의 간소화 △전자 정부 활용 △ 담당 기관의 독립성 △ 이의신청 절차 △투자 관련 연락 창구 △반부패와 책임 있는 기업행동 등을 주로 다룬다. 다시 말해 IFDA를 통해 어느 나라가 어떤 투자를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각국의 주권적 판단에 맡기되, 일단 투자 절차를 운용한다면 그 과정은 예측 가능하고 공정하며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절차적 규범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국제투자 규범은 오랫동안 양자 투자 보장 협정과 자유무역협정의 ‘투자’ 장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와 ISDS가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 됐고, 많은 개도국은 소위 ‘규제 권한’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IFDA는 바로 이 논쟁의 한복판을 비껴가면서도 투자자의 실체적 권리를 새로 만들기보다 투자 유치국의 행정절차를 투명하고 신속하게 정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는 투자자에게는 예측 가능성을, 유치국에는 제도 개혁의 기준을, 개도국에는 기술 지원과 역량 강화의 통로를 제공하는 균형적 접근이다.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공장 설립, 부품 조달, 데이터 처리, 물류, 서비스 공급은 연속된 거래로 움직인다. 관세가 낮아져도 인허가가 불투명하고, 담당 기관이 중복되며, 신청 서류와 수수료 기준이 예측 불가능하다면 기업은 투자를 미룬다. 특히 중소기업과 개도국은 이러한 행정 비용에 더욱 취약하다. IFDA가 정보공개, 단일 정보 포털, 온라인 신청, 투자 관련 문의 창구, 국내 규제 조정 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WTO에서도 투자 원활화의 핵심을 ‘투명하고 효율적인 투자 환경 조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WTO 대원칙 흔든다며 반대하는 인도

    문제는 협정 내용보다 이를 발효하기 위한 형식과 WTO에 따른 절차다. IFDA는 2017년 WTO 제11차 각료회의를 계기로 본격화한 공동성명 이니셔티브에서 출발했고, 2020년 공식 협상을 거쳐 2024년 제13차 각료회의에서 최종 문안이 공개됐다. 이후 참여국은 마라케시 협정(Marrakesh Agreement Establishing the WTO) 제X조 제9항에 따라 IFDA를 새로운 복수국 간 협정3)으로서 WTO 협정 부속서 4에 편입하려고 노력해 왔다. 2026년 제14차 각료회의에서도 129개 IFDA 당사국 장관은 협정의 WTO 체제 내 조속한 발효와 이행을 촉구했고, 협정이 비수락 회원국에 권리·의무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도 재확인했다.

    그럼에도 합의는 아직까지 미완성이다. 인도가 복수국 간 협정이 WTO의 컨센서스 원칙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제도적 우려를 제기한 탓이다. 물론 이러한 우려 자체를 가볍게 볼 일은 아닌 것이 WTO는 회원국 주도 원칙과 컨센서스 관행 위에 세워진 법질서이기 때문이다. 컨센서스가 모든 규범 형성을 영구히 봉쇄하는 사실상의 거부권으로 작동한다면, WTO는 새로운 경제적 현실에 대응할 수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튀르키예가 반대를 철회한 뒤 인도만이 사실상 마지막 반대국으로 남았다는 최근 상황은 WTO 의사 결정 제도의 미래를 묻는 시험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해법은 컨센서스 폐기가 아니라 책임 있는 컨센서스의 회복이어야 한다. 비참여국의 권리와 의무를 침해하지 않고, 시장 접근, 투자 보호, ISDS를 배제하며, 모든 회원국에 가입 가능성을 열어둔 협정이라면 이를 WTO에서 제도화할 여지는 충분하다. 필요하다면 부속 선언을 통해 일부 국가가 우려하는 점을 명확히 할 수 있다.

    韓의 공동 의장국 역할, 통상 실익으로 연결해야

    한국에는 이 논의가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 기업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생산, 조달, 연구개발, 서비스 공급망을 운영하고 있다. 불명확한 허가 기준, 부처 간 중복 절차, 예고 없는 규제 변경, 담당 기관의 지연, 현지 공급망 정보 부족 같은 일상적 행정 장벽이 기업의 시간과 비용을 갉아먹는다. IFDA가 정착되면 이러한 비용을 줄이고, 특히 중견·중소기업의 해외 진출 리스크를 낮추는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다. 한국은 IFDA 협상에서 칠레와 함께 공동 의장국 역할을 수행하고 WTO에서도 IFDA 이니셔티브가 칠레와 한국에 의해 공동 조정돼 왔고, 협상 과정이 모든 WTO 회원국에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IFDA의 성패는 단순한 투자 협정 채택 여부를 넘어선다. WTO는 상소기구기능 정지와 협상 기능 약화로 인해 최근에는 규범 제정과 제도 발전 측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120개국을 훌쩍 넘는 회원국이 개발 지향적이고 개방적인 투자 원활화 규범에 합의했다는 사실은 WTO가 국제경제 거버넌스의 핵심 플랫폼으로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IFDA가 WTO 법체제에서 발효된다면, 이는 WTO를 다시금 활발한 국제 통상 규범 형성 플랫폼으로 각인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간 한국이 촉진자(facilitator)로 치열하게 쌓아 올린 외교적 성과를 실제 규범, 실제 기업 편익, 실제 개발 협력으로 연결하는 전략적 결단이다. IFDA가 WTO의 재활성화를 이끄는 계기가 된다면, 한국은 그 변화의 수혜자가 아니라 설계자이자, 촉진자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용어설명
    • 1외국인직접투자(FDI)

      외국인이 국내 기업의 경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거나 지속적인 이익 관계를 목적으로 자본을 투입하는 것. 단순히 주식을 매입하는 증권투자와 달리, 공장 설립, 합작 법인 설립, 경영권 인수 등 현지에 직접 발을 디디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국제통화기금(IMF)과 UNCTAD는 일반적으로 의결권 있는 주식의 10% 이상을 취득한 경우를 FDI로 분류한다.

    • 2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 정부의 조치로 손해를 입었을 때 해당 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 자국 법원이 아닌 국제상업회의소(ICC)·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등 국제중재기관에서 분쟁을 해결한다.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유용하지만, 정부의 공공 정책, 환경 규제, 노동정책 등 정당한 규제 권한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 3복수국 간 협정

      WTO 전체 회원국이 아닌 일부 회원국만 참여해 체결하는 협정. WTO의 기본 원칙인 컨센서스(전원 합의) 방식으로는 190여 개 회원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활용된다. 참여를 원하는 국가만 권리와 의무를 지고, 비참여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정보기술협정(ITA)과 정부조달협정(GPA)이 대표적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