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역사로 보는 통상 관세 이야기 중세 유럽의 통행세와 현대 관세의 탄생
  • 김용태 법학박사 법무법인 광화문 관세외환센터장
  • 서로마제국 붕괴 후 중앙 집권 체제가 약해지면서 도로나 다리, 강을 장악한 지역 영주가 상인에게 세금을 징수하기 시작했다. 영주는 상인의 안전을 보장하고 도로를 유지·보수한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걷었다. 이를 ‘텔로니움’이라 불렀다. 북유럽 도시 연합체인 한자동맹은 그들만의 독자적인 관세 혜택을 설정하고, 동맹국끼리는 낮은 세율을 적용하며 세력을 키웠다. 자치권을 획득한 도시는 도시 성벽 안으로 들어오는 물품에 입항세를 부과해 운영자금을 마련했다. 단순히 짐차 한 대당 얼마를 받는 방식에서 벗어나, 물건 가치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 서서히 등장했다.

    이탈리아 공화국의 천재적인 세금 행정

    공화국 시대 이탈리아에서 관세는 물품 판매 시 발생하는 무역세(소비세 성격)와 물품 이동 시 발생하는 운송세(통행료 성격)로 나뉘었다. 운송세는 성문이나 항구 등 주요 길목에서 빈번하게 징수됐다. 해양 공화국을 중심으로 적하목록 작성, 세관 창고 운영, 관세 감면 혜택 등 현대적 관세 행정의 기틀 체계가 정교화됐다. 국가 간 양자 무역 조약을 통한 관세 감면이 중요해져서 동로마제국이나 예루살렘왕국이 베네치아 상인에게 특권을 부여했다. 이러한 혜택은 특정 국가나 상인 집단의 무역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수단이 됐다. 

    이탈리아 해양 공화국,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관세 체계는 중세 유럽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체계적인 형태를 띠었다. 베네치아는 ‘도아나’라 불리는 세관을 통해 수입·수출 그리고 환적 화물을 엄격히 관리했다. 해상 무역과 육상 무역(독일 등)을 분리해 관리하는 전문성을 보였다. 또 자국 선박(베네치아 선적)에 특혜를 주고 외국 상인에게는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거나 특정 구역에 머물게 하며 무역 거래를 감시했다. 소금과 같은 전략물자에 대해서는 관세뿐만 아니라 국가 전매권을 강력하게 행사해 공화국 재정의 핵심 수단으로 삼았다. 제노바의 관세는 민간 은행이자, 행정 기구였던 산조르조은행이 관리했다. 국가 채무의 담보로 관세 징수권을 활용하는 독특한 금융·행정 결합 구조를 갖췄다. 제노바는 무역 활성화를 위해 특정 구역에 관세를 면제하거나 감면하는 혜택을 주는 ‘자유항’ 개념을 도입해 지중해 물류 허브 역할을 강화했다.

    잘게 쪼개진 독일 영주의 기싸움

    독일의 중세 초기 관세와 통행료는 도로, 다리, 시장 등 특정 시설 이용에 대한 대가로 부과됐다. 또한, 강도나 방해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호위’의 대가로 징수되기도 했다. 그 목적에 따라 시장 통행료, 교량 통행료, 포장 통행료, 도로 통행료 등이 포함됐다. 10~13세기 통행료 징수권은 국왕으로부터 교회, 제후, 도시 등으로 이양됐다. 14세기에 이르러 영주는 이를 일반적인 재정 수입원으로 간주했다. 1356년 금인칙서 등을 통해 제후의 통행료 징수권이 공식화됐고, 사실상 국왕의 손을 떠나 제후 의회가 주도권을 갖게 됐다.

    무역로 통제권, 즉 시장권, 관세, 도로 통행료 징수권은 당시 영주와 도시가 수익을 창출하고 경제성장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권리이자, 수단이었다. 통행료 징수권은 매매나 이양을 통해 세속 군주, 주교령, 수도원 등으로 소유권이 빈번히 변경됐다. 바이에른 지역이 60여 개의 징수소를 둔 것과 달리, 영토가 잘게 나뉜 슈바벤 지역은 17~18세기쯤 130~160개 이상의 징수소가 밀집했다. 이는 수많은 소규모 행정단위가 무역 수익을 올리려 경쟁했기 때문이며, 주요 무역로와 도나우강 등의 교차점마다 통행료가 부과됐다. 이에 따라 영주 간의 관세협정을 통한 상호 이익 창출로 이어지기도 했으나, 협상 거부를 통한 압박이나 세관 간의 치열한 경쟁 및 법적 분쟁을 야기하기도 했다. 재정수입 확대를 위해 도로마다 통행료를 부과했지만, 수입이 통행량에 직결됐기에 무역 자체를 저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세입 증대를 위해 도로 상태 개선과 보안 강화 등 운송망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관세 수입은 국가 운영의 주축이 됐으나, 과도한 관세는 상인이 그라우뷘덴 등 다른 경로를 선택하게 해 무역로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세 초기 스위스의 깐깐한 관세 분류

    중세 초기 스위스의 통행료는 도로와 다리 이용 등 공공서비스 제공에 대한 대가라는 명분이 중요했다. 1000년쯤부터 재정적 목적이 강화되며 상품별·무게별로 관세가 세분화됐다. 특히, 루체른 등 주요 도시는 특정 상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외국 상인(밀라노 등)을 견제하고 국내 생산자를 보호하는 보호무역주의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15~16세기에는 세관이 증설되고 수입 기록이 중앙 집중화되는 등 관세 행정이 체계화됐다. 관세 수입은 국가 운영의 주축이 됐으나, 과도한 관세는 상인이 그라우뷘덴 등 다른 경로를 선택하게 해 무역로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앙 집권 국가의 탄생과 중상주의

    영국, 프랑스 등 중앙 집권 국가가 기틀을 잡으면서 관세는 점차 국왕의 직속 수입원이 됐다. 에드워드 1세는 영국의 주력 수출품인 양모에 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국왕이 의회의 승인 없이도 징수할 수 있는 중요한 재원이었다. 단순히 ‘지나가는 비용’이었던 세금이 나라밖으로 나가는 물건(수출)과 나라 안으로 들어오는 물건(수입)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기 시작했다. 중세 후기에 확립된 관세 징수 시스템은 이후 16~17세기 중상주의 시대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관세는 단순한 수입원을 넘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금 보유량을 늘리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 진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