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통상 트렌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보고서
'EU 산업가속화법(IAA)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EU ‘메이드 인 유럽’ 강화… 산업 공급망 재편 속 韓 대응 과제 부상

유럽연합(EU)이 역내 제조 역량 강화를 위한 산업 정책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에너지 위기와 공급망 불안, 미·중 전략 경쟁 심화 속에서 핵심 산업의 역외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 안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특히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1) 이후 글로벌 주요국이 자국 중심 산업 정책을 강화하는 가운데, EU 역시 제조업 경쟁력 회복과 전략산업 보호를 위한 제도 정비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EU ‘산업가속화법(IAA·Industrial Accelerator Act)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EU 산업 정책 변화와 주요 규제 내용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EU가 산업 경쟁력과 경제 안보를 동시에 강화하기 위해 ‘메이드 인 유럽(Made in Europe·유럽산)’ 중심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으며, 관련 정책이 글로벌 기업의 투자와 공급망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6년 3월 IAA 초안을 발표하고 제조업 비중을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법안은 에너지 집약 산업과 자동차, 기후 중립 기술 산업을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공공 조달과 공공 지원 과정에서 역내 생산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동시에 외국인 투자 심사 강화와 인허가 간소화 등을 통해 역내 생산 기반 확대를 추진하는 것이 핵심이다. 

Made in Europe 확대…전략산업 공급망 재편 본격화 

산업가속화법의 핵심은 전략산업 공급망에서 Made in Europe 요건을 강화하는 데 있다. 2029년부터 공공 조달과 공공 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은 산업별로 일정 수준 이상의 EU 역내 생산 비율과 저탄소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자동차 부문에서는 전기차와 배터리, e-파워트레인, 전자 시스템 등 주요 부품에 대해 유럽산 비율 요건이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완성차뿐 아니라 배터리 셀과 주요 배터리 부품까지 EU 역내 생산 비중을 요구하면서 공급망 전반의 현지화를 유도하는 구조다.

기후 중립 기술 분야에서도 태양광,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 풍력, 수소, 원자력 등 주요 산업을 중심으로 유럽산 부품 사용 기준이 강화된다. 특히 배터리와 태양광 분야에서는 세부 부품 단위까지 역내 생산 요건을 적용하도록 설계돼 있어 향후 공급망 재편 압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같은 조치는 전략산업의 역외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현재 EU는 태양광과 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보고서는 EU가 공급망 안정성과 산업 주권 확보 차원에서 제조업 기반 회복을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역내 생산 요건 강화가 비용 상승과 공급망 경직성 확대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외국인 투자 심사 강화…산업 정책, 경제 안보 연계 확대

산업가속화법은 특정 전략산업 분야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심사도 강화했다. 배터리와 전기차, 태양광, 핵심 원자재 등 신흥 전략산업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외국인 투자에 대해 사전 승인 절차를 의무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적용 대상은 투자 금액이 1억유로를 초과하면서 투자국이 해당 산업의 글로벌 제조 역량 40% 이상을 보유한 경우다. 사실상 중국 기업을 겨냥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투자 승인 과정에서는 고용과 기술이전, 연구개발(R&D), 공급망 구축 등 역내 부가가치 창출 요건 충족 여부가 핵심 기준으로 작용한다. 특히 인력의 50% 이상을 EU 국적 노동자로 유지해야 하는 고용 요건이 필수 조건으로 포함됐다. 이 밖에도 EU 기업과 합작투자(JV), 역내 R&D 투자, 공급망 현지화 등이 요구되면서 단순 자본 투자보다 산업 생태계 기여 여부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됐다.

또한 EU는 산업 프로젝트 인허가 절차를 단순화하기 위해 ‘산업 제조 가속화 지역(Accelerator zone)’2) 제도를 도입했다. 전략산업 관련 프로젝트에 대해 인허가와 전력망 연결, 환경영향평가 등을 신속하게 처리해 신규 투자와 탈탄소 전환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이다. 디지털 기반 단일 창구 시스템을 통해 행정절차를 통합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보호주의 논란 속 한국 기업 대응 필요성 확대

다만 산업가속화법을 둘러싼 EU 내부 논쟁도 적지 않다. 프랑스는 엄격한 유럽산 요건을 주장하는 반면, 독일과 네덜란드 등은 공급망 비용 상승과 보호주의 심화를 우려하며 보다 유연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내부에서도 완성차 업체와 부품 업체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또한 첨단산업 지원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안은 철강과 자동차, 기후 중립 기술 중심으로 설계된 반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양자 기술, 로보틱스 등 첨단산업 분야는 제외됐다. 이에 따라 EU가 미래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보고서는 산업가속화법이 향후 유럽의회와 회원국 간 협의 과정에서 일부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유럽산 요건 강화와 외국인 투자 심사 확대 기조 자체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국 기업에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있다는 평가다. 배터리와 자동차 업계는 이미 EU 현지 생산 기반을 구축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향후 역내 생산 비율과 고용, R&D 투자 요건이 강화될 경우 추가 비용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배터리와 전기차, 철강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는 현지 생산 확대와 공급망 재편에 대한 선제 대응이 중요 과제로 꼽힌다. 정부 차원에서도 대EU 통상 협력과 산업 아웃리치 강화를 통해 제도 변화에 대응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용어설명
  • 1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

    2022년 8월 16일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된 법으로, 기후변화 대응, 의료비 지원, 법인세 인상 등을 통해 인플레이션 완화와 친환경 산업 육성을 목표로 한다. 특히 전기차 보조금 제공 조건으로 중국 등 우려 국가산 배터리 부품, 광물 사용을 제한해, 중국 공급망 배제와 한국 자동차·배터리 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2산업 제조 가속화 지역 (Accelerator zone)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인허가, 전력망 연결, 환경영향평가 등을 신속 처리하는 제도. 규제와 행정절차를 간소화해 기업 투자 확대와 탈탄소 산업 전환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