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방위산업 강화 전략과 한·EU 협력 방안' EU 방산 재편 가속… 동유럽 거점 구축·AI 협력 속 과제 병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유럽 안보 환경이 급변하면서 유럽연합(EU)은 기존 방위 체계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미국 중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 자주적 방위 역량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방산(방위산업)을 핵심 산업 전략으로 재편하려는 정책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유럽 방위산업 강화 전략과 한·EU 협력 방안’보고서를 통해 EU의 방산 정책 방향과 산업구조 변화 그리고 한국과 협력 가능성을 분석했다. EU의 방산 정책은 그동안 회원국 간 이해관계와 주권 문제로 인해 통합에 제약이 있었으나, 최근 안보 위협 증대는 공동 대응 필요성을 높이며 정책 전환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방산을 정책과 결합해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안보와 경제 전략이 결합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적 군사 대응을 넘어 중장기 산업 경쟁력 확보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동 조달, 군 기동성 개선…EU 방산 통합 가속
EU는 방산의 구조적 한계로 지적되어 온 시장 분절화와 중복 투자를 개선하기 위해 공동 조달과 산업 통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공동 방공 시스템, 장갑차, 탄약 확보 등 다국적 프로젝트를 통해 협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로써 비용 절감과 함께 무기 체계의 표준화 및 상호 운용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군 기동성 개선 정책을 통해 병력과 장비의 국경 간 이동 절차를 간소화하고, 실질적인 군사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제도적 기반도 구축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 지원을 넘어 전시 대응 역량 강화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산업구조 측면에서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다핵적 군산 복합체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비효율성과 중복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기술 다양성과 공급망 분산 효과를 제공하는 양면적 특징을 보인다. 동시에 EU는 유럽방위기금(EDF), 유럽방위산업프로그램(EDIP)1) 등 제도적 지원을 통해 역내 방산 기업의 투자 유인을 확대하고 있으며, 공동 조달과 연구개발(R&D)을 결합한 형태의 산업 생태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회원국 간 무기 수요와 산업 이해관계가 상이해 정책 실행 속도와 범위에는 일정한 제약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EU는 인공지능(AI), 사이버, 우주 등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방산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데이터 기반 작전 수행과 네트워크 중심 전쟁 대응 역량이 중요해지면서 방산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되고 있으며, 이는 향후 방산 경쟁이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동유럽 중심 협력 확대와 시장 진입 전략
EU 방산 재편 과정은 한국 방산 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는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방산 현대화를 빠르게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 무기 체계에 대한 신뢰도와 가격 경쟁력, 빠른 납기 능력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동유럽을 중심으로 한 방산 클러스터 구축이 핵심 전략으로 제시된다. 폴란드와 루마니아를 중심으로 생산과 유지·보수·정비(MRO) 기능을 분산 배치하고, 국가별 역할을 차별화한 공급망을 구축할 경우 동유럽 전반을 포괄하는 방산 생산 거점을 형성할 수 있다.
이는 EU와 NATO의 전력 현대화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현지 생산 기반을 강화하는 전략적 접근으로 평가된다. 나아가 동유럽 국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방산 기반을 보완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또한 EU 방산 시장은 절충 교역(Offset)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EU는 역내 산업 보호와 기술 자립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단순 수출 방식으로는 시장 진입이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단계적·조건부 기술이전과 현지 생산을 결합한 절충 교역 모델을 통해 EU 공급망 내 파트너로 편입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동시에 기술이전 범위와 조건을 둘러싼 협상 리스크를 고려한 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첨단 기술 협력, 제도 장벽 대응 과제
아울러 AI, 우주, 사이버 등 첨단 분야에서는 공동 R&D 협력 확대가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EU는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2) 등 R&D 프로그램을 통해 방산과 민간 기술을 결합한 혁신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국방 AI와 무인 체계 등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협력 여지가 있다. 특히 민군 겸용 기술을 중심으로 협력 범위가 확대되면서 산업 전반의 기술 파급효과도 기대된다. 다만 EU의 방산R&D 구조는 역외국 참여 제한과 복잡한 제도적 절차가 있는 만큼, 공동 투자와 협력 로드맵 구축을 통해 참여 기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술 보호와 데이터 활용 문제 등 새로운 협력 리스크 대응 전략도 함께 요구된다. 이를 통해 단순 수출을 넘어 공동 개발과 기술 축적을 기반으로 한 장기적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으로 EU의 방산 정책은 안보와 산업 전략이 결합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으며, 한국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생산·기술·공급망 협력을 결합한 전략적 접근을 통해 협력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단순 수출을 넘어 공동 생산과 기술 협력 파트너로서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향후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 요소가 될 전망이다.
용어설명
- 1유럽방위산업프로그램(EDIP)
EU가 방산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정책 프로그램으로, 공동 조달 확대와 역내 생산 기반 구축을 지원하는 제도다. 회원국 간 협력을 통해 방산 공급망을 강화하고 산업 통합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2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EU의 대표적인 연구 혁신 프로그램으로, 과학기술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동 R&D를 지원한다. 최근에는 민군 겸용 기술 분야까지 확대되며 방산 협력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