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역사로 보는 통상 관세 이야기 고대 도시국가 시대의 관세…해적 막는 해상 경찰 재원 되기도
  • 김용태 법학박사 법무법인 린 관세통상팀장
  • 국가나 그와 유사한 공동체가 존재한 이래로 관세의 징수는 전래했다. 이런 이유로 관세는 가장 오래된 조세다. 그것의 흔적은 기원전 3000년 오리엔트나 이집트의 문화사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까지 관세 또는 같은 의미의 통행세는 육로와 해로, 다리, 항만 시설과 장터 등에 대한 사용 수수료의 특성, 혹은 상품 거래에 대한 보호 수수료의 특성이 있었다. 이런 통로 관세, 다리 관세 또는 통행 관세는 무엇보다 국가 수입 목적에 이바지했다. 이런 목적의 조세는 관세 이론상 재정관세로 특징된다.

    도시국가가 운송 물품에 일정 관세 징수

    고대 문명에서 관세의 기원은 상업 활동 등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메소포타미아문명에서는 기원전 3000년쯤 점토판 문서에 세금과 통행료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또 기원전 3000~2000년쯤 고대 아나톨리아(현 튀르키예)에 있었던 카네시(Kanesh)의 고대 아시리아(Assyria) 무역 식민지 상인 기록에 따르면, 현지 통치자들은 금속과 섬유를 거래하는 카라반(Caravan)에게 세금을 징수했다. 이는 도시국가(폴리스)가 외부 상인이나 운송되는 물품에 대해 일정한 관세를 징수했음을 보여준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관세는 국가 주도의 경제체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 교역에서 항구나 창고를 통과하는 물품에 관세가 부과됐으며, 이는 외국 상인과 자국 상인을 구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무역정책적 측면에서 볼 때 고대 이집트의 관세는 외래 물품 유입을 관리하고 전략물자 흐름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국가 경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고대 그리스인이 최초로 교역한 상대는 페니키아인(Phoenic-ian)이었다. 이들은 지중해를 건너 북쪽으로 영국까지 가서 청동을 생산하는 유명한 해상 무역 업자였다. 

    이들은 에게(Aegean)해에 식민지를 만드는 한편, 그리스 본토에도 거류지를 두고 가축이나 채소를 그리스로 수입했다. 그리스인은 이를 교역소(trading post), 상관(商館·factory), 시장을 의미하는 엠포리움(emporium)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리스인은 기원전 1100~600년에 걸쳐 그리스 본토 및 에게해에서 페니키아인을 몰아내고 이탈리아 남부에서 스페인 남안까지 지배했다. 덕분에 고대 그리스의 대외무역은 기원전 5~4세기에 전성기를 이뤘다. 고대 그리스가 대외무역에서 융성했던 배경은 자급자족경제가 불가능해 대량의 식량 수입 등 무역의존도가 높은 경제활동을 영위하지 않을 수 없었고, 주조화폐 유통 및 모험 대부(bottomry)1) 보급으로 상인이 모험 대부로 무역 자금 조달이 가능했으며, 그리스 상선은 페르시아전쟁 승리로 지중해를 장악한 아테네 해군의 보호 아래에서 교역할 수 있었다.

    관세는 가장 오래된 조세다.
    그것의 흔적은 기원전 3000년 오리엔트나 이집트의 문화사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공공기관 아닌 청부인이 관세 징후하기도

    고대 그리스에서는 도시국가 단위로 관세정책이 운용됐다. 아테네는 항구도시 피레우스(Piraeus)를 중심으로 곡물 같은 중요한 수입품에 종가 2%의 관세를 부과했다. 고대 그리스 조세체계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관세 징수를 공공기관이 아닌 징세 청부인(請負人)이 수행했다는 것이다. 또 아테네의 관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곡물 같은 필수품의 안정적 확보와 해상 동맹국 관리라는 외교·무역정책적 목적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로마제국에 이르러 관세는 보다 체계적인 제도로 발전한다. 로마는 제국 전역에 걸쳐 포르토리움(portorium)이라 불리는 관세를 운용하며 국경, 항구, 주요 도로에서 통행세와 물품세를 징수했다. 공화정 시대에 로마에서는 탐욕스러운 징세 청부인이 직권 남용으로 많은 폐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방지하려고 관세를 폐지하기도 했지만, 사치품 수입이 급증하자 카이사르가 다시 관세를 부활시켰다. 로마의 관세정책은 제국 내부의 시장 통합을 촉진하는 한편 제국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물품에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자국 산업과 상인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었다.

    관세, 무역통제하고 상업 성장시켜

    관세는 국가 간 거래되는 상품에 부과하는 조세인 까닭에 국제 통상에서 관세와 무역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고대에서도 관세가 무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고대 그리스 남동쪽에 있는 작은 섬의 도시국가인 로도스(Rhodes)의 관세가 있다. 로도스는 제3차 마케도니아전쟁(기원전 168년) 이전에 에게해에서 상업 및 정치 중심지로 크게 번영했다. 중계무역으로 얻은 부와 거액의 관세 수입 덕택에 강력한 해상 경찰을 유지해 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제3차 마케도니아전쟁 때 로도스는 페르시아 측에 가담했고, 로마는 로도스로부터 무역의 번영을 탈취하려는 목적으로 에게해의 섬인 델로스(Delos)에 관세를 받지 않는 자유항을 설립했다. 상인들은 자유항이라는 매력에 이끌려 로도스를 외면함으로써 로도스의 관세 수입은 100만 드라크마(그리스의 옛 통화)에서 15만 드라크마로 85% 줄었다. 로도스는 재정 위기에 빠져 충분한 해상 경찰을 유지할 수 없게 됐고, 이로써 왕년의 번영은 종말을 고하게 됐다. 중세 이전 후기 고대에 들어서면서 관세는 점차 정치적 분권화와 함께 지역성을 띠게 된다. 서로마제국 붕괴 이후 유럽에서는 영주와 도시가 독자적으로 관세와 통행세를 부과했고, 이는 상업 활동에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동시에 관세는 각 지역 권력이 무역을 통제하고 상업 거점을 성장시키는 수단이 됐다.


    용어설명
    • 1모험 대부

      선박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해상 금융 계약. 대출(부채)과 보험(위험 보장)을 결합한 형태로, 선박이 풍랑이나 적의 공격 등으로 침몰하면 이자와 원금이 탕감되는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