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오랫동안 모범적인 복지·공공 정책의 모델로 주목받아 왔다. 그에 비해 볼보·이케아·H&M·에릭슨·스포티파이·ABB 등을 배출한 글로벌 혁신 기업의 산실이라는 점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스웨덴에 자동차, 기타 기계류, 운반 하역 기계 등을 수출하고 있으며 스웨덴은 한국에 자동차, 의약품, 원동기,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을 수출한다. 한국에는 130개가 넘는 스웨덴 기업이 진출해 있으며, 삼성·현대차·LG 등 우리나라 주요 기업도 스웨덴에 연구개발(R&D)및 제조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스웨덴은 전 세계적인 K-팝 열풍에도 단단히 한몫했다. 스웨덴 작곡가들이 K-팝 산업과 강력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 일찍부터 앞장섰기 때문이다. 음악저작권협회에 따르면, K-팝 제작으로 스웨덴 작곡가가 벌어들인 저작권 수익은 2018년 이후 1000% 넘게 증가했다. BTS 정국의 ‘Stay Alive’, 피프티피프티 ‘큐피드’, 레드벨벳 ‘7월 7일’, 뉴진스 데뷔곡 ‘어텐션’ 등이 모두 스웨덴 작곡가 작품이다.
최근 서울 중구 주한 스웨덴대사관에서 칼-울로프 안데르손(Karl-Olof Andersson) 대사를 만났다. 스웨덴 룬드대에서 경영학과 언어학을 공부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안데르손 대사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아시아·태평양(이하 아·태) 지역 전문가다. 스웨덴 외교부 동아시아과 사무관과 아·태 심의관을 거쳐 주북한 스웨덴대사, 주중국 스웨덴대사관 공관차석 등을 역임했다.
그는 스웨덴에서 한국 기업이 “최고의 혁신 파트너로 평가받고 있다”면서 “글로벌 혁신 지수나 로봇 보급률 같은 지표에서 스웨덴과 한국이 꾸준히 최상위권을 차지하면서 자연스러운 협력 관계로 자리매김했다”고 진단했다. 스웨덴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주의해야 할 점을 묻자 “스웨덴 특유의 합의(consensus) 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가급적 이해관계자 전원의 의견을 청취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의사 결정이 더디게 보일 수 있지만, 그걸 ‘우유부단’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스웨덴에 한국은 어떤 존재인가.
“2026년은 한국과 스웨덴 간 외교 관계 수립 67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은 산업 기반이 탄탄하고, 첨단 기술 역량이 세계적이다. 또한 글로벌 이슈를 바라보는 시각과 가치관이 스웨덴과 비슷하다. 스웨덴 정부는 그런 한국을 전략적 경제협력 파트너로 여긴다. 특히 한국의 개방도 높은 시장과 규칙 기반 무역 실행 의지와 글로벌 공급망에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 안정적이고 투명하며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 환경은 장기적으로 투자와 협력을 촉진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 한국 이미지는 어떤가.
“한국 기업은 한마디로 ‘최고의 혁신 파트너’로 평가받는다. 스웨덴에서 한국은 단지 제조 강국이 아닌 디지털 전환과 첨단기술 분야 글로벌 리더로 인식된다. 글로벌 혁신 지수나 로봇 보급률 같은 지표에서 스웨덴과 한국이 꾸준히 최상위권을 차지하면서 자연스러운 협력 관계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해운, 원자력발전 등 분야에서 한국의 앞선 기술은 스웨덴에 필수적이다. 자동차와 생명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스웨덴 소비자의 인식 속 한국 브랜드는 ‘믿을 수 있는 품질’과 ‘트렌드를 선도하는 디자인’이 조화를 이룬다. K-컬처의 세계적인 인기까지 더해지면서 스웨덴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호감도는 역대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특히 어떤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이 유망할까.
“친환경 에너지전환은 양국 협력의 핵심축이다. 두 나라 모두 탄소 중립과 지속 가능한 성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청정에너지, 전기화(electrification)1), 에너지 효율 고도화, 산업용 탈탄소 모델 구축 등 분야에서 협력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본다. 전력망과 해상 풍력발전은 특히 협력이 유망한 분야다. 재생에너지 확산에 따라 탄력적이고 스마트한 전력망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기업은 첨단 전력망 기술, 시스템 통합, 해상 풍력발전 개발 분야에서 장기간 축적한 노하우를 제공할 수 있다. 한국의 산업 역량, 급성장하는 시장과 시너지가 클 것이다.”
전력망은 발전소에서 소비자까지 전기를 전달·배전하는 인프라다. 발전·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변전소·변압기·송전·배전선으로 구성된다. 재생에너지 확산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로 전력망 확장·지능화가 가속되고 있다.
또 어떤 분야가 있을까.
“반도체와 배터리를 아우르는 첨단 교통·모빌리티 분야 협력 전망 또한 밝다. 스웨덴국립연구원(RISE)2), 한국에너지공대(KENTECH), 나주시가 2025년 10월 체결한 ‘RISE-KENTECH 탄소 중립에너지 공동 연구 허브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는 스웨덴의 응용 연구 역량과 한국의 대규모 생산능력이 전기차(EV), 자율주행 시스템, 전력망 통합 솔루션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창출할 방향을 제시한다. 원자력 에너지도 중요한 협력 분야다. 양국 모두 에너지 안보와 안정적인 저탄소 전력 공급에 있어 원자력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원자력 기술·안전·관리·혁신 분야에서 협력 가능성이 열려 있다.”
RISE와 KENTECH, 나주시는 2025년 10월 17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한국·스웨덴 지속 가능 파트너십 서밋’에서 전력 반도체 및 청정에너지 분야 공동 연구 허브 구축 등을 골자로 하는 MOU를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에너지 전환과 친환경 산업 혁신을 목표로 한 양국 간 협력의 상징적 성과로 평가된다.
기업 간 교류도 늘고 있는 건가.
“한국에는 130개가 넘는 스웨덴 기업이 진출해 있다. 스웨덴 내 한국 기업의 투자와 진출도 급속히 늘고 있다. 두 나라를 오가는 관광객과 유학생도 꾸준한 증가 추세다. 북유럽 중심 도시인 스톡홀름과 서울 간 직항 노선 개설이 절실하다.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이다.”
투자 매력을 높이기 위한 스웨덴 정부의 노력 소개 부탁한다.
“무엇보다 매우 경쟁력 있는 재정 환경을 제공한다. 스웨덴 법인 세율은 20.6%로, 유럽 내에서 경쟁력이 있으며, 상속세가 없고 재산 세율도 매우 낮다. 또한 모든 것을 간소화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 외국 투자자의 원활한 진입을 보장한다. 글로벌 인재 유치를 위해 ‘전문가 세제 혜택’도 강화했다. 외국인 전문가, 연구원 및 핵심 인력은 최대 5년간 소득 25%를 세금으로 면제받을 수 있다. 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연구개발 인력의 사회보험료 공제도 시행 중이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은 높은 복지 지출로 유명하지만, 매우 기업 친화적이기도 하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법인 세율은 22%로 미국(21%)과 비슷하고, 스웨덴(20.6%)과 핀란드(20%)는 오히려 더 낮다. 미국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각국 경제의 시장 친화성과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평가해 발표하는 ‘경제 자유도 지수’에서 북유럽 국가는 매년 상위권을 차지한다. 자본시장도 우호적이다. 스웨덴의 경우 2012년 투자저축계좌(ISK)를 도입해 양도 차익이나 배당소득에 세금을 면제하면서 개인 투자자의 자본시장 참여가 급증했다.
스웨덴에서 구축한 성공 사례는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에서 일종의 ‘인증 마크’ 역할을 한다. 주변국으로 확장이 수월해진다는 뜻이다.
“스웨덴은 북유럽 진출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관문이다. 북유럽 최대 도시이자, 경제 중심지인 스톡홀름을 기반으로 24시간 안에 북유럽-발트해 지역 2800만 소비자에게 접근할 수 있다. 스웨덴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이기도 하다(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는 회원국이 아니다). 또한 북유럽 최대 항구인 스웨덴의 예테보리항은 이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물류 허브 역할을 한다.”
비즈니스 환경은 주변국과 비슷한가.
“그렇다. 스웨덴에서 구축한 성공 사례는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에서 일종의 ‘인증 마크’ 역할을 한다. 주변국으로 확장이 수월해진다는 뜻이다. 또한 스웨덴은 고도로 숙련된, 우수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영어 구사 능력 또한 유럽 최고 수준이다. 에너지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노동쟁의 발생률은 매우 낮다.”
스웨덴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 문화 차이라든지.
“스웨덴 특유의 합의 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 스웨덴 스타일의 의사 결정이 처음에는 느리게 보일 수 있다. 합의 도출을 위해 가급적 이해관계자 전원의 의견을 청취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우유부단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대개의 경우 재검토 없이 신속하게 추진한다. 초기 단계의 인내는 결국 보상을 받는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스웨덴의 ‘라곰(Lagom·적절하게)’ 문화를 적절히 조화시켜야 성공할 수 있다. 또한 스웨덴에서는 회의 도중 직급과 관계없이 누구나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열린 대화를 통해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 우리의 방식이다. 무례함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라곰은 너무 과하지도 않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은 알맞은 상태로, 동양철학의 ‘중용’과 유사한 개념이다.
또 어떤 부분에 주의해야 할까.
“스웨덴에서 지속 가능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단순한 마케팅 도구가 아닌 핵심 비즈니스 요건이다. 명확한 친환경 전략 없이는 장기적 파트너십 구축이 어렵다. 마지막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존중해야 한다. 개인 시간과 영역을 존중하는 것은 스웨덴 직원 또는 파트너와 신뢰 구축과 건강한 관계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용어설명
- 1전기화
냉난방·급탕·취사 등에서 석탄·석유·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설비를 히트펌프나 전기스토브처럼 전기를 사용하는 설비로 대체하는 것.
- 2스웨덴국립연구원(RISE)
스웨덴의 정책·산업·학계를 연결하는 국가 혁신 기관으로, 지속 가능성과 디지털 전환을 기반으로 에너지전환, 친환경 기술, 스마트 산업 분야의 연구개발을 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