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해 온 미국의 전력 수요가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확산과 산업 전반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기인한다. 대형 AI 데이터 센터의 신·증설이 이어지며 전력 소비는 향후 급등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딜로이트 분석에 따르면, 미국 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4년 33GW(기가와트)에서 2035년 176GW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미국 원자력발전(원전) 시장도 빠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50년까지 원전 용량을 현재의 약 네 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정부 정책 방향과 전력 수요 증가가 맞물려, 미국 원전 시장은 2024년 약 133억달러에서 2032년 약 196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급증하는 전력 수요 충족하는 원전
딜로이트 분석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예상되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분의 약 10%는 신규 원전 용량을 통해 충당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35GW에서 62GW에 이르는 대규모 원전 용량 확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원전은 신뢰성 높은 청정에너지로, 급증하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원전은 날씨나 계절에 영향받지 않고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며, 설비 이용률이 92.5% 이상으로 천연가스(56%), 풍력발전(35%), 태양광발전(25%)보다 월등히 높다. 이는 AI 및 생성 AI(Generative AI) 애플리케이션(앱)의 무중단 운영과 투자 수익 극대화에 필수적이다. 원전은 소량의 연료로 막대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연료 저장 및 운송 효율성이 높고, 데이터센터의 공간 활용도와 지속 가능성을 강화한다. 단일 원자로는 800㎿(메가와트) 이상의 전력을 생산해 대규모 데이터센터(50~100㎿)는 물론, AI 특화 메가 캠퍼스(최대 5000㎿)의 전력 수요에도 대응할 수 있다.
원전 활성화 추진하는 美 정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원전을 국가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재정의하며 전면적인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약 2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통해 기존 원전의 디지털 업그레이드와 신규 기술 실증 프로젝트를 병행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원전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제고하고 있다. 백악관은 데이터센터 및 AI 산업의 급격한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을 청정 전력 공급원으로 공식 지정하고, 민간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금융 지원 기반을 강화했다.
미국의 주요 원전 기업과 기관은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발맞춰 투자 확대와 기술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우(Dow)와 엑스-에너지(X-Energy)는 텍사스주에서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1) 건설을 공동으로 추진 중이다. 메타와 구글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은 데이터센터의 전력 확보를 위해 원전 기반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했다. 미국 육군은 군사기지용 초소형모듈원자로(MMR)2) 배치를 추진하며 원전의 전략적 활용 범위를 산업·국방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한미 원전 협력 강화의 필요성
따라서 글로벌 에너지전환과 탈탄소화 기조 속에서 한국 원전 산업이 성장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핵심 전략은 한미 협력이다. 미국은 AI발 전력 수요 급증, 탄소 중립 실현, 에너지 안보 강화 등을 목표로 원자력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세 속에서 한국의 원자력산업 관련 기업은 EPC(설계·조달·시공) 및 O&M(운영·정비)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급망 참여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한국은 UAE 바라카 등 대형 원전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력·품질·공기 관리 역량을 국제적으로 입증해 오고 있다.
나아가 한미 협력은 글로벌 원전 시장의 전략적 재편에 대응하는 파트너십이라는 의미가 크다. 이는 러시아·중국 중심의 공급망 구도를 견제하고, 안정적인 연료·부품·기술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한국 내 원전 생태계에 수출 기반의 성장 활력을 불어넣고, 미국이 추진하는 차세대 원전(SMR)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한국의 기술이 국제 표준 체계에 편입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한미 원자력산업 협력 강화는 양국의 에너지 안보를 공고히 하고, 한국 원전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전략적 선택이자 글로벌 원전 생태계 재편 속에서 양국 모두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 과제로 평가된다.
현재 글로벌 원전 시장은 러시아 로사톰과 중국 CNNC 등 국영 중심 사업자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자국 정부의 외교적 지원, 금융 조달, 인허가 협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점해 왔으나, 그 과정에서 정치적 종속성, 불투명한 계약 구조, 기술이전 제한 등의 문제로 일부 국가 사이에서는 대체 파트너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속에서, 한미 원자력산업 협력은 글로벌 원전 시장 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 될 것이다.
용어설명
- 1 소형모듈원자로(SMR)
스몰 모듈러 리액터(Small Modular Reactor)의 약자로 출력 용량 300MWe(메가와트일렉트릭) 이하의 소형 원자로를 의미.
- 2초소형모듈원자로(MMR)
마이크로 모듈러 리액터(Micro Modular Reactor)의 약자로, 출력 용량 10MWe이하의 초소형원자로를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