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책으로 읽는 경제 통상 끝나지 않은 석유의 지배력 석유의 눈으로 본 세계사, 총성 없는 자원 전쟁의 기록
  • 김정아 작가
  • 석유 제국의 미래. 최지웅ㅣ위즈덤하우스ㅣ2만2000원ㅣ348쪽ㅣ1월 21일 발행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호르무즈해협1)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으로 향하는 석유 대부분이 이곳을 지나가는 만큼 우리나라는 또다시 석유의 지정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석유 제국의 미래’는 석유가 20세기 이후로 세계 정치와 경제 흐름을 어떻게 만들어왔고 현재도 만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최지웅은 한국석유공사에서 근무하며 석유 시장과 산업, 에너지전환, 탄소 문제를 연구해 왔다. 영국 코번트리대에서 석유·가스 경영학 석사(MBA)를 마치고 현재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 박사 과정에서 기업의 에너지 전략과 탄소 감축 경로 등을 연구 중인 에너지 전문가다. 그는 전기차가 확산하고 탄소 중립을 목표로 전 세계가 움직이는 이 시대에도 석유는 여전히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단언한다.


    굴곡진 중동의 역사 뒤에 자리 잡은 영·미의 석유 이권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를 움직인 45가지 사건을 석유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특히 20세기 이후 중동 지역의 모든 역사적 사건의 배후에는 석유를 지배하려는 미국과 영국의 이해관계가 작용했다. 미국은 중동의 석유 이권 유지를 위해 비민주적 정권을 지원하거나 쿠데타를 사주했고 전쟁도 여러 차례 벌였다. 194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미영국대사를 불러 “이란 석유는 영국이 갖고 이라크와 쿠웨이트 석유는 공유하며, 사우디아라비아 석유는 미국이 갖는다”고 선언하면서 미국과 영국의 중동 석유 지배 구도가 만들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에 석유 회사를 세운 영미 석유 회사는 독점 계약을 체결하고 석유 채굴과 전 세계에 대한 석유 판매 권리를 행사했다. 이때부터 1970년대 이전까지 석유 시장은 세븐 시스터스2)로 불리는 미국과 영국의 메이저 석유 기업이 주도했다. 1950년대 초에는 양국의 정보기관이 쿠데타를 사주한 아작스 작전3)으로 영국과 합작한 석유 회사의 국유화를 내세운 모하메드 모사데그 이란 총리를 축출하기도 했다. 

    OPEC의 등장과 오일쇼크로 바뀐 석유 시장 질서 

    미국과 영국이 중동 석유의 이익을 빼가던 생산 유통 구조에 반기를 들고 1960년 등장한 것이 석유수출국기구(OPEC)다. 창설 직후에는 영향력이 없었으나 석유 수요가 늘고 잉여 물량이 사라진 1970년 이후로 OPEC과 산유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됐다. 이후 중동 산유국은 석유 수익 배분을 높이고 1973년 10월 6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석유 감산과 금수 조치 등 본격적인 석유 무기화에 나섰다. 전쟁은 20일 만에 끝났지만, 중동 산유국이 5% 석유 감산을 전쟁후에도 유지하면서 1차 오일쇼크가 왔다. 배럴당 3달러 수준이던 유가는 수개월 만에 배럴당 12달러로 올라갔다. 이란에서 1979년에 일어난 이슬람 혁명은 제2차 오일쇼크로 이어져 배럴당 13달러였던 국제 유가는 1981년 초에 약 40달러까지 급등했다. 2000년대 들어 세계화의 혜택을 누린 중국의 제조업 확대로 석유 수요가 급증했고 고유가 속에 미국은 중동에서 전쟁을 벌였다. 미국 내에서 셰일 석유가 쏟아지면서 미국의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다. 셰일 석유는 구소련의 몰락과 더불어 미국이 중동 개입을 줄이고 대외 전략의 근간을 바꾸는 핵심 조건으로 작용했다.

    러시아와 중국 부상의 배경이 된 석유

    중국은 미국에 맞서는 초강국으로 부상했지만 여전히 에너지 분야는 열세에 놓여있다. 중국도 하루 약 43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 세계 6~7위권 산유국이지만 소비량이 하루 약 1637만 배럴이다. 부족한 74%를 수입하는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이다. 에너지의 수입의존도가 매우 높은 중국 외교의 초점은 에너지자원 확보에 쏠려 있다. 미국보다 중국에 있어 석유가 훨씬 더 중대하고 절박한 과제라는 저자의 지적에 수긍이 된다. 중국은 중동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수입하는데 수입 경로가 주로 호르무즈해협이나 믈라카해협을 지나 남중국해를 통과한다.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도 결국 에너지 수송로의 안전 보장 때문이다. 전기 자동차 확대와 태양에너지 등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 역시 석유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바꾸기 위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장기 전쟁을 벌일 수 있던 배경도 석유·가스 자원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0년 집권 직후부터, 소련 해체 이후 유전과 가스전을 장악했던 부패한 재벌 집단이었던 올리가르히와 전쟁을 벌여 석유 및 가스 자산의 국유화와 통제에 집중했다. 석유·가스 생산량이 꾸준히 증가할 때 국제 유가의 대세 상승기가 겹쳐 러시아는 2000년 세계 23위였던 경제 규모 순위가 2008년 8위로 뛰어올랐다. 푸틴이 유럽에 가스를 수출하기 위해 건설한 해저 가스관은 훗날 강력한 무기가 됐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당시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맞서 가스관 폐쇄를 단행한 것이다.

    지정학을 움직이는 에너지 정책 

    저자는 석유·가스의 지리적 운송로는 정치·외교적 영향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념’에 의한 냉전은 끝났지만, 석유를 둘러싼 ‘이권’에 의한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석유와 가스를 대부분 수입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석유 및 천연가스 수입액은 1397억달러, 한화로 약 202조원에 달한다. 국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8%, 무역 수입액의 22%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석유와 가스의 경제적인 확보와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의 안정적인 개발과 확보를 위한 대체 에너지 정책은 안보와 경제의 핵심 과제다. 다양한 에너지원에 대한 기술과 실력을 쌓는 것만이 우리 경제와 안보의 근간이라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용어설명
    • 1호르무즈해협

      중동 주요 산유국의 석유 수송 요충지로,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핵심 통로다. 한국 수입 석유의 70% 이상이 이곳을 통과하기 때문에 이란에 의한 해협 봉쇄는 동북아 국가의 에너지 안보에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 2세븐 시스터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 유전 사업권을 장악하며 세계 석유 질서를 주도한 영미권 7대 석유 기업을 일컫는다. 7개 석유 기업은 합병 등을 거쳐 현재 엑손모빌, 셰브론, BP, 셸이 됐다.

    • 3아작스 작전

      1953년 미국 CIA와 영국 MI6가 주도해 이란의 모사데그 총리를 축출한 쿠데타다. 석유 국유화를 추진하던 민주 정부를 무너뜨리고 친미 왕정을 세웠지만, 훗날 반미 성향의 이슬람 혁명을 촉발시킨 이유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