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붐비는 도로 가운데 하나가 85번 고속도로다. 수도 워싱턴 D.C.에 가까운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배경인 앨라배마주 몽고메리까지 남북을 관통하는 동맥이다. 리치먼드에서 북동쪽 끝 메인주까지 뻗어 있는 95번 고속도로도 육상 물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영국인이 북미 지역에 식민지를 개척한 뒤 본국과 해상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한 뉴욕과 보스턴을 관통하기 위해 만들었다.
1980년대까지 제조업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을 때 오대호 연안 북부 지역은 미국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GM(제너럴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3사의 본사가 있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는 번창하는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었다. 디트로이트 역사는 17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초 오대호 연안을 탐험하고 개척한 것은 프랑스인이었다. 상인과 군인 역할을 겸한 프랑스 개척단이 북대서양 연안에 도착해 캐나다 퀘벡에서 세인트로렌스강을 거슬러 내려와 오대호 연안에 닿았다. 비버, 사슴, 곰 등의 모피를 생산해 유럽에 팔기 위해서였다. 비버에게서 채취한 모피는 부의 상징이었던 펠트 모자의 주된 재료로 사용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프랑스의 퇴장과 영국의 도약
17세기 말 앙투안 캐딜락(Antoine Cadillac) 대위는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이리(Erie)호의 서북단에 폰차트레인 요새를 세웠다. 그 요새가 성장해 훗날 디트로이트로 발전했다. 200년 후 그의 이름을 따 디트로이트에는 캐딜락 자동차 회사가 세워졌다. 캐딜락의 부관인 알폰소 톤티(Alphonse Tonti)는 디트로이트 건설에 활발히 참여했고, 그의 형인 앙리 톤티(Henri Tonti)는 오대호에서 미시시피강을 따라 남하해 일리노이와 루이지애나 지역을 개척했다.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프랑스가 차지한 영역은 나날이 커져 현재 미국 영토의 3분의 1에 달했다. 현재 캐나다 대부분 지역도 프랑스의 통치 아래 있었다. 영국은 쓸모가 많은 생선인 대구 어획을 위해 캐나다 북부의 광활한 허드슨만 입구를 개척했다.
영국의 북미 지역에 대한 관심은 프랑스보다 훨씬 컸다. 1607년 영국 국왕 제임스 1세는 런던 버지니아 회사를 설립해 일단의 식민지 개척단을 조직했다. 군인, 상인, 목수 등으로 구성된 개척단은 워싱턴 D.C.에서 185㎞ 떨어진 버지니아주 체사피크만 입구에 제임스타운이라는 정착촌을 건설했다. 1620년에는 청교도인이 종교 박해를 피해 보스턴 인근의 매사추세츠로 이주했다. 이 두 지역을 중심으로 영국의 식민지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버지니아와 그 이남의 캐롤라이나와 조지아 지역은 흑인 노예를 대농장 플랜테이션의 고된 노동에 투입하면서 담배, 사탕수수, 면화, 인디고 등을 재배하며 부를 쌓았다. 보스턴과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북부 지역은 농업뿐만 아니라 어업과 해운업을 통해 성장했다.
1756년 유럽에서 7년 전쟁1)이 발발하자 영국과 프랑스 군대는 전 세계 식민지 영유권을 두고 사생결단으로 맞섰다. 북미 지역에서는 프랑스가 모피를 교역하던 원주민 부족과 손잡고 영국 식민지 군대와 치열하게 싸웠다. 이 전쟁에서 프랑스는 크게 불리했다. 활발하게 정착 정책을 펼친 영국 식민지 인구가 200여만 명에 달했지만, 프랑스인은 몇만 명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1763년 프랑스는 결국 패배를 인정하고 캐나다 지역 전부와 미시시피강 동쪽 루이지애나 속지를 영국에 넘겨야했다. 1803년에는 영국과 전쟁에 소요되는 비용 마련이 시급했던 나폴레옹이 미시시피강 서쪽 땅까지 미국에 팔았다.
프랑스의 북미 지역 상실은 단지 영토 축소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북미 지역 경제가 성장할수록 영국과 교역이 늘어났다. 북미 지역은 영국에 농작물을 공급하고 공산품을 사들이면서 영국의 국부 축적에 기여했다. 미국 남부 지역은 자유무역의 혜택을 크게 입었다. 플랜테이션 농산물을 낮은 관세로 수출하고 농기계와 가구 등을 수입해 번영했다. 버지니아와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가장 부유한 지역이 됐고 무역항인 찰스턴(Charleston)항과 서배나(Savannah)항도 급성장했다. 넓고 비옥한 국토를 바탕으로 농업 생산력이 강했던 프랑스에 비하여 가난했던 섬나라 영국은 해상 진출과 무역 확대에 적극적이었다. 영국인은 북미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까지 진출해 정착하고 교역하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다.
기술·투자·무역, 경제 번영의 조건
자유무역은 영국 성장의 견인차였다. 미국도 영국과 교역을 바탕으로 크게 성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각국의 경제가 피폐해지자, 미국은 최대 채권국이 됐고 달러는 기축통화가 됐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 질서를 확립하면서 경제적 번영을 이뤘다. 세계 최고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제패했다. 제조업 성장의 핵심이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벨트였다. 오대호 연안의 클리블랜드와 필라델피아 등은 철강과 운송업으로 성장했다. 시카고는 물류와 제조업으로 미국 3대 도시로 성장했다. 1980년대부터 일본을 비롯해 독일, 중국 등의 제조업 경쟁력이 급격하게 향상되자, 미국 제조업은 위기를 맞았다.
1990년대 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2) 체결 이후에는 미국 제조업이 대거 해외로 생산 설비를 옮겼다. 역설적으로 이제는 한국, 일본, 독일 자동차 회사를 중심으로 외국 기업이 미국에 직접 투자했다. 투자는 동남부 지역에 집중됐다. 이를 반영하듯 캐롤라이나에서 애틀랜타로 뻗어 있는 85번 고속도로 교통량이 급증하고 있다. 경제적 번영은 자유무역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기술 개발과 자국민의 경쟁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도 산업 공동화가 일어나면 공염불이 된다. 기술·투자·무역의 삼박자가 맞아야 국가 경제가 번영한다.
용어설명
- 17년 전쟁
1756~63년 영국과 프랑스가 전 세계 식민지 패권을 두고 벌인 최초의 세계적 규모 전쟁. 북미 대륙에서는‘프렌치·인디언 전쟁’으로도 불린다. 초기 프랑스는 원주민 부족과 연합해 맞섰으나, 강력한 정착 정책으로 인구가 훨씬 많았던 영국의 화력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 전쟁의 패배로 프랑스는 북미 영토 대부분을 영국에 넘겨줬으며, 이는 훗날 영국의 국부 축적과 미국 탄생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 2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994년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관세 등 무역 장벽을 허물기 위해 체결한 협정. 이 협정은 북미 대륙을 하나의 거대 시장으로 묶어 교역량을 늘리는 데 기여했으나, 미국의 전통적 제조업 산업이 인건비가 저렴한 멕시코 등으로 이전하면서 국내 산업 기반이 점차 사라지는 산업 공동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는 이를 대체하기 위해 노동 및 환경 규정이 강화된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으로 개정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