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통상 현장 INTERVIEW 리처드 던시스 뉴질랜드 무역산업진흥청 서울사무소 대표 “FTA 10년 만에 한·뉴질랜드 교역 2배 성장…양국 성공 방식 비슷”
  • 이용성 기자
  • 뉴질랜드의 국토 면적은 27만㎢로 한반도 전체 면적(22만㎢)보다 조금 더 크다. 하지만 인구는 약 525만 명으로 대한민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뉴질랜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빗물을 그대로 받아 마실 수 있을 만큼 때 묻지 않은 ‘청정 자연환경’이다. 이런 인식이 널리 퍼진 데는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국가 브랜딩 캠페인 중 하나로 꼽히는 ‘100% 순수 뉴질랜드(100% Pure New Zealand)’ 캠페인도 한몫했다. 1999년부터 사용된 이 슬로건은 뉴질랜드의 때 묻지 않은 자연 경관, 독특한 마오리(뉴질랜드 원주민) 문화유산, 모험의 정신 그리고 청정함을 강조하며 프리미엄 관광지로서 가치를 담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낙농업과 와인을 포함한 식음료 산업에서 상당한 후광효과를 누려왔다. 그중에서도 뉴질랜드 와인 산업의 고속 성장은 눈이 부실 정도다. 뉴질랜드는 신대륙에서 가장 늦게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80년대 수출을 시작했음에도 불과 30여 년 만에 세계 10대 와인 수출국에 진입했을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국내에서는 2025년 1~11월 기준 뉴질랜드산 와인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금액 기준 57%, 물량 기준 86%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24년 국가별 와인 수입 순위(금액 기준) 6위였던 뉴질랜드는 1년만에 스페인을 밀어내고 5위에 올라섰다. 물량 기준으로는 미국과 호주를 제치고 7위에서 5위로 두 계단 상승했다. 뉴질랜드는 대표 품종인 소비뇽 블랑을 중심으로 한 화이트 와인 강국이다. 소비뇽 블랑은 프랑스 보르도가 원산지인 품종이지만, 뉴질랜드 토양과 기후에서 재배되면 보르도와는 다른 향과 스타일을 보여준다. 풀 냄새, 레몬 , 라임, 구즈베리, 엘더베리 향이 특징이며, 낙농업에서 빌려온 스테인리스스틸 탱크, 온도 조절, 무산소 양조가 제조 핵심이다. 짙은 장미꽃 향이 매력적인 뉴질랜드 피노누아는 프랑스 부르고뉴산 피노누아의 대체 와인으로 인기가 높다. 최근 서울 중구에 있는 주한뉴질랜드 대사관에서 기자와 만난 리처드 던시스(Richard Dunsheath) 뉴질랜드 무역산업진흥청 서울사무소 대표는 뉴질랜드에 대한 이 같은 인식과 상황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청정 자연의 아우라가 워낙 강한 탓에 항공우주산업과 재생에너지 등 다른 분야의 경쟁력이 아직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고 있는 것을 아쉬워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빨간 케이블카가 다니는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

    뉴질랜드 산업구조에 어떤 변화가 진행 중인지 궁금하다.

    “낙농·육류·와인·임업이 변함없이 든든하게 버팀목 역할을 하는 가운데 경제 다각화가 진행 중이다. ‘기술’이 뉴질랜드의 세 번째로 큰 수출 분야라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농업 기술, 의료 기술, 항공우주, 게임 개발, 영화, 교육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력한 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뉴질랜드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목표를 앞세워 청정에너지 분야 협력 관련 상당한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첨단 기술 접목으로 낙농과 와인 등 전통적인 산업 분야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얘기도 되는 건가.

    “그렇다. 기술은 해당 분야 전반을 혁신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정밀 농업, 생명공학, 지속 가능한 식품 시스템 등을 주도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도록 돕는다. 인공지능(AI) 기술, 데이터 분석 및 디지털 도구를 수확량 최적화, 수자원 관리, 탄소 배출량 감축에 활용한다. 뉴질랜드는 프리미엄 식품 강국일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기술 분야의 선도국이다. 따라서 한국과는 식량 안보와 재생에너지, 디지털 기술 등 분야에서 협력 기회가 많이 생길 것으로 본다.”

    또 어떤 산업 분야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있나.

    “재생에너지, 게임 개발, 항공우주 등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면서 친환경 기술과 첨단 서비스 분야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뉴질랜드 게임 산업은 모바일 및 PC 플랫폼에서 세계적 수준의 타이틀을 생산하고 있다. 발사체와 무인 항공기(UAV) 분야를 중심으로 한 항공우주산업은 정부와 산업계 간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급성장 중이다. 또한 전통적인 마오리 문화유산을 접목해 브랜딩에 진정성과 독창성을 더하는 한편, 교육 및 관광 서비스를 통해 글로벌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소형 발사체 분야의 숨은 강국이다. 2006년 뉴질랜드에서 창업한 로켓랩이 대표 주자다. 로켓랩은 이후 미국 정부와 협력을 위해 본사를 미국으로 옮겼지만 발사 기지는 뉴질랜드와 미국 두 곳에 두고 있다. 로켓랩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1)에도 참여 중이다. 뉴질랜드에 본사를 둔 그라인딩 기어 게임스가 제작한 ‘패스 오브 엑자일’은 2013년 10월 첫 출시됐고, 2018년에는 세계 최대 게임 콘텐츠 집산지로 불리는 스팀에서 ‘가장 많은 유저가 찾은 톱 10’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라인딩 기어 게임스는 현재 중국 텐센트의 뉴질랜드 게임 자회사로 편입된 상태다.

    2025년에 한국과 뉴질랜드는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0주년을 맞았다. 그간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한·뉴질랜드 FTA 체결 이후 지금까지 양국의 교역 규모는 두 배 넘게 증가했으며, 한국은 뉴질랜드의 다섯 번째로 큰 교역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양측이 관세 철폐를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한국에 들어오는 뉴질랜드산 수입품 93.9%는 관세 없이 수입되고 있다. 2025년에는 뉴질랜드산 블루베리와 여러 특수 유제품에 대한 시장 접근이 허용되는 등, FTA는 양국 간 무역 관계에 지속적으로 가치를 더하고 있다.”

    RCEP 및 CPTPP같은 무역협정은 뉴질랜드 수출 업체에 더 넓은 시장 접근권, 낮은 관세 그리고 글로벌 무역에서 더 큰 확실성을 보장한다.

    뉴질랜드산 키위가 한국에서 흔해진 건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다.

    “한·뉴질랜드 FTA 발효 이후 키위는 한국으로의 주요 수출 품목으로 자리매김했다. 45%에 달했던 관세가 FTA 첫 5년간 단계적으로 철폐되면서 제스프리로 대표되는 뉴질랜드 키위 브랜드가 한국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제스프리는 제주도와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해 한국의 키위 산업 육성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제주에서 재배되는 키위 50% 이상이 제스프리 키위다.”

    무역 환경 변화에 발맞춰 FTA를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재명 대통령과 크리스토퍼 럭슨 총리는 2025년 정상회담에서 이에 대해 함께 모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뉴질랜드가 최근 체결한 FTA는 디지털 무역, 재생에너지, 투자 촉진, 핵심광물, 우주 기술, 첨단 기술 및 크리에이티브 산업 분야에서 협력 확대 등을 포함한다. 한·뉴질랜드 FTA 확장·업그레이드 관련 방향 설정에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과 럭슨 총리는 2025년 10월 3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가 열린 경주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는 경제 영역은 물론, 군사·안보 영역의 협력까지 포함하는 높은 수준의 우호 관계다.

    한국과 뉴질랜드가 경제·산업 협력 파트너로서 ‘궁합’이 잘 맞는다고 보나.

    “뉴질랜드와 한국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경제 성공을 이룬 방식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한국은 K-팝, K-영화, K-패션 등으로 전 세계 문화 트렌드를 주도하며 크리에이티브 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강국으로 도약했다. 뉴질랜드도 이와 비슷하게 마오리 문화유산과 독특한 스토리텔링 전략을 활용해 제품과 서비스에 진정성과 차별성을 더했다. 한국의 음악과 영화, 뉴질랜드의 영화 제작과 게임 개발은 문화 자본이 어떻게 경제적 힘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뉴질랜드의 프리미엄 식품 수출과 농업 기술혁신과 한국의 첨단 제조업 및 정보통신기술(ICT) 리더십에서 보듯 기술의 역할도 비슷하다.” 뉴질랜드는 정부의 세제 혜택 등에 힘입어 할리우드 영화의 해외 촬영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반지의 제왕’ 3부작과 ‘호빗’ 3부작, ‘나니아 연대기’,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 등이 뉴질랜드에서 촬영한 대표적인 영화다. 뉴질랜드 외교부의 2025년 3월 보고서를 보면, 뉴질랜드 영화 산업은 연간 35억뉴질랜드달러(약 3조원)의 매출을 만들어낸다.

    뉴질랜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양대 메가 FTA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 양쪽 모두에 속해 있다.

    “RCEP 및 CPTPP 같은 무역협정은 뉴질랜드 수출 업체에 더 넓은 시장 접근권, 낮은 관세 그리고 글로벌 무역에서 더 큰 확실성을 보장한다. RCEP은 뉴질랜드를 아시아 최대 경제권과 연결해 원산지 규정을 간소화하고 공급망을 강화한다. 아·태지역 고성장 시장으로의 문을 열어주는 CPTPP는 상품뿐만 아니라 서비스, 투자 및 디지털 무역까지 포괄한다. 이들 협정은 수출 시장을 다각화하고, 비용을 절감하며, 농업기술·ICT·창조 산업 등 분야의 혁신을 지원한다. 뉴질랜드 기업은 이를 통해 경쟁력과 회복 탄력성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에 지속 가능한 프리미엄급 제품을 공급할 새로운 기회를 누리게 된다.”

    2018년 발효된 CPTPP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14%를 차지하는 경제권이다. 지금까지 12개국(일본·캐나다·영국·호주·멕시코·싱가포르·베트남·말레이시아·칠레·페루·뉴질랜드·브루나이)이 가입했다. 관세 철폐율이 95% 이상으로 높고, 디지털·지식재산권·금융 등 비관세장벽의 자유화도 추구하고 있다. RCEP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를 포함하는 15개 회원국을 거느린 지역경제공동체로 전 세계 인구와 GDP의 30%를 차지하는 거대 FTA다. 2022년 발효됐다.



    용어설명
    • 1아르테미스 프로그램 (Artemis Program)

      아르테미스 협정(Artemis Accords)이라고 한다. 미국 주도의 국제 달 탐사 계획으로, 유인 탐사와 달 우주 기지 건설 등을 목표로 한다. 유사한 계획이었던 컨스텔레이션 프로그램이 취소된 후, 트럼프 정부에서 입안, 실행됐으며, 나사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우주 기구와 우주 관련 민간 기업까지 폭넓게 참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