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책: 더 특별한 통상 Book In Book ① Interview 김숙영 미국 UCLA 연극영화방송학 교수 "K-콘텐츠, 섬세한 감정의 힘 발휘… 美 Z 세대도 사로잡아"
  • 이신혜 기자
  • 고려대 노어노문학 학·석사, 미 일리노이대 시카고 캠퍼스 슬라브어문학 박사, 미 노스웨스턴대 연극학 박사, 현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연극·영화·방송대학 부학장

    2025년을 기점으로 K-콘텐츠는 단순히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얻는 지역 문화가 아니라, 세계 문화 산업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글로벌 주류 콘텐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K-콘텐츠의 세계적 흥행은 2000년대 초반 한류 드라마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겨울연가’와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는 감정의 밀도와 관계 중심 서사를 기반으로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콘텐츠의 영향력은 주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국한돼 있었으나 이 시기는 한국 콘텐츠가 ‘수출 가능한 문화 상품’으로 자리 잡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후 K-드라마는 서서히 온라인 기반 플랫폼을 타고 유럽과 미주 지역으로 확산됐고,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장과 함께 국경을 뛰어넘는 소비 환경을 완전히 확보하게 됐다.

    이어 2010년대 중반, K-팝은 글로벌 대중문화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했다. 한류 팬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아(SNS)를 기반으로 자생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했고, 이는 기존의 일방향적 문화 수출이 아니라 ‘참여하고 응원하고 행동하는 팬덤 생태계’로 발전했다.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스타디움 투어를 성공시키며 한국 아티스트가 세계 음악 시장의 중심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다. 특히 2020년대 들어 K-콘텐츠는 장르 확장과 서사 실험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OTT를 중심으로 한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열풍, K-팝 아이돌의 연이은 미국 시장 진입, 뷰티·패션·푸드 산업으로 확장 등은 K-콘텐츠가 더 이상 단일 장르가 아닌 ‘거대한 문화 산업 생태계’임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K-콘텐츠는 음악·드라마·영화를 넘어 예능·게임·웹툰·캐릭터 사업까지 확장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복합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가장 주목되는 사례가 바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대성공이다. 이는 기존 K-팝 산업의 핵심인 ‘아이돌 실존성’과 ‘퍼포먼스 중심성’을 벗어나 음악 그 자체의 힘과 지식재산(IP) 확장성을 증명한 사례로 평가된다. 실재 아이돌 없이도 음악 IP만으로 글로벌 팬덤을 형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고, K-콘텐츠가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세계시장의 새로운 수요층을 확보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미국 시장이 있다. 미국은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최대 소비지이자 문화적 기준을 형성하는 허브다. 과거 K-콘텐츠 소비층은 유학생, 동아시아계 미국인, 문화 관심자 등 특정 집단에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초등학생-중학생-Z 세대(1997~2010년생) 등으로 소비층이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이는 K-콘텐츠가 ‘해외 문화’가 아니라 ‘일상 문화’로 편입됐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OTT 플랫폼에서 한국 드라마는 주요 콘텐츠 자산으로 자리 잡았고, ‘폭싹 속았수다’처럼 지역성과 한국적 자연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서울 중심 이미지를 넘어 한국의 다양한 지형과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숙영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스캠퍼스(UCLA) 연극영화방송학 교수는 “섬세한 감정과 관계의 힘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한국의 성숙한 시민사회가 K-콘텐츠의 질을 끌어올렸다”고 강조한다. 동시에 “장르의 다양화와 스포츠 등 미개척 분야 진출, 어린 소비층 공략”을 향후 5년의 관건으로 제시한다. 아래는 김 교수와 일문일답.

    ‘케이팝 데몬 헌터스’ 넷플릭스

    K-콘텐츠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콘텐츠가 영미권 국가가 자체 생산하는 콘텐츠가 하지 못하는 점을 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K-드라마의 경우 굉장히 섬세한 감정선을 아주 심도 있게, 예술적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잘 포착한다는 점이 인기 비결이다. K-팝은 주로 젊은 소비층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 규모와 수준으로 대량의 콘텐츠를 지속 생산하는 저력이 대단하다. 역사가 깊은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고품질 퍼포먼스와 미디어 콘텐츠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

    해외 소비자가 K-콘텐츠를 보고 느끼는 공감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나.

    “미국 드라마나 영화는 자극적이고 큰 액션, 특수 효과, 가상 세계 같은 요소가 주요 매력 포인트다. 반면 한국 콘텐츠는 섬세한 감정과 인간관계, 끈끈한 정서 같은 다소 옛날 감정을 잘 반영한다. 동시에 매우 트렌디한 면도 있어 익숙한 감정선에 이국적이고 새로움이 가미되며 ‘익숙하면서도 새롭다’는 공감 포인트를 형성한다.”

    익숙함과 이국적 매력의 예시를 든다면.

    “익숙함은 감정적인 부분이다. 가족 단위 삶의 중요성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보편적이고, 이는 한국 드라마의 핵심 요소다. K-팝에서도 멤버 간 관계가 형, 막내 같은 가족적 용어로 규정되며 친밀감을 만든다. 이국적 매력은 외형적으로 드러난다. 서울 특유의 강, 다리, 산자락이 어우러진 도시 풍경은 미국에 없는 이미지로, 매우 이국적이다. K-팝 아이돌과 배우도 동양적 얼굴을 기반으로 미국과 다른 스타일링과 화장법을 보여주기 때문에 시각적 이국성을 강화한다.”

    한국에서 콘텐츠 생산자가 제작 단계에서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다면, 고려할 점은.

    “미국에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소비층 연령이 매우 낮아졌다는 점이다. 과거 K-팝 팬덤은 대학생 중심, 드라마는 중년층 비중이 컸지만, 이제는 초등학생, 중학생이 자연스럽게 소비하고 있다. 따라서 어린 세대에게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콘텐츠가 필요하다. 또한 미국인은 스포츠 시청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한다. 스포츠와 결합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개발해 볼 만하다.”

    K-콘텐츠가 가진 글로벌 우위와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의 뜨겁고 강력한, 성숙한 시민사회가 콘텐츠 질을 높인다. 많은 비판과 성원, 피드백이 팬·소비자 문화로 고착되며 콘텐츠 질을 계속 상향 조정한다. 홍콩 영화가 ‘표현의 자유’ 제약으로 쇠퇴한 것과 비교하면, 의미가 크다. 또한 한국의 역사는 비극과 억압, 고통의 시간이 길어 이야기할 것이 많다. 표현의 자유가 주어진 환경에서 말할 채널이 생기며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우위를 만든다.”

    글로벌 OTT에서 흥행한, 주목할 만한 K-콘텐츠 성공 사례는 무엇인가.

    “K-콘텐츠의 힘은 여전히 드라마다. 제주도를 잘 부각한 ‘폭싹 속았수다’는 지역사회와 지역 풍경을 드라마로 선명하게 드러낸 사례다. 서울을 넘어 한국의 다양한 지형과 문화, 커뮤니티를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가 더 많이 필요하다.” 

    K-콘텐츠에서 문화·언어 장벽 극복 사례가 있나.

    “한국의 연예기획사 하이브와 다양한 인종으로 꾸려진 다국적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가 좋은 사례다. 멤버의 문화적·언어적 배경이 모두 다르고, 각 문화 기반 팬덤을 확보했다. 멤버 구성과 로케이션 자체를 다양화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가 직면한 한계가 있다면.

    “콘텐츠 스타일이 예상 가능하고 정형화됐다는 인식이 있다. K-팝은 군무, 뮤직비디오 스타일이 떠오르고, K-드라마는 인간관계 중심 서사가 연상된다. 표현 방식과 장르를 다양화해야 한다. ‘케데헌’의 성공은 실제 아이돌이 없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표현법을 선택해 음악 자체의 힘을 부각한 사례다. 이러한 장르 개척이 중요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주인공 진우의 반려동물이자 루미에게 편지를 전하는 전령인 호랑이 '더피(Derpy)'와 까치 '서씨(Sussy)'.

    영미권 국가 등 현지화·파트너십에서 유의할 점은 무엇인가.

    “한국의 조직적이고 위계적인 업무 문화는 미국 파트너사에 생소할 수 있으므로 유연성이 필요하다. 흑인, 라틴계 등 음악 산업에서 크게 활약한 소수민족 스타일을 단순히 스타일링 차원에서 모방하는 것은 역효과를 낼 수 있어, 지양해야 한다.”

    향후 5년간 K-콘텐츠의 지속 성장을 위해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장르 다양성과 새로운 표현법 개척이 필요하다. 스포츠 시장, 애니메이션 등 우위를 점하지 못한 분야에서 활로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활황이지만 같은 것만 소비되면 무게중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것이다. 미국 소비자는 직접 참여하는 문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뷰티, 푸드가 성공한 것처럼 참여형 이벤트와 실천형 활동 설계가 필요하다.”

    K-콘텐츠 인기 지속을 위해 제도적·정책적 지원은 어떤 방향으로 강화해야 하나.

    “K-콘텐츠는 전반적으로 도회적 이미지가 강하다. 이제는 한국 자체의 다양성을 보여줘야 한다. 지방 특색, 역사,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결합한 콘텐츠가 필요하며 관광 활성화와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글로벌 브랜드화를 위한 플랫폼 전략은.

    “어린 소비층에게 건전한 문화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K-팝이 미국에서 대중화한 이유 중 하나는 부모가 걱정하지 않는 콘텐츠라는 점이다. 플랫폼 전략은 시각 자료 소비에 그치지 않고 이벤트, 팝업스토어, 굿즈 등 참여형 구조로 확장해야 한다.”

    팬덤·문화 교류 차원에서 필요한 활동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문화 소비가 언어 학습, 방문, 역사 이해로 이어진다.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을 평생 유지하게 하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언어 지원, 한국 방문 지원, 역사·전통 교과과정 지원 등은 100년, 200년을 내다보는 국가적 사업이다. 한국 문화의 진정한 세계화·대중화는 소비자가 한국 제품을 일상적으로 쓰는 것을 넘어 한국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할 때 구현된다. 소비 패턴은 쉽게 바뀔 수 있지만 한 국가에 대한 감정은 뿌리가 깊어, 그 나라에 대한 좋은 감정이 하나의 문화적 호기심을 낳고, 그 나라에 대한 지식을 갈구할 땐 더 영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