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기 전까지 유럽을 찾는 국내 여행자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급부상 중이었다. 2015년 9만7000여 명이던 포르투갈 방문 한국인 수가 2019년 20만9000명으로 4년 사이 두 배 넘게 증가한 것이 증거다. 팬데믹 종료 이후 포르투갈의 관광산업은 급속도로 회복됐다. 포르투갈 관광청에 따르면, 2023년 포르투갈을 찾은 관광객은 약 3000만 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관광 수입은 약 250억유로(약 42조3800억원)에 달해 팬데믹 이전 기록을 갈아치웠다. 현재 관광산업은 포르투갈 국내총생산(GDP)의 약 16.5%를 차지한다.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 파리의 에펠탑이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처럼 사진 한 장으로 전 세계 누구나 알아봐 주는 ‘특급 인증샷 명소’는 없다. 대신 도시의 상징이 된 노란색 트램(전차)을 타고 누비는 좁은 골목길엔 시선 닿는 곳마다 다른 어떤 도시와도 구별되는 개성 가득한 아름다운 건물과 상점이 즐비하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위대한 에덴’이라고 부를 만큼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리스본 근교의 신트라와 도루 강변을 따라 설치된 가로등이 켜지면서 노란 불빛으로 물들어 가는 제2의 도시 포르투의 야경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관광 매력에 가린 느낌이 있지만, 스타트업 붐 또한 포르투갈 경제를 떠받치는 주춧돌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우수한 디지털 기반 시설과 세제 혜택, 스타트업 비자 혜택 도입 등을 시행하면서 포르투갈은 유럽의 ‘스타트업 허브’로 거듭났다. 포르투갈 정부 집계에 따르면, 포르투갈 내 스타트업 수는 2022년 3713개에서 2023년 4073개로 늘었고 리스본에서 매년 열리는 ‘웹 서밋’은 유럽 최대 스타트업 행사로 꼽힌다. 수자나 바즈 파투 주한 포르투갈 대사는 최근 ‘통상’ 인터뷰에서 “유럽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포르투갈은 4억5000만 소비자가 있는 시장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면서 “유럽의 다른 허브에 비해 운영 비용이 합리적이며 아시아와 문화·외교적 친화성도 높다”고 말했다. 리스본 출신인 파투 대사는 파리제1대학(팡테옹 소르본)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 외교부에 입사해 유엔 대표부와 주앙골라 대사 등으로 근무했으며 한국 대사로 부임 전까지 포르투갈 외교부 법률 담당 총국장을 지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포르투갈 정부는 경제협력 파트너로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나.
“포르투갈 정부는 한국을 아시아의 핵심적인 전략적 파트너로 보고 있다. 특히 반도체, 전기차,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분야의 위상과 스마트 디지털 기술 확산과 접목을 위한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양국에 이익이 되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글로벌 가치 사슬 내 포르투갈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과 투자 및 무역을 적극 장려하는 입장이다. 포르투갈은 한국 기업에 유럽 진출의 관문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한국은 포르투갈 기업에 혁신 주도형 협력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이 특히 유망할까.
“포르투갈과 한국의 경제·비즈니스 협력은 여러 핵심 분야에서 잠재력이 크다. 특히 자동차 분야가 두드러져 보인다. 현대차와 기아는 전기차, 자율주행, 수소 기술 분야에서 유럽 내 강력한 입지를 구축했으며 포르투갈 산업 협회와 공식 협약을 통해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재생에너지 분야의 잠재력도 크다. 포르투갈의 풍력 터빈 타워 제조 및 태양광발전 프로젝트에 한국이 투자하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배터리 기술 및 에너지 저장 솔루션 분야에서도 협력 중이다.”
배터리 분야는 어떤가.
“포르투갈은 유럽 최대 리튬 생산국1)이다. 양국은 배터리 및 리튬 공급망 분야의 협력을 긴밀히 촉진하고 있다. 포르투갈은 한국의 배터리 제조 산업에 전략적 파트너 역할을 한다. 그밖에 생명공학 및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포르투갈 기업이 정부의 지원 정책을 바탕으로 한국의 혁신 허브와 협력해 제약, 의료 기기, 의료 서비스 분야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 같은 협력이 역동적인 스타트업 생태계와 전략적 협력을 바탕으로 AI, 디지털 인프라, 게임, 사물인터넷(IoT)을 아우르는 정보통신기술 분야로 확대될 것이다.”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한 포르투갈 정부의 노력을 소개해달라.
“포르투갈 정부는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해 다양한 조치를 시행해 왔다. 경쟁력 있는 세제 혜택, 간소화된 규제 절차, 혁신 허브 및 클러스터를 위한 상당한 자금 지원 등이다. 포르투갈 투자무역청(AICEP)은 초기 문의부터 설립 및 확장까지 산업 및 연구개발(R&D) 투자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포괄적인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며, 여기에는 인력 양성, 입지 선정, 자금 조달 옵션에 대한 지원이 포함된다.”
포르투갈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과 투자자는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맞춤형 정보와 이해관계자 소개, 기업 실사단 조직 등 신뢰할 수 있는 현지 지원을 제공한다. 특히 AICEP는 산업별·규제 관련 안내, 인센티브 매핑, 기업 설립, 지자체, 클러스터, 공급 업체, R&D 연계, 적극적인 사후 관리 등 믿을 만한 원스톱 파트너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주한 포르투갈 대사관은 기관 채널 연계 및 영사 지원을 통해 AICEP 역할을 보완한다. 양 기관은 초기 문의부터 사업 확장까지 전략적 협력자로 함께한다.”
포르투갈에서 한국 기업의 위상과 이미지는 어떤가.
“한국 기업은 특히 소비자 기술 분야에서 높은 품질로 정평이 났다. 여기에 첨단 혁신 역량과 디지털 경쟁력으로 점점 더 인정받고 있다. 이 같은 선도적 위상은 포르투갈이 한국을 투자 유치 및 전략적 협력의 우선 대상으로 삼는 핵심 이유다. 한국 기업은 포르투갈 시장에 비교적 최근에 진출했지만, 모빌리티, 재생에너지, 기술 기반 산업 등 분야를 중심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한국 기업이 포르투갈을 거점으로 유럽 시장을 공략하는 건 괜찮은 전략일까.
“그렇다. 유럽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포르투갈은 4억5000만 소비자가 있는 시장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 동시에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가교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엔지니어링·정보기술(IT)·생명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고숙련 다국어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선도적인 대학 및 R&D 기관, 역동적인 스타트업, 유럽연합(EU)자금 지원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활기찬 혁신 생태계를 제공한다. 또한 유럽의 다른 허브에 비해 운영 비용이 합리적이며 아시아와 문화·외교적 친화성도 높다. 지난해 개설된 리스본~서울 직항 노선도 도움이 될 것이다.”
포르투갈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성공 사례 소개 부탁한다.
“CS윈드의 포르투갈 거점은 유럽의 육·해상 풍력 발전 공급망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하논시스템즈가 포르투갈에 엔지니어링 센터를 개설해 운영 중이다. 컴프레서를 생산하며 전기차 시스템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듀얼 보그스테나는 EU 자동차 제조사에 내장재를 공급한다. 태양광발전 분야에서는 한화큐셀이 포르투갈 발전 시장에 진출했다. 양국의 해외 파트너십 역시 성과를 내고 있다. 포르투갈의 MCA와 삼성SDI는 앙골라에서 농촌 전기화 및 에너지 저장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 중이다.”
포르투갈의 투자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프라와 안정성이 최대 강점이다. 현대적인 항만과 공항, 촘촘한 도로 및 통신망, 정치적 안정성, 규제 환경이 예측할 수 있으면서 EU와 조화를 이룬다. 깨끗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도 장점이다. 포르투갈은 재생에너지 발전 분야에서 유럽 선도국 중 하나다. 2024년 기준 전력 소비량의 71%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제조 업체가 탄소 중립을 실현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약속을 이행하기에 유리한 환경이다. 이 같은 장점이 높이 평가 받으면서 포르투갈은 지속적으로 유럽 내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 매력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브라질과 포르투갈은 언어(포르투갈어)와 종교(두 나라 모두 가톨릭 신자가 다수), 문화 등 비슷한 점이 많다. 한국 기업이 포르투갈을 통해 브라질 시장 진출에 도움받을 수도 있을까.
“브라질2)은 거대하지만, 포르투갈을 통해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은 아니다. 리스본에서 가장 가까운 (다른 나라의) 수도는 스페인의 마드리드가 아닌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수도 리바트다. 아프리카에도 앙골라와 모잠비크 등 포르투갈어를 쓰는 나라가 있다. 이들 국가도 성장 잠재력이 크지만, 진출이 쉽진 않다. 포르투갈은 1990년대 후반 포르투갈어를 쓰는 아프리카 국가와 본격적인 협력 관계를 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교적인 커뮤니티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무역과 비즈니스 등 폭넓은 분야에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포르투갈과 협력으로 이들 국가 진출에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포르투갈은 역사적으로 일본과 가까웠다. 일본식 스펀지 케이크 ‘카스테라’도 포르투갈 선교사가 나가사키에서 처음 소개한 ‘카스텔라(castella)’가 원조 아닌가. 포르투갈 시장 경쟁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유리하지 않을까.
“포르투갈 소비자는 한국을 좋아한다. 한국은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이미지나 호감도에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포르투갈 젊은이 중에는 K-팝 팬이 많다. K-팝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한국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한국은 유럽에서 매우 유명한 나라가 됐다.”
포르투갈이 다른 남유럽 국가와 달리 영어가 매우 잘 통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교육의 힘이다. 포르투갈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시작한다. 국민의 다수가 영어로 자유로운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그 점에서는 남유럽보다는 북유럽 국가와 비슷하다. 어린이도 영어를 매우 잘한다. 물론 관광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포르투갈 여행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포르투갈 음식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었다.
“포르투갈 요리에서는 생선을 비롯한 해산물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대구와 정어리 등 다양한 종류의 생선을 그릴에 넣고 굽거나 소금에 절여 먹는다. 또 올리브와 절인 채소도 식탁에 자주 등장한다. 올리브 오일은 육류나 생선의 맛을 돋울 때도 쓴다. 대표적인 생선 요리 중 하나인 바칼라우(Bacalhau·소금으로 간한 건대구)는 레시피가 1000가지나 된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방법으로 즐겨 먹는 ‘국민 음식’이다. 쌀밥도 주식 중 하나라,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을 것이다.”
용어설명
- 1유럽 최대 리튬 생산국
포르투갈은 유럽 최대 리튬 생산국이다. 매장량은 약 6만t으로 세계 8위다. 과거에는 도자기 산업용 리튬 생산에 집중했지만, 최근 들어 전기차 배터리용 고급 리튬 생산으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 2브라질
세계 7위의 인구(약 2억1000만 명)를 보유한 인구 대국이자 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1조9200억 달러)의 중남미 최대 경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