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트렌드 통상의 세계 돋보기 Interview 양주영 산업연구원 실장 "韓 의장국 맡은 CRN은 '위기 대응 매뉴얼' 함께 만드는 실전 플랫폼"
  • 장윤서 기자
  • 미국 미네소타대 응용경제학 박사, OECD 한국대표부 무역위원회 선임자문관, 산업부 감사담당관실 청렴옴부즈만, 관세청 규제심사위원회 민간위원

    한국이 국제 경제 안보 공급망 체계에서 이른바 ‘룰 메이커’로 부상하고 있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1) 공급망 협정의 3대 이행 기구 중 하나인 위기대응네트워크(CRN)의 초대 의장국으로 선출되면서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열린 화상회의에서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4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한국을 의장국으로 추대했다. 정부는 한국이 그간 글로벌 공급망 교란 상황에 신속히 대응해 온 경험과 ‘공급망 3법’ 등 정책 기반을 구축한 점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라고 평가했다.

    CRN은 전례 없는 공급망 불안 속에서 실제 위기 시 작동하는 최초의 다자간 공급망 위기관리 플랫폼이다. 따라서 의장국으로서 한국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작지 않다. IPEF 공급망 협정은 한국에 새로운 기회이자 동시에 전략적 과제를 던져주는 구조다. IPEF 공급망 협력의 중심 기구인 CRN은 공급망교란 발생 시 회원국 간 신속한 정보 공유, 정책 공조, 공동 대응을 조율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위기 발생 시 미국·한국·호주·브루나이·인도·일본·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 등 14개 회원국은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체 공급선 확보, 공동 조달, 우회 운송로 발굴, 신속 통관 등 구체적 대응책을 논의한다. 한 국가만 요청해도 15일 안에 회의를 열어야 하고 상황이 심각해지면 장관급·정상급으로 회의가 격상된다. 의장국인 한국은 회의 관리와 정보 공유를 주도하며 위기 해소 방안에 대한 조율 역할을 맡는다.

    10월 22일 한국 주도로 진행된 IPEF 공급망 CRN 모의 훈련도 이러한 역할의 연장선이다. 서울에서 열린 이번 훈련은 핵심광물 공급 중단을 가정한 시나리오 기반 도상 훈련으로, 핵심광물 정제, 가공국의 가동 중단으로 다수 회원국이 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을 겪는 상황을 단계적으로 시뮬레이션 했다. 참가국은 공급망 현황 공유부터 장관급 회의 소집, 공동성명 채택까지 위기 대응의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점검하며 협력 체계의 작동 가능성을 시험했다. 이는 IPEF 공급망 협정 발효 이후 세 번째로 열린 합동 훈련이다. 이 훈련의 시나리오 작성, 진행을 담당한 사람은 양주영 산업연구원 경제 안보·통상전략 연구실장이다. 양 실장에게 IPEF 공급망 위기 대응 네트워크의 출범 배경, 모의 훈련의 목적과 의미 그리고 전망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CRN은 왜 출범하게 됐나.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지정학적 갈등, 수출 통제, 물류 마비 등으로 공급망 교란이 상시화되면서 기존의 다자 협의체만으로는 위기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IPEF 14개 회원국이 ‘위기 때 최소한 즉시 연락이 되고, 누가 어떤 지원이 가능한지 구조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데 뜻을 모으면서 CRN이 출범했다. CRN은 공급망 위기 발생 시 회원국 간 즉각적인 소통과 공동 대응하게 하는 세계 최초의 공급망 전용 위기관리 플랫폼이다. 단순 논의체를 넘어 실제 위기 상황에서 작동하는 ‘비상 본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한국이 CRN 초대 의장국으로 선정된 배경은.

    “한국은 반도체·배터리·전기전자 등 핵심 제조업의 글로벌 공급망 허브이자 일본·호주·동남아와 긴밀한 가치 사슬을 구축한 국가라는 점에서 회원국의 신뢰를 받았다. 또한 공급망 조기 경보(EWS)와 위기 대응 시스템 구축 경험, IPEF 출범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공급망 어젠다를 주도해 온 점, 파트너국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주도해 온 점 등이 의장국 선정의 배경이 됐다.”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나.

    “한국은 △위기 유형, 절차, 데이터 공유 방식 등 핵심 의제를 조정하고 운영 기준을 마련하며 △자원국·제조국·물류국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비축·통관·물류 패스트트랙 등 위기 대응 체계를 제도화하고 데이터 분석, 조기 경보 경험을 기반으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주도한다. 실제로 서울에서 열린 핵심광물 TTX(Tabletop Exercise·모의 훈련)2)에서도 한국은 시나리오 설계부터 회원국 간 이해관계 조정, 결과 도출까지 총괄 역할을 수행해 CRN의 실전 작동성을 검증했다.”

    기존 WTO(세계무역기구),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등 다자 프레임워크와 어떤 점이 다른가.

    “기존 협의체가 주로 관세 인하, 무역 규범 등 자유무역 체제 정비에 초점을 둔 반면, CRN은 실제 대응 능력에 중점을 둔다. 구체적으로는 위기 발생 시 회원국 요청 후 15일 이내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정보 공유, 조기 경보, 공동 비축, 통관 패스트트랙 등 실행 가능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정기적인 TTX를 통한 대응 역량 점검을 핵심 기능으로 한다. 이 때문에 CRN은 규범 제정보다는 실행 중심의 실전형 네트워크라는 차별성이 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노천 채굴장. 크레멘추크(Kremenchuk) 시의 호수와 화강암 채석장.

    서울에서 열린 핵심광물 공급망 TTX 의의는 무엇인가.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이번 핵심광물 공급망 TTX는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실제 위기 상황과 더욱 유사하게 설계된 훈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훈련을 통해 각국의 공급망 취약성과 강점이 드러났다. 비축 동원, 긴급 통관, 공동 구매·비축, 물류 허브 조정 등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옵션도 구체화했다. 무엇보다 CRN이 ‘위기 대응 매뉴얼을 함께 만들어가는 실전 플랫폼’이라는 공감대를 회원국이 공유했다는 점이 성과다. 한국은 초대 의장국으로서 앞으로 TTX 정례화, 데이터·대시보드 구축, 회원국 역량 강화 프로그램 등 CRN 운영 기반을 주도적으로 설계할 계획이다.”

    IPEF 회원국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공급망 리스크는 무엇인가. CRN은 어떤 해법을 제시할 수 있나.

    “회원국이 가장 우려하는 공급망 리스크는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 편중, 정제·가공 단계가 소수 국가에 집중된 미드스트림 병목, 비축·재고·물류 정보의 불투명성 그리고 수출제한·보조금 등 정책 충격의 연쇄 파급이다. CRN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급 정보 공유·경보 체계를 구축하고 비축·재고 정보 연계, 통관 패스트트랙 도입, 정책 충격의 2차 효과를 사전에 공동 검토하는 협의 틀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이번 핵심광물 공급망 TTX는 어떤 시나리오를 가정했고 어떤 위험 요소를 점검했나.

    “핵심광물 정제국에서 예기치 못한 가동 중단으로 정제 능력이 단기간에 급감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이로 인해 공급 국가와 수요 국가가 동시 타격을 받는 충격 경로를 단계적으로 점검했다. 주요 리스크는 △정제 시설 가동 중단 △가격 급등 및 변동성 확대 △일부 국가의 잠재적 수출제한 △통관·물류 병목 △정보 부족으로 인한 과잉 대응 등으로 설정했다. 훈련은 △충격 영향 공유(단계 1) △비축·재고·물류·매칭 논의(단계 2) △장기 협력 틀 및 데이터·메커니즘 설계(단계 3)로 진행되며 회원국 간 대응 절차를 실전처럼 점검했다.”

    이번 훈련을 통해 드러난 가장 큰 공급망 취약성과 앞으로 개선할 점은.

    “세 가지 취약성이 두드러졌다. 첫째, 핵심광물 정제·가공이 소수 국가에 집중돼 있어 정제 시설이 멈추면 역내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가 확인됐다. 둘째, 정부·민간 비축 체계가 미흡해 위기 시 공동으로 활용할 재고 풀(pool)이 부족했다. 셋째, 물류·통관·데이터 연계가 취약해 비상 상황에 어떤 화물을 우선 처리할지, 어떤 항만을 허브로 활용할지에 대한 시스템이 부족했다. 회원국은 비축 관리 개선, 긴급 통관 패스트트랙 도입, 물류 허브 기능 정립, 핵심광물 연구개발(R&D)과 IP 보호 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CRN의 정보 공유·경보 체계는 얼마나 효과적인가.

    “이번 훈련을 통해 CRN의 정보 공유·경보 체계는 기본 구조가 잘 갖춰져 있고 회원국의 참여 의지도 강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단기간에 공동 시나리오를 공유하고 정책 대응 옵션을 논의하는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위기에서 더 정교하게 작동하려면 실시간 데이터·대시보드, 기업 재고·계약 정보 연계, 사전에 합의된 비축 방출·배분 기준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

    CRN이 가지는 정책적·산업적 효과와 우리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이점은.

    “정책 측면에서는 △위기 대응 수단 구체화 △역내 공급망 역할 분담 명확화 △향후 정책 설계에 참고할 테스트베드 확보라는 이점이 있다. 산업·기업 측면에서는 위기 시 새로운 공급·물류 루트를 신속 확보할 수 있고 긴급 통관 패스트트랙과 물류 허브 우선 처리를 통해 비용·시간 절감이 기대된다. 장기적으로는 핵심광물·부품 조달을 위한 공동 투자, 공동 비축, 장기 계약 등 새로운 사업 기회도 확대될 전망이다.”

    실제 공급망 위기 발생 시 한국이 맡게 될 기능은 무엇인가.

    “위기 발생 시 회원국 요청이 있는 경우 한국은 △15일 이내 긴급회의 소집과 의제 정리를 담당하고 △회원국의 공급·수요·비축 데이터를 취합·분석하는 데이터 허브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공급 가능국, 수요국, 물류 지원국 간 신속한 매칭을 조정하고 △통관·물류 개선이나 수출제한 자제 등 정책 권고를 조율한다.”

    IPEF 네트워크가 기업의 생산·투자 의사 결정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장기적으로 IPEF 네트워크는 기업이 생산 기지와 조달선, 물류 루트를 선택할 때 ‘위기 시 지원받을 수 있는 지역’을 더 선호하게 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단순 비용뿐 아니라 정보 공유·비축·정책 공조가 가능한 지역이 새로운 투자 매력지로 부상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 이에 대비해 △국가 전략산업 정책과 IPEF 공급망 전략의 정합성 강화 △기업의 재고·공급선·물류 관련 데이터·리스크 관리 역량 제고 △호주·인도·인도네시아 등 자원국과 공동투자, 공동 비축, 장기 계약 등 협력 모델 확보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CRN은 위기를 없애주는 장치가 아니라, 위기를 ‘관리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공급망 리스크는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위기 시 신속한 정보 공유, 역할 분담, 공동 원칙과 도구를 갖춘 대응 체계가 작동하면 기업과 국민이 체감하는 충격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한국은 의장국이자 글로벌 제조·기술 허브로서 IPEF 파트너와 함께 더 예측 가능하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 질서 구축에 지속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용어설명
    • 1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미국 바이든 정부가 주도해 2022년 출범한 경제협력체로, 인도·태평양지역 14개국이 공급망 안정, 청정에너지·탈탄소, 디지털·무역 규범, 공정 경제 등 4대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새로운 형태의 다자 플랫폼이다. 기존 자유무역협정(FTA)과 달리 관세 감축보다 공급망·기후·디지털 등 신흥의제를 중심으로 규범과 협력 구조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 2TTX(Tabletop Exercise·모의 훈련)

      실제 재난이나 위기 상황을 가정해 관련 기관·국가가 ‘책상 위에서’ 대응 절차를 단계별로 시뮬레이션해 보는 모의 훈련을 뜻한다. 현장 장비나 인력을 동원하지 않고 시나리오 기반 토론 방식으로 진행되며 위기 시 의사 결정 과정, 역할 분담, 정보 공유 체계를 점검하는데 활용된다. 최근에는 공급망 교란, 사이버 공격, 감염병 확산 같은 복합 위기 대응 능력을 점검하는 국제 협력 훈련으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