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트렌드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혼돈의 자유무역 시대, 주요국 FTA 논의 동향 및 시사점

미국의 광범위한 관세 조치로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세계 주요국이 다시 자유무역협정(FTA) 전략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신규 FTA 체결과 중단된 협상 재개, 기존 협정의 업그레이드, 복수 국가 간 무역협정 가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양자·지역 협력을 가속하며 ‘무역 안전판’ 확보에 나서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수십 년간 정체돼 있던 남미 공동 시장 메르코수르·Mercosur)1) 및 인도네시아와 FTA 협상을 각각 25년·10년 만에 타결했고 영국 역시 인도와 협상을 3년 만에 마무리하는 등 글로벌 통상 규범을 둘러싼 지각 변동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발 관세 조치 후 주요국 FTA 협상 속도전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적자 해소와 제조업 부흥이라는 목표 아래 취임 직후 대규모 관세 조치를 단행했다. 2025년 2월 캐나다·멕시코·중국을 대상으로 한 조치를 시작으로 철강·알루미늄, 자동차 및 부품 등 품목별 관세가 차례대로 확대됐고 결국 전 세계·전 품목을 대상으로 하는 상호 관세까지 이어졌다. 일본과 한국 등 미국 동맹국까지 예외 없이 영향을 받으면서 세계 통상 질서가 흔들렸고 주요국은 미국과 분쟁 대응과 별개로 제삼국과 새로운 FTA 체결, 기존 협상 재개 등 외연 확장 전략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정책은 오히려 제삼국 간 무역 협력 강화의 촉매제가 됐다. 수년간 진전 없던 무역협정이 잇달아 가속되며 EU·메르코수르 FTA, EU·인도네시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2), 영국·인도 FTA 등 다수의 협정이 타결됐다. 정치적 안정성 확보, 공급망 안전망 구축, 자유롭고 예측할 수 있는 무역 환경 조성 등 각국의 필요가 맞물리며 FTA가 다시 핵심 외교·경제 전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신흥 시장 중심 FTA 논의 확대…핵심은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

최근 협상 흐름의 특징은 인도·인도네시아·칠레·아랍에미리트(UAE)·캐나다·메르코수르 등 신흥 시장 및 비(非)전통적 교역 파트너와 협상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국은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을수록 시장 다변화를 서둘러야 하며 대외 의존도가 큰 국가일수록 내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FTA를 통한 해외 수요 확보가 필수적인 만큼 적극적인 협정 전략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분석 결과, 국가별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FTA 전략은 경제지표에 따라 뚜렷하게 구분된다. 한국·스위스·칠레 등은 이미 체결된 FTA가 많아 기존 협정의 개선과 보완에 집중하고, 캐나다·멕시코·코스타리카 등은 미국 시장을 대체할 신규 대형 시장 탐색을 강화한다. 메르코수르·일본·호주·중국·인도·EU·영국·인도네시아 등은 전략적 차원의 신규 FTA 체결을 적극 추진하는 그룹으로 분류됐다. 이 같은 움직임은 세계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글로벌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각국의 전략적 계산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 FTA 정책, ‘양적 확장→질적 성장’ 전환 필요

한국의 FTA 정책은 비교적 늦게 시작됐지만 짧은 기간에 가장 빠르고 폭넓게 성장한 사례로 평가된다. 한국은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 위기 이후 대외 개방 확대와 수출 시장 다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본격적인 FTA 전략 수립에 나섰다. 2004년 체결된 한·칠레 FTA는 한국 최초의 양자 FTA로, 이후 정부는 ‘FTA 로드맵’을 마련해 주요국과 협정을 연속적으로 추진했다. 한·싱가포르, 한·유럽 자유무역(EFTA), 한·아세안, 한·인도 CEPA 등 범아시아 네트워크를 빠르게 구축했고 이어 한국FTA 정책의 상징이라 불리는 한·미 FTA와 한·EU FTA를 각각 2012년과 2011년에 발효시키며 선진 시장으로 진출 기반을 강화했다. 한국은 FTA 후발 주자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주요국과 협정을 동시다발적으로 확대해 단기간에 세계 최고 수준의 FTA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성숙기에 접어든 FTA 체제의 현 단계에서는 이미 체결된 협정의 조속한 비준과 개선을 서두르고 국내 취약 산업 보호를 기반으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논의를 본격화하는 등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

CPTPP는 아·태 지역 12개국이 참여하는 고자유화 협정으로 공산품 99.8%, 농·축산물 평균 96.3%, 수산물 100% 관세를 철폐하는 높은 수준의 개방을 요구한다. 이는 한국이 경쟁국 대비 불리해진 수출 환경을 개선하고, 역내 공급망 통합 과정에서 안정적인 생산·조달 체계를 확보하는 데 실질적 도움이 된다. 특히 최근 각국이 전자상거래, 공급망 협력, 탄소 국경세(CBAM), 디지털 규범 같은 신통상 이슈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한국도 CPTPP 가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CPTPP는 단순한 관세 철폐 협정을 넘어 디지털 통상, 원산지 기준, 공급망 협력 등 신세대 규범을 포괄하고 있어, 이미 포화된 양자 FTA 체계를 ‘업그레이드된 지역 협정’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은 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농업 강국과 양자 FTA 경험을 기반으로 민감 업종에 대한 사전 점검과 보완 대책을 마련해 CPTPP 가입 논의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

자유무역이 공격받는 시대, FTA는 단순한 관세협정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생존 전략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발 관세 불안정, 공급망 재편, 신흥 시장 성장, 자국 우선주의 등 글로벌 경제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은 FTA 개선과 CPTPP 가입 같은 질적 고도화 전략을 서둘러야 한다고 통상 전문가는 조언한다. 내수 규모가 작은 한국은 FTA를 통해 글로벌 수요를 선점해야만 성장 동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국내 산업 보호와 시장 개방의 균형을 맞춘 정교한 통상 정책이 요구된다.


용어설명
  • 1메르코수르(Mercosur)

    남미 공동 시장으로도 불리는 라틴아메리카 경제협력체. 1991년 3월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협의를 통해 설립됐으며 같은 해 11월 운영을 시작했다. 본부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있으며 정회원국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볼리비아 등 5개국. 회원국 간 무역에서 90% 품목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 2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두 나라 또는 지역 간에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체결하는 다자간 또는 양자 간 협정이다. 주로 무역, 투자, 경제적 상호작용을 증진하기 위한 여러 가지 규제를 포함하며 상품과 서비스 교역뿐만 아니라 지식재산권, 정부 조달, 경쟁 정책, 환경, 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