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산업이 첨단 기술의 중심축으로 부상하면서 인공지능(AI)이 배터리 제조 전 과정에 걸쳐 변화를 이끌고 있다. 소재 탐색→테스트→생산공정→성능 예측→수명 종료 관리 등 배터리 제조 전 주기에서 AI는 효율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강화하며 산업 전반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AI, 배터리 전 주기 걸쳐 주요 역할 담당
배터리 제조의 첫 단계는 신규 소재의 탐색과 설계다. 배터리의 성능·안전성·비용은 어떤 소재를 쓰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이 과정은 기술 경쟁의 핵심이다. 과거에는 수년이 걸리던 소재 탐색이 데이터 등에서 이상 징후나 위험 요소를 신속하게 선별하는 ‘AI 스크리닝(screening)’ 기술 덕분에 몇 주, 심지어 1시간 안에도 가능해졌다.
AI는 배터리의 핵심 소재를 탐색하고 설계하는 과정에서 가장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AI 기반 소재 설계 서비스 스타트업 에이아이오닉스(Aionics)는 수천 개의 후보 소재를 몇 초 만에 스크리닝해 잠재적 전해질을 찾아내는 세계 최초의 AI 기반 배터리 설계 플랫폼을 개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미국 퍼시픽노스웨스트국립연구소(PNNL)는 AI를 이용해 3000만 개가 넘는 소재 후보에 대해 고체 전해질1)의 잠재적 활용 가능성을 분 석하고, 그중 유망한 고 체 전해질을 합성하기도 했다. 이처럼 AI는 고속 예측 모델과 스크리닝 기술을 통해 소재 설계 시간을 단축시키며 신소재 개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AI-로보틱스 결합으로 테스트 자동화·생산 최적 AI는 테스트와 소재 분석에서도 자동화의 핵심 역할을 한다. 로보틱스 기술과 결합해 전해질 샘플이나 신소재를 빠르게 평가함으로써 실험 효율을 크게 향상시킨다. 또한, AI는 생산공정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제조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중국 CATL은 영상 기반 결함 분석(image-based defectanalysis)에 AI를 적용해 생산 라인 내 이상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고, 불량률(스크랩 비율)을 낮추며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했다. 이 같은 공정 혁신은 배터리 생산의 품질 관리 체계를 한 단계 진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AI 기반 예측으로 성능·수명·안전성 향상
소재가 후보로 선정되면, 물리·화학적 테스트를 통해 성능과 품질 안정성을 검증해야 한다. 테스트를 통과한 소재가 실제 배터리 셀 제조 공정으로 들어가면, AI는 생산 데이터 분석을 통한 공정 제어와 품질 관리를 담당한다. 이 과정은 과거엔 수작업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최근에는 AI와 로보틱스의 결합으로 가속화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AI는 배터리 공정의 자동화 수준을 높이고, 에너지 효율과 품질 안정성을 동시에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 AI는 배터리 성능과 수명을 예측하는 데도 활용된다. 셀의 고장 원인을 찾아내고 관련 패턴 예측에 AI 분석을 접목하면 배터리 보증 기간과 유지·보수 계획을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다. 운전 중에는 AI가 배터리관리시스템(BMS)2)을 최적화해 수명을 연장하고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실험 횟수를 줄이고, 대규모 실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 고성능 소재를 조기에 선별할 수 있다. AI 기반 예측 시스템은 운전 중 발생하는 전류·전압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고장 가능성을 사전에 경고하고 유지·보수를 계획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아울러 안전사고 위험이 크게 감소한다는 장점도 있다. 마지막으로 수명이 다한 배터리는 AI가 ‘세컨드라이프(Second-Life)’ 활용 경로를 탐색해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 재사용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 이처럼 AI 기술을 활용해 배터리의 전 생애 주기가 효율적으로 관리되는 새로운 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AI 주도 실험실 혁신과 공급망 최적화
최근 배터리 연구개발(R&D)에서는 ‘고속 실험(High Throughput Experimentation)’과 ‘자율 실험실(Self-Driving Lab)’이 결합된 AI 중심 실험 체계가 주목받고 있다. 고속 실험은 대량의 실험을 동시에 수행해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변수 조합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기존 연구에서 수년이 걸리던 과정을 수개월 단위로 단축시킨다. 여기에 AI와 로봇 기술이 결합된 자율 실험실이 더해지면서, 실험 설계와 데이터 분석, 결과 해석까지 인간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수행하는 ‘AI 자율 연구 체계’가 현실이 되고 있다. 연구자가 일일이 샘플을 조정하거나 장비를 세팅하던 단순 반복 작업이 알고리즘과 로보틱스에 의해 대체되면서, 과학자는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연구 설계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신소재 발굴과 테스트 주기가 기존 수년에서 수개월로 단축되며, 밀도범함수이론(DFT)과 메조스케일(mesoscale) 모델링을 통해 프로토타입 제작 전 단계에서 성능을 예측할 수 있다.
밀도범함수이론은 전자의 밀도 분포를 계산해 물질의 에너지 상태와 화학적 반응성을 예측하는 양자역학적 이론으로, 새로운 배터리 소재의 전도도, 안정성, 반응 속도를 미리 계산하는 데 활용한다. 즉, 물질을 실제 합성하기 전에 그 특성을 ‘가상 실험’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메조스케일 모델링은 소재와 셀의 미시적 구조(나노수준)와 거시적 거동(매크로 수준)을 연결해, 배터리의 내부 반응과 성능을 ‘중간 스케일’에서 예측하는 시뮬레이션 방법이다. 또한, AI 기반 공급망 최적화 모델은 원료, 정제, 활물질, 전해질, 분리막, 재활용 등 복잡한 배터리 산업 공급망의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AI는 실험 단계에서 단순한 분석 도구를 넘어 연구 자체의 구조를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데이터 표준화와 개방성, AI 확산의 관건
AI 활용 확대를 위해서는 데이터 품질 향상과 개방 확대가 필수적이다. 배터리 제조 분야의 AI 활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실험 데이터 보고의 표준화 및 통계 유의성 평가가 가능할 만큼 실험 데이터를 충분히 축적하고, 해당 데이터에 대한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 그런데 배터리 생산 효율과 불량률 관련 데이터는 기업의 영업 기밀로 분류돼 개방이 제한적이다. 또한 화학계가 다른 배터리는 공급망 구성도 완전히 달라서 산업 확장에는 높은 비용과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 같은 제약은 AI 실험 결과를 산업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병목으로 작용한다. AI는 배터리 제조의 속도와 효율, 품질을 혁신하는 핵심 동력으로, 배터리 제조의 전 주기를 혁신하는 핵심 촉매다. R&D 속도, 생산 효율, 수명 관리 등에서 혁신적인 가치를 창출하지만, 데이터 품질과 개방성이 활용의 효과를 좌우하므로 고품질 데이터 확보와 데이터 개방이 필요하다. 데이터 표준화와 공유 체계 구축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AI의 기술적 잠재력은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고품질 데이터의 확보는 배터리 산업의 AI 혁신을 지속할 결정적 조건이다.
용어설명
- 1고체 전해질
고체 상태에서 이온을 전도하는 전해질로, 양이온 전도를 나타내는 것과 음이온 전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구분된다. 고체 전해질은 리튬 이온만 통과시키는 이상적인 분리막 역할을 하며 전고체 전지는 이론적으로 더 높은 에너지밀도를 제공한다. 전고체 전지 등에서 액체 전해질을 대체해 안전성과 에너지밀도를 높이는 데 쓰인다.
- 2 배터리관리시스템 (BMS·Battery Management System)
여러 개의 배터리 셀이나 팩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전압, 전류, 온도 등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어하는 전자회로 시스템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