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외 인터뷰 Interview 니겔 코리 전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 무역정책 부국장 “한국, 디지털 무역 국제 규범 형성에 적극 참여해야”
  • 고성민 기자
  •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디지털 무역이 급성장하며 데이터 이전 및 활용을 둘러싼 주요국 규범이 복잡해지고 있다. 니겔 코리(Nigel Cory) 전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무역정책 부국장은 최근 ‘통상’과 인터뷰에서 “한국은 디지털 무역과 기술 표준화 양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세계무역기구(WTO)는 디지털 무역에 대한 광범위하고 야심 찬 새로운 규칙을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므로 한국과 다른 선진국이 협력해 디지털 무역의 새로운 규칙과 메커니즘을 설정하고, 표준을 설정하기 위해 적극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 전 부국장은 2015~2024년 ITIF에서 무역·디지털 정책 연구를 담당했다. ITIF는 미국 워싱턴 D.C. 소재 기술 정책 전문 싱크탱크다. 다음은 일문일답.

    호주 그리피스대 국제경영학, 미국 조지타운대 공공정책학 석사, 현 크로웰글로벌어드바이저 이사

    디지털 무역이 급성장하며 전통적인 무역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무역 성격을 유형의 재화에서 무형의 재화·서비스로 바꾸고 있다. 또 AI가 동력이 되면서 디지털 무역 자체의 성장도 가속하고 있다. 디지털 무역이 글로벌 상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WTO의 최신 연례 보고서는 AI와 무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 보고서는 2040년까지 AI가 무역과 국내총생산(GDP)을 크게 늘릴 것으로 전망했다. AI로 글로벌 무역이 34~37%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앞으로 무역은 점점 더 AI 기반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AI에 대한 국제 규범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다른 표준이 혁신과 시장 접근의 장벽이 된다. 일부 국가는 자국 표준을 먼저 만든 뒤, 이를 다른 나라가 인정·채택하도록 유도해 자국 AI 기업과 제품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한다. 각국이 AI 국가 전략과 법률을 마련할 때 AI 기반 무역에 새로운 비관세장벽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제 표준 마련이 무역에 미칠 영향은.

    “국제적이고 개방적이며 합의 기반의 기술 표준은 상호 운용성을 구축하고, 혁신과 시장 진입을 촉진하는 데 필수적이다. 반대로, 각국의 로컬 기술 표준은 규제 장벽을 만들어낼 수 있다. AI를 비롯한 신기술 시대에는 기술 표준이 신제품과 서비스에 관한 정의, 측정 방식, 활용 사례를 설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각국이 신기술에 대해 서로 다른 법·규제 체계를 채택하더라도 국제 기술 표준은 그 간극을 메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더 많은 국가가 신기술이 국가 경쟁력과 생산성의 핵심이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기술 표준을 자국 기업과 제품을 우대하기 위한 보호무역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중국과 유럽연합(EU)은 산업 정책적 목적에서 국제 표준보다 자국 표준을 우선 적용하는 방식을 종종 사용해 왔다. 디지털 무역과 관련해서도 미국은 데이터의 자유로운 흐름을 디지털 무역의 핵심으로 보고, 데이터 이전 제한은 예외로 간주한다. 반면 중국은 데이터의 국내 보관(데이터 현지화)을 매우 중요하게 보며, 국경 간 데이터 이동(CBDF·Cross-Border Data Flow)은 엄격히 통제해야 하는 예외로 본다.”

    국경 간 데이터 이동을 촉진하기 위한 이상적인 접근은 무엇인가.

    “데이터 현지화는 개인정보 보호, 사이버 보안 규제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국가 및 지역 경제에 광범위하고 중대한 비용을 초래한다. 국경 간 데이터 이동에 대한 이상적인 접근은 정책 입안자가 기업이 데이터를 어디에 저장·처리하든 수집한 데이터를 책임 있게 관리하도록 책임성을 부과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아울러 정책 입안자는 동맹·우방국과 협력해 개인정보 보호, 사이버 보안, 정부의 데이터 접근 같은 관련 이슈에서 법·규제의 확실성과 신뢰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

    최근의 무역협정은 글로벌 규범을 형성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라고 보나.

    “많은 무역협정이 디지털 무역 관련 조 항과 장을 포함하지만, 그 역할과 가치는 상당히 다르다. 2000년 1월부터 2023년 11월 사이에 체결·서명된 특혜무역협정(PTA) 432건 가운데, 전자상거래 및 디지털 무역과 관련된 조항을 담은 협정은 214건이다. 전용 장을 둔 협정은 122건이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1)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2)은 디지털 무역과 데이터에 관한 규범 측면에서 ‘스탠더드’로 평가 된다. 다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를 실제로 집행하는 것이다. 새 규범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CPTPP 회원국이 현행 규범을 실효성 있게 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길 바란다.”

    한국은 글로벌 디지털 무역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한국은 디지털 무역과 기술 표준화 양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WTO는 디지털 무역에 대한 광범위하고 야심 찬 새로운 규칙을 설정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므로 한국과 다른 선진국이 협력해 디지털 무역의 새로운 규칙과 메커니즘을 설정하고, 표준을 정하기 위해 적극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마련된 이니셔티브는 이후 더 많은 국가로 논의·적용이 확장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다만 한국은 DEPA 가입 등 올바른 방향의 여러 조치를 했음에도 싱가포르·호주·뉴질랜드가 추진하는 수준의 야심 찬 디지털 무역 어젠다를 자신있게 추진하며 기회를 진정으로 포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은 첨단·디지털 기술, 혁신, 무역 측면에서 많은 부분을 잘하고 있지만, 동시에 자국내에 보호주의적이고 제한적인 규정과 요건을 자주 도입하기도 한다. 다가오는 위험은 한국이 ‘AI주권’ 전략의 일환으로 보호주의적·제한적 요소를 도입하는 경우다. 이는 최고 수준의 AI 개발과 도입을 저해할 것이다. 한국은 높은 수준의 AI 채택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자원과 정책을 과감히 투입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한국은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고, AI로부터 최대한의 경제적 가치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용어설명
    • 1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12개 국가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무역과 투자, 지식재산권, 환경, 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며, 회원국 간 무역 장벽을 낮추고 경제 통합을 촉진하는 것이 목표다.

    • 2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디지털 무역, 데이터 흐름, 개인정보 보호 등 디지털 경제 관련 규제를 다루는 국제 협정으로, 주로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국가 간에 체결된 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