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미국의 관세 파고 속에서 한국 무역은 고군 분투 중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9월 말까지 수출은 5197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2% 늘었다. 반면 수입은 0.5% 줄어든 4693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무역수지는 504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다만 수출이 늘었다고 위안하기에 현실은 냉정하다. 올해 원화 가치는 달러나 유로화, 위안화 등 주요국 통화 대비 약세를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과 그 이후로도 어쩌면 한국의 무역 여건은 좋아지기보다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24년 말 기준으로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조8699억달러, 수출액은 6836억달러이니 한국의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6%를 넘는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시대에 한국에서 수출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수출이 다시 한번 한국 경제의 화두가 된 이 시기에는 반도체나 자동차, 철강 같은 대기업 중심의 수출에만 의존할 수 없다. 다양한 분야 중소기업의 제품과 기술수출도 활성화돼야 한다.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디지털 연결'에서 무역의 길을 찾아라
'초연결 지구에서 무역하라'는 수출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디지털 생태계에서 새로운 무역의 길을 찾는 방법을 제시한다. 두 저자는 직접 ‘커넥트AI’라는 디지털 무역 플랫폼을 기업의 무역 실무에 적용한 사례를 토대로 이 책을 썼다. 양송이 커넥트AI 대표이사는 실제 수출이 일어나게 하는 구조를 설계한다. 공저자인 최건식은 커넥트AI 기술 이전 전문가이자 지식재산(IP) 기반 수출 전략 설계자다. 이들은 기술 기업이 가진 특허, 디자인, 상표 등 지식재산을 적용 가능한 국가와 산업군, 수요 기업을 구체화해서 연결해 주는 기술·지식재산 기업 전용 디지털 무역 실행 모델인 T2M(Tech To Maket)을 개발했다.
둘의 한국 기술 기업의 해외 진출 실패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게 된 것이 공동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들이 만난 한국 기업은 기술력이 높았고 차별화된 제품, 보유한 특허, 시장성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지만 대부분 ‘어떻게 보이는가’를 잘 모르거나 ‘무엇으로 신뢰를 얻어야 하는지’ 등 전략적인 설계를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기술력 부족이 아니라 ‘연결’을 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이들은 “기술은 연결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책은 그래서 잠재적인 구매층과 연결하기 위한 모든 인프라의 구성 요소와 연결 방식에 집중적으로 내용을 할애한다.
제품이 아니라 관계를 수출하라
디지털 시대의 바이어는 박람회에 참석해서 상품을 직접 살펴보기도 하지만, 웹으로 검색해 보고 상품이나 기술을 평가하고 구매하기도 한다. 기업이 직접 해외시장을 조사하고 바이어를 접촉하거나 박람회에 가지 않고도 자사 기술과 상품을 웹을 통해 알릴 수 있는 시대라는 뜻이다. 바이어가 먼저 기업을 검색하고 평가하는 시대인 만큼 ‘무엇을 만드는가’ 못지않게 ‘어떻게 보이느냐’도 중요하다고 책은 강조한다. 이와 함께 무역의 본질이 물류 중심에서 ‘연결과 설계’ 중심으로 변하고 있는 만큼 “제품이 아닌 관계를 수출하라”는 주문도 덧붙인다.
디지털 무역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해서 단순히 기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책은 그보다 디지털 생태계에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기술과 콘텐츠, 신뢰 설계의 3대 요소가 더 중요하다면서 이 세 가지를 하나의 시스템처럼 연결하고 작동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술과 콘텐츠, 신뢰 설계를 시스템으로 연결해야
이제는 데이터 기반 기술을 통해 바이어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바이어가 어떤 페이지에 얼마나 머물렀는지, 콘텐츠를 팀원과 공유했는지 등 행동을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고객 관계 관리(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시스템은 과거 견적 요청 이력 등을 바탕으로 바이어에게 접근해야 할 시점 등을 분석해 알려준다. 자동화 메시지는 바이어가 머문 제품 페이지나 제안서 다운로드 행동에 맞춰 이메일, 팝업, 알림 등을 전송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기반 챗봇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바이어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공한다.
콘텐츠와 관련해서는 기업 철학, 제품 가치, 고객 후기, 데모 영상 등 제품과 기술에 대해 바이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료도 손쉽게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신뢰 설계는 기술과 콘텐츠를 조율해 바이어에게 일관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책은 중소기업이 주로 이용해 오던 수출 대행 시스템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대기업 같은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은 주로 대행 중심의 수출구조를 이용하고 있다. 바이어를 대신 찾아주거나 마케팅을 대신해 주고, 문서를 대신 작성해 주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처럼 ‘대행해 주는 수출’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디지털 무역 모델을 통해서 수출에 성공한 실제 사례도 담았다. 저자들은 한국 내 식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기업은 해외에 있는 100명의 바이어를 대상으로 이들의 전략 기반 제안서를 구성해 이메일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 결과 41%가 이메일을 열람했고 제안서는 26%가 열람했다. 이 가운데 세 명이 회신과 문의를 한 후 결국 5주째에 한 바이어와 계약 체결에 성공했다. 다른 화장품 스타트업은 300명의 바이어에게 제안서를 발송한 후 미국 유통사와 파일럿 계약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실제 박람회에 여러 차례 참가한 후에도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계약 성공률이 낮았다. 이후 제품 설명보다는 ‘브랜드의 미학’ ‘원료의 스토리’ ‘실제 고객 리뷰’ ‘감성 이미지와 라이프스타일 연계 콘텐츠’ 등 감각 중심의 메시지를 담은 제안서를 발송하고 네 건의 샘플 요청을 거쳐 미국 유통사와 계약에 성공했다.
웹상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부터 출발해야
책은 디지털 무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하려면 무역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 장한다. 보 고서와 성과 지표 중심이 아니라 이제는 실행 중심이고 실제로 계약이 성사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누구나 수출이 가능한 구조를 직접 설계·실행하도록 돕는 교육 모델을 제안한다. 이와 함께 좋은 제품과 기술을 갖고도 수출이 어려운 기업이라면 일단 자사와 제품이 웹상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부터 확인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관심 있는 구매자와 편리하고 신속하게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성공 확률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대단히 실무적인 디지털 무역 지침서다. 기술, 특허, 디자인, 상표 같은 지식재산을 향후 수출 자산으로 전환하는 방법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초연결 시대에는 ‘먼저 연결하는 자’가 성공을 쟁취한다고 한다. 예비 창업가나 브랜드 확장을 고민하는 창작자, 무역 전략이 필요한 실무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