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들어 사이버 위협이 각국 안보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고, 이에 대응 역량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됐다. 이 가운데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경상북도보다 약간 큰 면적과 최근 인구가 갓 1000만 명이 넘은 작은 나라임에도 세계 사이버 보안 시장에서 선구적인 위상을 구축해 왔다. 특히 2024년, 장기간의 무력 분쟁 중에도 이스라엘 사이버 보안 스타트업은 글로벌 투자 유치와 기술 수출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며 다시 한번 그 존재감을 확인했다.
이러한 이스라엘 사이버 보안 산업의 성장은 군사, 정부, 민간, 글로벌 지향성, 실전 경험, 투자 생태계 등 여러 요소가 결합해 이뤄낸 결과다. 특히 이스라엘 방위군(IDF) ‘8200 부대’1)는 세계적인 사이버 인재 양성 기관이다. 이 부대 출신으로 제대 후 스타트업 창업과 민간 산업 진출을 통해 이스라엘 사이버 보안 산업의 기술적 토대를 마련한 이들이 많다.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발전시킨 이들의 기술력은 곧바로 상업화돼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정부도 사이버 보안을 국가 핵심 전략으로 삼아, 2010년대 초부터 국가 차원의 사이버 전략을 수립하고, 남부 지역의 가장 큰 도시인 베르셰바에 ‘사이버스파크(CyberSpark)’ 같은 혁신 단지를 조성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군·정부·학계·민간의 협력 체계가 형성돼 기술 개발과 상용화가 촉진됐다. 작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스라엘 기업은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미국, 유럽, 아시아 등으로 진출해왔다. 이러한 글로벌 지향성은 이스라엘 사이버 보안 기업의 사업 모델과 기술 전략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끊임없는 군사적 긴장과 사이버 위협에 노출된 환경 덕분에, 실전에서 검증된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활발한 첨단 기술 벤처 생태계를 갖추고 있어, 글로벌 IT 기업과 벤처캐피털(VC)의 꾸준한 관심도 받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팰로앨토 네트웍스 등 주요 글로벌 기업이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을 흡수하고 있으며, 이는 산업 생태계 전반에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 글로벌 기술혁신지로 떠올라
이스라엘은 미국과 함께 세계 사이버 보안 산업을 이끄는 대표적인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이스라엘 사이버 보안 기업은 미국 민간 사이버 보안 투자금의 40% 이상을 유치하며 글로벌 투자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보였다. 세계 10대 사이버 보안 기업 중 7곳이 이스라엘에 연구개발(R&D)센터를 두고 있을 정도로, 이스라엘은 글로벌 기술혁신의 중심지로 평가받는다. 2024년 이스라엘 사이버 보안 기업의 투자 유치액은 38억달러로, 이는 이스라엘 테크 분야 투자 중 36%에 해당한다. 단일 분야로 가장 높은 비중이다.
미국 벤처캐피털인 노터블 캐피털(Notable Capital)은 올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사이버 보안 스타트업 30곳을 선정했는데, 이 중 11곳이 이스라엘 기업이었다. 이번에 선정된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인공지능(AI) 도입 가속화, 비인간 신원(non-human identity) 관리, 인증·접근 제어, 데이터 및 클라우드 보안 등 다양한 혁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AI와 신원 관리 융합, 비인간 신원 보호, 인증 및 접근 제어 외주화 등이 주요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최근 사이버 공격이 AI를 활용해 더 정교해지고 있으며, 데이터와 클라우드 시스템의 취약점을 노리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증, 세션 관리, 계정 탈취 방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 솔루션이 필요해진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 사이버 보안 산업은 2024년 장기화 한 무력 분쟁 등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40억달러에 가까운 투자를 유치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3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이스라엘 클라우드 보안 전문 기업 위즈(Wiz)를 32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구글 역사상 최대 규모 인수가 될 전망이다. 위즈 인수를 통해 구글 클라우드는 위험 우선순위 지정 및 규정 준수 자동화 같은 고급 보안 기능을 통합할 수 있게 돼, 클라우드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길게 보고 인재까지 키우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정부는 사이버 보안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혁신청’을 통해 정부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으며, 글로벌 기술 기업과 전략적 투자 파트너십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특히 사이버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장기적으로 민간 산업과 국가 안보에 필요한 인적 기반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사이버 보안 전략은 한국에 여러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양국은 이미 16개의 공동 R&D 과제를 수행하며 협력을 이어 가고 있으며, 특히 AI와 클라우드 보안 같은 신기술 분야에서 협업을 확대하며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은 이스라엘의 군·산·학 연계 방식을 참고해 실전형 사이버 보안 인재를 육성하고, 민관 협력을 기반으로 한 혁신 생태계 조성과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기술 개발, 생태계 조성, 국제적 협력, 인재 양성을 유기적으로 연계함으로써, 한국도 초국경적 사이버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역량을 갖춘 사이버 보안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할 시점이다.
용어설명
- 18200 부대
이스라엘 방위군(IDF) 산하 신호 정보, 사이버전 전문 정보 부대. 첨단 정보 수집, 암호 해독, 사이버 공격·방어를 담당한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태계 인재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