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FTA 법률 전문가가 보는 통상 한국에 기회인 동시에 제약인 美 AI 행동 계획 미국 주도 새 질서…협력·자율 추구하는 다층 전략 필요

2025년 7월 23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이하 트럼프 정부)는 ‘미국 인공지능(AI) 행동 계획(Winning the Race: America’s AI Action Plan)’을 발표했다. 약 30쪽에 달하는 이번 행동 계획은 AI를 단순한 첨단 기술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경제·외교 전반을 종합하는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고, 미국의 글로벌 AI 거버넌스(governance·지배구조)규칙 제정자 위상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행동 계획은 △AI 혁신 가속화 △미국형 AI 인프라 구축 △국제 AI 외교 및 안보 선도 등 세축을 중심으로 약 90개 이상의 권고를 제시한다.

이는 전임 정부 시절 위험관리 중심의 AI 규제에서 벗어나, 규제 완화를 통해 신속한 AI 개발, 글로벌 영향력 확대라는 방향 전환을 드러낸다. 규제 완화와 혁신 촉진을 통해 미국의 AI 관련 리더십을 확보하고, AI 생태계를 성장시키는 것(AI 혁신 가속화)이 행동 계획의 첫 번째 축이다. 연방거래위원회(FTC)를 포함한 규제 기관의 과거 집행 조치를 재검토해 기업 활동을 제약하지 않도록 하고, 연방 정부의 AI 조달 원칙도 ‘이념적 편향 배제’라는 새로운 기준을 정립한다. 또한 다양성·평등성·포용성(DEI·Diversity, Equity, Inclusion) 같은 이념적 가치를 모델 설계에서 제외한 건 미국식 AI의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 오픈 소스와 오픈 웨이트 모델을 장려하며, 학계와 스타트업이 대규모 연산 자원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부분도 눈에 띈다. 여기에 ‘새로운 국가 AI 연구·개발 전략 계획(National AI Research & Development Strategic Plan)’1)을 발표, 연방 차원의 AI 투자 방향 제시를 권고하고, 이론적·계산적·실험적 AI 연구에 연방 정부가 적극 투자해 변혁적 AI 기술 개발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 번째 축은 미국형 AI 인프라 구축이다. 데이터 센터, 반도체 제조 시설, 전력망을 국가 전략자산으로 정의하고,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며, 연방 소유지를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환경 보호청(EPA)에 ‘청정대기법(Clean Air Act)’ ‘수질 보전법(Clean Water Act)’ ‘종합환경대응·보상·책임법(Comprehensive Environmental Response, Compensation and Liability Act) 등 새 규정을 마련하거나 개정해 인허가를 신속히 처리하도록 했고, 천연가스·석탄·원자력발전을 포함한 전력 공급 확대로 에너지 집약적인 데이터센터 운용을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미 국토안보부(USDHS)를 중심으로 AI 정보 공유 및 대응 센터를 설립, 사이버 보안과 AI 사고 대응 역량을 강화한다. 미 국방부의 ‘책임 있는 AI 프레임워크(Responsible AI Framework)’2)와 연계해 ‘보안 설계 기반 AI’ 개발 촉진 구상도 담겼다.

세 번째 축은 AI 외교 및 안보 선도다. 미국은 동맹국과 우방국을 대상으로 미국산 AI의 풀스택 기술 체계(하드웨어, AI 모델, 애플리케이션 등)를 패키지로 수출하고, 반도체와 AI 연산 자원에 대한 수출 통제 집행력을 강화, 적성국의 접근을 차단할 계획이다. 또 상무부 주도로 AI 수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동맹국 제안 중 우선순위 패키지를 선정해 재정·외교적 지원에도 집중한다. 국제 표준과 규범도 미국 주도하에 정립,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 국제기구 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한다. 

프런티어 AI(Frontier AI)3)에 내재한 불확실성과 국가 안보 위협을 평가하는 체계를 법제화한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정부가 AI 개발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미국 내 AI 산업 규제를 완화한다는 목표를 일관되게 표명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행동 계획 발표는 놀랄 일이 아니다. 다만 이번 행동 계획이 트럼프 정부의 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가장 구체적 조치라는 점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AI 행동 계획은 한국에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제시한다. 기회 측면을 보면, 한국에 경쟁력이 있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공정,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미국이 의료, 국방, 에너지 등 전략산업에 AI 적용을 확대한다고 선언한 만큼 한국의 스마트 제조, 원자력발전소 건설 역량이 새로운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미국과 함께 AI 표준 형성 과정에 적극 참여한다면 제도적 정합성을 기반으로 선진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물론 극복해야 할 도전도 있다. 무엇보다 미국식 규제와 표준이 고착화하면 한국 상황에 맞는 정책을 설계할 자율성이 줄어들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연구 안보와 수출 통제 강화는 한국의 기초연구, 고등교육, 공동 연구까지 포함한 영역에 새로운 제약이 될 수 있다. 미국은 동맹이라 할지라도 다른 나라와 동일 수준의 기술 통제를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반할 경우 2차 관세 부과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한국 연구자나 기업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더욱 엄격한 연구 보안 체계 구축을 요구하는 압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전략적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단기적으로는 한미 간 AI 협력 과정에서 반도체·에너지 인프라 등 한국에 비교 우위가 있는 분야에서 실질 협력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식 AI 표준을 수용하되, 상호 인정(MRA) 제도를 활용해 한국의 제도적 자율성을 유지해야 하며, 국산 데이터세트와 특화 알고리즘, 운영·보안 모드 등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역량을 강화해, 하드웨어 중심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다자 협력이 가능한 영역에서는 자율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주요 7개국(G7),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미·일 협력체 같은 다자 플랫폼을 통해 비(非)민감 기술 중심 의제를 선도적으로 제시해 실질적 AI 표준 마련에 기여할 수 있다. 결국 미국의 AI 행동 계획은 한국에 기회인 동시에 제약인 양날의 검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에 수동적으로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선택적 협력과 자율성 확보를 동시에 추구하는 다층적 전략이다. 이미 반도체와 하드웨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강점이 있는 한국은 강점을 토대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영역을 강화해 균형 잡힌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다자협력 틀을 활용해 국제 표준화 논의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경우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서도 독자적 전략 공간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용어설명
  • 1새로운 국가 AI 연구·개발 전략 계획 (National AI Research & Development Strategic Plan)

    미국 정부가 2016년 처음 발표하고, 2019년, 2023년 업데이트한 계획. AI 연구개발(R&D) 방향과 우선순위를 담은 종합 전략 문서다. 이 계획은 AI 분야에서 미국 리더십을 유지하고, AI 기술을 국가 안보, 경제성장, 공공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한다.

  • 2책임 있는 AI 프레임워크 (Responsible AI Framework)

    군사 분야에서 AI를 윤리적이고, 안전하게 개발해 활용하기 위한 지침. AI 기술의 책임성, 형평성, 추적성, 신뢰성, 제어 가능성을 보장하는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AI의 잠재적 위험을 관리하고, 기술이 군사적 목적으로 오용되지 않도록 한다.

  • 3프런티어 AI (Frontier AI)

    현재 가장 강력하고,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AI 모델이다. 최고 수준의 성능을 자랑하며,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한 초대규모 모델이다. 또 언어, 이미지, 코딩 등 여러 분야 작업을 수행하는 다목적 활용 능력이 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거나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빠질 위험이 있어 잠재적 위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