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외국인직접투자(FDI)가 탈세계화와 경제 저성장 등으로 둔화하는 가운데 미국으로 향하는 투자는 오히려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다. 국제금융센터(KCIF)가 분석한 대미 FDI 동향을 보면, 지난해 미국에 대한 FDI는 2923억달러로 전년보다 소폭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전 세계 FDI가 둔화한 점을 감안하면 대미 FDI 비중은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대유럽∙대중국 FDI유입은 둔화됐다. 미국의 동맹국에 본사를 둔 기업은 대미 투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반면, 중국 기업은 동남아 지역 등에 대한 투자를 더 확대하면서 글로벌 경제 분절화 현상은 더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FDI 둔화…미국도 1분기는 주춤
미·중 갈등 심화, 공급망 분절화 등은 FDI 둔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이다. 지난 1분기 대미 FDI는 전년 동기 대비 급감했는데,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 관련 불확실성 증가로 인해 기업의 투자 결정이 지연된 탓이다. 실제로 2021~2022년 연평균 3719억달러였던 대미 FDI는 고금리 여파로 2023~2024년 연평균 2949억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올해도 1분기에는 528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하면서 주춤했다. 반면 미국 내 신규 생산 시설 건설을 의미하는 ‘그린필드 투자’ 발표액은 2024년 2450억달 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 세계 FDI에서 대미 FDI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FDI는 2021년 1조7000억달러에서 2022년 1조4000억달러, 2023~2024년 1조5000억달러로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대미 FDI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3.9%에서 2021~2024년 평균 20.1%로 증가했다. 반면 중국으로 FDI 유입은 2023년 –17.7%, 2024년 –25.4%로 급감했다.
트럼프 2기 정부, ‘관세 회피형’ FDI 유도…글로벌 투자 ‘분절화’ 가속
최근 대미 FDI의 특징은 ‘분절화(fragmentation)’다. 트럼프 1기 정부 이후 중국과 홍콩의 대미 투자는 많 이 감소한 반 면, 독일과 네덜란드, 캐나다, 일본 등 미국의 우 방국 투 자는 금 액과 비중이 모두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분 절화 추세는 미국 기업의 해외투자에서도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1)과 ‘니어쇼어링(nearshoring)’형태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미국 우선 투자 정책(America First Investment Policy)’ 기조하에 동맹국의 대미 투자는 용이하게 하고, 중국 등 적대국으로부터 투자는 엄격히 규제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미국 재무부는 동맹국이 투자를 신속하게 집행하도록 패스트트랙을 개발중이다. 반면 중국에 대한 투자 제한 범위는 헬스케어와 농업, 에너지 등으로 확대하고 그린필드 투자에 대한 외국인 투자심의위원회(CFIUS) 심사 권한도 강화할 예정이다.
트럼프 정부는 또 ‘관세 회피 투자(Tariff-Jumping FDI)’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고율 관세를 피하고자 해외 기업이 미국에 직접 공장과 지점을 설립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백악관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8월 15일까지 외국 기업이 발표한 대미 자본 지출 규모는 1조100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투자 유치 의지를 보여준다. 미국의 FDI 유치 전략은 정권에 따라 달랐다. 오바마 정부는 다자주의를 지지하며 다양한 무역·투자 협정을 체결했다.
바이든 정부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동맹 기반의 전략적 경쟁을 강조했다. 초당적 인프라법, 반도체법(CHIPS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IRA)2) 등 대규모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통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산업에 대한 그린필드 투자를 적극 유도했다. 그 결과, 바이든 임기 동안 연평균 FDI 유입액은 3334억달러로 트럼프 1기 정부 시절보다 25% 증가했다.
반면 트럼프 1기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 시기 연평균 FDI 유입액은 직전 8개 연도 대비 18% 감소했으며, 특히 중국의 대미FDI 유입액은 70%나 급감했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투자를 엄격히 심사했기 때문이다.

대규모 투자 유입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경제 분절화 가속화
단기적으로 트럼프 정부의 강한 투자 요구와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대미 FDI 유입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기대하는 연간 1조 달러 규모의 폭발적 투자 급증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작다. 실제로 발표된 그린필드 프로젝트와 집행 규모 간 괴리가 클 수 있으며, 고율 관세 지속 여부에 따라 기업 투자 결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경제의 추세적 둔화와 탈세계화 기조로 인해 글로벌 FDI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2018년 이후 1.5% 안팎에 머물며 정체가 지속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여건 속에서도 글로벌 FDI 내 미국 비중은 증가할 수 있다. 동맹국 기업이 미국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혁신 기술과 핵심 인재 확보가 용이한 대미 투자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일 전망이다. 미국 조지타운대의 ‘안보 및 유망 기술 센터(CSET)’에 따르면, 2014~2023년 영국과 캐나다 등 외국 기업은 271개 미국 인공지능(AI) 분야 기업을 인수했고, 같은 기간 미국 기업은 503개의 AI 관련 해외기업을 인수했다.
반면, 중국 기업은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와 투자 제재를 피해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지역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글로벌 경제 분절화는 가속화할 전망이다. 실제로 동남아 4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에 대한 중국의 연평균 FDI는 지난 10년간 네 배 급증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의 전략적 지원에 힘입어 이들 국가가 세계무역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고, 중국 다국적기업이 그 중심에서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 잡는 구조적 변화까지도 전망한다.

용어설명
- 1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친구(friend)’와 ‘생산 시설’을 구축한다는 의미의 ‘쇼어링(shoring)’을 합친 용어로, 신뢰할 수 있고 목적을 공유하는 국가 간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의미한다. 이는 동맹국에 생산 시설을 구축하는 얼라이드쇼어링(alliedshoring)과 같은 맥락이다. 예컨대, 미국에서 생산시설을 운용하기 어려운 기업이 우방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것이다.
- 2인플레이션 감축법(IRA)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줄이기 위해 3690억달러를 투자하고 부자 증세 등으로 투자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법안으로, 2022년 8월 발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