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9월에 미국 무역 적자가 연간 기준으로 1500억달러에 달하자, 뉴욕타임스(NYT)에 광고를 싣고 미국의 외교·통상 정책을 비판한 사업가가 있었다. 그가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의 관세 위협은 미국과 경쟁하는 패권 국가로 떠오른 중국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김성재 교수의 ‘관세 이야기’는 트럼프의 관세에 대한 집착 배경이 궁금한 사람에게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책이다.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우선 무역과 환율, 자유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그리고 관세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은 미국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함께했던 관세의 역사에 대한 기술이다. 이 책은 길지 않은 미국 역사를 통틀어 진행된 경제정책의 명암을 관세에 초점을 맞춰 들여다보고 있다.
미국 역사에 숨겨진 관세전쟁
저자는 보스턴 티파티 사건으로 촉발된 미국의 독립 전쟁도 결국 관세전쟁이라고 주장한다. 보스턴 티파티는 영국이 차 판매 시장을 독점하고 미국에 대한 과세권을 유지하려고 1773년 차조례(Tea Act)를 제정한 횡포에 맞서 미국 시민이 영국 배에 올라 수백 개의 영국산 차 상자를 바다에 내던진 사건이다. 이후 식민지 미국의 13개 주가 영국에 ‘대표 없는 과세’ 철회와 식민지에 대한 공평한 처우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보냈으나 영국이 이를 무시하고 더 많은 영국군을 미국에 보내자, 미국인이 폭발, 식민지 전쟁이 본격 시작했다. 독립 후 미국의 연방 정부는 수입품에 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때는 아직 소득세가 도입되기 전으로, 관세는 국내 산업 보호보다는 연방 정부의 예산 지출을 충당하는 유일한 수입원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독립 전쟁뿐 아니라 남북전쟁 역시 관세에서 시작됐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하고 있다. 역사책은 19세기 중반 생산의 중심인 미국 북부 공업지대 임금노동자는 남부 농업지대에 불만이 높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남부에서 싼 노예노동으로 수확한 농산물이 북부의 소규모 농업을 파괴하고 임금 노동시장을 왜곡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북부 산업은 남부의 면화를 사서 방적하고 다시 남부와 서부에 공산품을 파는 것인데 노예제사회에서는 소수 플랜테이션 농장주 외에는 소비자층이 얇았다.
자유농민과 임금노동자가 늘어야 내수 시장이 커진다고 믿는 북부 자본가들이 노예제를 반대한 이유다. 즉 남북 간 노예제도 존치에 대한 극단적 이해관계 대립이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다. 저자는 여기서 관세에 좀 더 초점을 두고, 남북전쟁이 관세전쟁의 확대판이었다고 풀이하고 있다. 철강과 섬유·기계 산업 등을 갖고 있던 북부의 산업 지대는 산업혁명으로 앞선 영국 등 유럽 수입품으로부터 자국 상품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가 필요했다. 반면 남부와 서부 농업지대는 유럽에서 농기구 등을 수입하고 농산물을 수출해야 하기에, 관세에 반대했다. 남북전쟁은 1857년 금융 위기로 북부 공업지대는 보호책과 지원이 필요했음에도 남부가 반대해 북부 공업지대와 남부 농업지대 간 이해관계 대립이 극명해진 가운데 벌어진 관세 내전이었다는 해석이다.
트럼프 관세정책, 역사적 반복인가
관세 부과는 국내 제조업을 보호하고 세수를 늘려 국가 재정에 도움이 되는 효과도 있지만,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국내 소비자에게는 부담이 된다. 기업에도 긍정적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시적으로는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하고 장기적으로는 ‘물가 상승→소비 감소→생산 위축→실업 증가’로 이어지는 파급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교역 상대국의 보복관세가 이어지면, 글로벌 무역 침체와 경기 침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같은 대표적인 사례가 1929년의 세계 대공황이었다. 미국 경제가 호황이던 1928년 말 대선에서 공화당의 허버트 후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과도한 투기 붐으로 2년 사이 100% 상승한 과열된 증시는 1929년 10월 24일 다우 지수가 하루 만에 11% 폭락하는 ‘검은 목요일’ 사태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20% 더 하락했다. 주가가 폭락하자 가계는 소비를 줄였고, 기업은 투자 계획을 취소했다. 1930년 중부 곡창지대에 극심한 가뭄까지 겹쳐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다. 이때 후버 정부는 경기 침체에 적극 대응하기보다 1930년 ‘후버 관세’라고도 불리는 스무트 홀리 관세법1)에 서명해, 많은 품목의 관세율을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인 약 60%까지 올렸다. 그러자 미국의 무역 상대국도 보복관세를 부과했고 미국 수출은 60% 줄었다. 전 세계 교역은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결국 후버 관세 부과 후 대공황은 전 세계로 확산됐다. 대부분 나라가 극심한 불황에 시달렸다. 견디다 못한 독일은 나치를 지지했고, 이탈리아는 파시스트를 지지하고, 일본은 극우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1930년대 대공황의 예에서 보듯 관세는 한 나라에서는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지만, 잘못 쓰면 위험한 무기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준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또 미국 역사에서 관세와 관련한 정책 등은 전통적으로 의회가 주도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도 다시 일깨워 준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상호 관세를 발동한 데 대해 미국의 국제무역법원과 항소법원은 연이어 대통령의 상호 관세 부과를 적절하지 않은 절차라며 중단을 명령했다. 법률 판단의 근거에는 관세는 전통적으로 미국에서 의회 권한에 속해 왔다는 시각이 반영돼 있다. 1930년대에 그랬듯이 일본에서도, 유럽 각국에서도 극우 세력이 대중의 지지를 넓혀가고 있다. 미국은 약 100년 만에 가장 높은 관세 부과에 나섰으나 슈퍼파워로 보복관세라는 반격을 틀어막고 있다.
저자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이해하기 위해 트럼프의 책사로 불리는 스티븐 미란의 ‘국제 교역 시스템의 재구축에 관한 사용자 지침’이라는 논문에도 주목한다. 미란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공석이 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신임 이사로 9월에 상원 인준을 받았다. 미란의 이 논문은 대미 무역 흑자국에는 좋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이 1985년 일본의 대미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엔화 강세를 유도한 ‘플라자 합의’를 체결한 것처럼 이번에는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무역 상대국과 ‘마러라고 합의’를 체결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마러라고 합의는 거대한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역 상대국에 사실상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미국의 초장기 국채를 강매하자는 제안을 포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트럼프를 상대할 때는 기분을 맞춰주며 양보할 태세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궁극적인 해법은 대만 TSMC나 미국 엔비디아처럼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 기술 우위 확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중국이 연봉의 몇 배를 제시하며 기술 인력을 회유할 때 한국 기업도 기술 인재에게 더 높은 보상과 비전이 명확히 그려지는 미래를 제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번 트럼프의 관세정책 종착점이 어디로 향할지 아직은 예상하기 어렵다. 세계무역의 발전 방향을 거스르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과연 5년 후, 10년 후 미국 경제와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남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용어설명
- 1스무트 홀리 관세법
1929년 말 대공황으로 경기 침체가 심각해지자, 당시 대통령이던 허버트 후버가 1930년 미국 의회가 발의한 스무트 홀리 관세법에 서명했다. 유럽과 세계 각국에서 들어오는 2만여개 이상의 품목에 대해 평균관세율을 47~59% 올렸다.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관세율이었다. 관세율이 높아져 사실상 미국에 대한 수출이 어려워지자, 유럽 국가도 등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