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트렌드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변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기업뿐 아니라,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소재·소프트웨어·지식재산(IP)·공급 기업으로 구성된다. 이 공급망은 다양한 소재·부품·장비가 투입돼 대규모 설비를 활용한 생산으로 이어지고, 이렇게 생산된 반도체는 정보기술(IT)·가전·자동차·에너지 등 다수의 수요 산업에 공급된다. 

국가별 분업과 반도체 가치 사슬 확립 

반도체 산업은 규모가 커지면서 국가별·기업별 역할이 세분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즉 가치 사슬(Value Chain)이 형성됐다. 1996년 1차, 2015년 2차로 체결된 ITA(정보기술협정)1)에 따라 반도체 및 반도체 소프트웨어(SW), 전용 장비의 무관세가 확대되면서 글로벌 반도체 분업화는 더 촉진됐다. 국가별로 보면, 반도체 산업은 각국의 특성에 맞게 발전해 왔다. 설계는 미국이 주도했고, 생산은 대만과 한국이 중심이 되었으며, 조립·후공정은 중국이 담당했다. 또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는 일본과 미국이 주도했다. 이처럼 단계별·국가별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면서, 효율성과 경제성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형성된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미국이 약 56%를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은 2013년 이후 줄곧 점유율 2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2024년 기준 점유율(최종 제품 기준)은 18.5%를 기록했다. 메모리 반 도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65.6%의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HBM(고대역폭 메모리)2) 등 고부가가치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도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CXMT, YMTC 등 중국계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범용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반면, 제조 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반도체 제조 장비 분야에서는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상위 50개 기업 기준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점유율은 2.4%에 불과하다. 또한 반도체 제조 장비 산업에서도 NAURA, AMEC 같은 중국 기업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는 미국과 대만이 각각 설계와 제조 부문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한국은 이 분야에서 낮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선단 공정의 기술 경쟁력이 있으며, 설계 분야에서도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과제

종합적으로 보면, 한국은 제조 공정(소자 대기업) 역량은 우수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기반 기술(소부장과 설계) 경쟁력은 미흡하다. 따라서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는 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패키징 등 반도체 제조 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생산능력 향상이 필요하다. 동시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분야인 팹리스(설계)와 소부장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종합적 지원책 마련이 요구된다. 미세 공정의 한계에 다다르면서, 선단 공정 개발 비용과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반도체 팹(fab)3) 건설 비용, 첨단 반도체 칩 설계 비용이 기존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투자 리스크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막대한 투자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주요 기업은 반도체 보조금을 활용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생존 전쟁에 돌입하고 있다. 반도체는 제품의 수명 주기(life cycle)가 짧고 기술 개발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 적기에 제품을 개발·판매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세계 반도체 시장은 일정한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이 있어, 시장에 가장 먼저 그리고 최적의 시기에 진입하는 것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반도체는 AI, 로봇 등 첨단 기술 분야의 핵심 기반으로, 미래의 경제·군사 패권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은 첨단 기술을 육성하고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통해 미래 국익을 좌우할 반도체 기술 주권을 확보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반도체는 단순한 산업을 넘어 각국의 전략 자산으로 급부상했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수요 급변은 공급망 교란과 분업화 문제를 일으켰고, 이는 국가 안보 및 산업 생태계에 큰 위협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는 생산성 기준인 민수산업이 아니라 수급을 기준으로 하는 ‘안보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는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역량 강화를 위해, 국가 차원의 산업 정책 방향을 재정비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주요국의 지속적인 투자로 반도체 제조 역량을 추격할 경우, 전략적 레버리지 상실과 소부장 구매 협상력 약화로 한국의 경쟁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 선단 공정 기술 및 생산시설에 대한 지속 투자가 각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역량을 자국화할 경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내에서 전략적 레버리지가 상실될 수 있다. 기존의 비용 효율 중심 글로벌 분업 체계가 경제 안보 중심의 분절화·진영화로 재편되면서, 점차 칩메이커의 소부장 구매 협상력도 약화할 전망이다.

미국 반도체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첨단 반도체 제조 부문에서 미국의 점유율은 높아지는 반면, 한국의 점유율은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31%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로직(logic) 분야 첨단 공정 제조 점유율은 2032년 9%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미국 로직 분야의 첨단 공정 생산 점유율은 현재 8%에서 2032년 14%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한국은 첨단 시스템 반도체 제조분야에서 대만과 함께 세계시장을 주도해왔다. 만약 한국 내 첨단 반도체 제조 시설의 축소가 현실화한다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급격히 쇠퇴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국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국내 첨단 반도체 팹 건설을 적극 추진 중이다. 향후에는 반도체 제조 경쟁력에 대한 글로벌 경쟁이 격화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민관 협력을 통해 반도체 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지원, 인력 양성, 통상 및 국제 협력 등을 적극 추진하며 대응해야 한다. 아울러 국산 AI 반도체 개발과 관련 팹리스 기업, 소부장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용어설명
  • 1ITA(정보기술협정)

    세계무역기구(WTO)회원국끼리 반도체와 통신 장비, 컴퓨터 등 주요 정보통신기술 제품에 관세를 없애는 협정이다. 영문 표기는
    ‘Information Technology Agreement’다. ITA는 첨단기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1996년 싱가포르 WTO각료회의에서 체결됐다.

  • 2HBM(고대역폭 메모리)

    HBM은 High Bandwidth Memory 의 약자로, 고대역폭 메모리를 의미한다. 기존 D램(DRAM)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와 대역폭이 뛰어나며, AI, 고성능 컴퓨팅, 그래픽 처리 등에 필수적인 반도체 기술이다.

  • 3팹(fab)

    반도체 소자 제조 시설을 의미한다. ‘Fabrication’의 약자로, 반도체 제조 공정을 수행하는 공간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