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환경·인권·통상·투자 아우르는 법질서 형성의 새 분수령 될 것

2025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기후변화 관련 국가 의무에 대한 권고적 의견(이하 기후변화 권고적 의견)’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권고적 의견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하지만, 국제법 해석의 권위 있는 지침으로 인정하는 의견을 의미한다. ICJ가 이번에 채택한 기후변화 권고적 의견은 기후 위기를 정치적 합의나 정책적 지향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조약법과 국제관습법, ‘국가책임초안(ILC Articles on State Responsibility)’의 규범적 언어로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먼저 ICJ는 파리기후변화협약(Paris Agreement·이하 파리협정)1) 제2조 제1항 ⒜에 규정된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한다’는 목표를 국제법상 구속력이 있는 법적 기준으로 확인했다. 기존 ‘정치적 합의’로 인식한 파리협정의 규범을 실질적 법적의무로 전환한 것이다. 특히 ICJ는 온실가스 배출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으면서도, 화석연료의 생산·소비, 신규 탐사 허가, 보조금 지급, 부적절한 규제와 같이 기후 피해 방지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행위는 국제 위법행위에 해당(기후변화 권고적 의견 544항)한다고 했다. 이는 국가책임 초안 제2조의 ‘국제 의무의 위반과 국가 귀속’을 기후변화 맥락에서 새로 적용한 것으로, ICJ는 결과보다 행위(conduct) 의무를 강조하면서, 그에 따른 엄격한 수준의 주의의무(due diligence)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ICJ는 이번 기후변화 권고적 의견에서 국가책임 범위를 기존의 국가기관 행위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민간 행위자의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 국가가 규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이는 국제 위법행위로 귀결될 수 있다(기후변화 권고적 의견 427항)고 봤다. 대부분 민간 기업을 통해 이뤄지는 화석연료 생산이나 탐사 등의 규제를 국가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ICJ는 파리협정 국가별 기여 방안(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2)의 법적 의무에 대해서도 명확히 했다. 협정에 따르면, 각 당 사국은 NDC를 수립하고(preparation), 제출하며(communication), 유지(maintenance)하는 결과 의무(obligation of result)가 있다. ICJ는 이를 잘 따르지 않으면, 조약 위반에 해당한다고 봤다. 특히 5년 주기로 새 NDC를 제출하고, 등록하는 등의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협정상 의무 위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각 당사국이 수립하는 NDC는 형식적 제출에 그치지 않고, 목표 달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충분한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때 각 나라는 가능한 한 최고 수준의 ‘목표(ambition)’를 반영해야 하므로 NDC는 국가가 원하는 수준에서 단순하게 설정될 수 없고, 국제사회가 합의한 기후 목표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강화된 수준의 목표도 요구했다. 나아가 당사국은 NDC 이행을 위한 국내적 감축 조치(mitigation measures)를 실제로 추진할 법적 의무를 진다. 이는 목표 달성 자체에 대한 보장은 아니지만, 각국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실질적인 감축 정책을 실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ICJ는 기후변화 대응에 대해 특정국 간 양자적 권리·의무 관계를 넘어, 국제사회 전체에 부과되는 대세적 의무로 규정(기후변화 권고적 의견 432항)했다. 기후변화의 직접 피해국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의 기후 의무 위반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게 ICJ의 해석이다. 이는 ‘바르셀로나 트랙션 사건(ICJ, 1970)’3)에서 확립된 대세적 의무를 기후 위기 맥락으로 ICJ가 확장한 것이다. ICJ는 기후 위기 대응 의무를 인권 보호 의무와도 결합했다. 한 국가가 기후 위기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건 단순히 환경 문제에 대한 태만이 아니라, 국제인권규약(ICCPR) 제6조(생명권 보장), 제12조(건강권 보장)에 따른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해 인권침해 사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유럽인권재판소(ECtHR)의 ‘스위스 기후시니어여성협회 대 스위스 사건(Verein KlimaSeniorinnen Schweiz v. Switzerland)’에 기인한다. ECtHR은 스위스 정부가 기후변화 국면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할 적극적 의무를 다하지 않아 유럽인권협약(ECHR) 제2조(생명권), 제8조(사생활·가정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봤다. 또 미주인권재판소(IACtHR)가 권고적 의견으로 냈던 ‘안전한 기후 시스템을 인권 실현의 전제 조건으로 인정’한 것과도 일관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기후 위기 대응 의무는 단순 환경보호가 아닌, 인권 보장의 근본적 수단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의미다.
향후 ICJ의 기후변화 권고적 의견은 다양한 법적 분야에 적극적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유엔 총회는 기후변화 권고적 의견에 기초한 후속 결의를 채택할 수 있고, 각국 법원과 국제중재재판소(PCA)는 기후변화 권고적 의견을 해석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각 나라가 제출하는 DC는 법적 성격이 강화돼, NDC를 불충분하게 설정하거나, 제출하지 않는 행위는 국제 위법행위로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파리협정 제4조 제2항이 규정하는 국가의 NDC 유지·갱신 의무와 직결되며, 향후 국제분쟁에서 강력한 기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ICJ는 기후변화 권고적 의견은 해당 사안에 대해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법 규범을 열거한 것에 불과하다. 상황에 따라 타당성을 가지는 국제법 규범을 배제한 것은 아니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특히 국제투자법, 국제경제법의 경우 기후변화와 밀접하게 연계돼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 대응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역 제한 조치, 녹색 보조금, 탄소 국경 조정 조치 등은 쟁점화 가능성이 크다. 또 기존 무역 규범과 합치 여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 자원 개발, 인프라 구축 등 기후변화 대응 투자와 관련한 분쟁은 국제투자협정(IIAs) 및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ISDS)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ICJ 기후변화 권고적 의견에는 11개의 별개 의견도 함께 제시됐다. 이 가운데 미국 클리블랜드 판사의 별개 의견은 투자와 기후변화와 관계를 명시적으로 다룬다. 이 별개 의견은 ISDS 제도와 관련, 최근 화석연료 기업이 면허 취소나 규제 강화에 대해 ISDS를 제기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가운데, 국가의 기후 의무 이행을 투자자 보호보다 상위의 국제법적 가치로 여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해당 별개 의견은 ‘에너지헌장조약(ECT)’ 등 다양한 국제투자협정의 개정 또는 해석론에 대한 논쟁을 촉발할 것으로 여겨진다.
ICJ의 기후변화 권고적 의견은 기후 위기를 다층적 국제법 영역과 접목해 환경·인권·통상 및 투자를 아우르는 새로운 법질서 형성의 분수령이 되고 있으며, 향후 국제분쟁의 해결뿐 아니라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 전반에서 기후 의무가 우선 고려 요소로 작동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용어설명
- 1파리기후변화협약 (Paris Agreement)
2015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 21)에서 채택된 국제 기후 변화 대응 협정이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도로 억제하고, 가능하면 1.5도까지 제한하는 목표를 잡고 있다. 모든 당사국은 해당 목표에 따라 국가별 기여 방안(NDC)을 5년마다 더 강화된 것으로 갱신해야 한다. 해당 협정은 법적 구속력이 있지만, 국가별 감축 수치 자체에는 강제성이 없다.
- 2국가별 기여 방안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파리협정에서 도입된 개념으로,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 스스로 정해 제출하는 국가 단위의 이행 계획을 뜻한다. 과거 교토의정서처럼 일부 선진국만 감축 의무를 지는 게 아니라, 모든 당사국이 각국 상황에 맞춰 목표를 세우고, 국제사회에 공표하도록 한 점에서 전환적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UNFCCC사무국이 취합해 공개하고, 국제사회는 ‘투명성 체제’를 통해 이행 상황을 점검한다.
- 3바르셀로나 트랙션 사건 (ICJ, 1970)
ICJ가 1970년에 내린 판결로, 국제법상 외교적 보호(diplomatic protection)와 국제 공동 이익 의무(erga omnes obligations) 개념을 확립한 중요 사건으로 여겨진다. 벨기에 투자자가 주식을 보유한 캐나다 회사 바르셀로나 트랙션, 라이트 앤드 파워 컴퍼니 (Barcelona Traction, Light and Power Company)가 스페인 정부에 의해 파산하자, 벨기에는 자국 투자자의 손해를 이유로 스페인을 ICJ에 제소했다. ICJ는 이 사건 판결에서 “외교적 보호권은 회사의 국적국(캐나다)은 행사할 수 있지만, 주주가 속한 국가(벨기에)는 행사할 수 없다”라고 했다. 즉 법인격과 주주의 권리는 구별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