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l) 기술이 확산하면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Al 모델의 학습과 추론 과정에는 대규모 병렬 연산이 수반되는데 이 과정에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텐서처리장치(TPU) 같은 Al 가속기를 수용하는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 데이터센터 산업은 국내에 구축된 인프라를 통해 해외 고객에게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수출’은 물론, 설계·시공·운영 기술을 제공하는 통합 인프라 수출, 반도체, 전력 기기, 스토리지 등 연관 부품 수출까지 가능한 꽤 유망한 시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통계 사이트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시장은 2023년 3728억달러에서 2029년 6241억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7월 15일 AI가 촉발한 데이터 산업 수출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용으로 하는 보고서를 펴냈다.

기업들 AI 인프라 부족 호소에 각국 투자 늘려
세계적 기업은 최근 Al 인프라 부족을 주요 사업 애로 사항으로 지목하고 있다. 오픈 소스 플랫폼 회사인 클리어ML(ClearML)이 글로벌 Al 기업 1000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컴퓨팅 한계(32%)와 인프라 이슈(27%)를 Al 사업의 주요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주요국과 글로벌 기업은 데이터 센터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액은 2539억달러에 이른다. 2022년 이후 연평균 169.4%씩 급격히 성장한 결과다.
미국은 데이터센터 수와 투자 규모, 투자 유치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미국은 데이터센터 수가 3811개로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위는 독일로 456개, 3위는 영국으로 434개, 4위는 중국으로 362개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84개로, 일본(186개), 브라질(184개), 아일랜드(123개)에 이어 22위이다.
투자에서도 미국은 최근 5년간 3291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나타나 전 세계 기업 총투자 금액의 67.3%를 차지했다. 미국 다음으로 투자 금액이 많은 나라는 브라질과 싱가포르, 일본, 중국, 네덜란드순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투자 유치에서도 앞섰다. 미국은 5년간 1426억달러를 유치해 투자 유치 금액의 29.1%를 차지하고 1위에 올랐다. 그 뒤를 브라질, 스페인, 영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가 차지했다.
데이터센터 투자와 투자 유치 선도국은 나름의 전략이 있다.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 아마존, 알파벳(구글 모회사) 같은 빅테크 중심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정책을 통해 데이터센터를 확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는 지난 1월 초대형 민관 합동 정책인 ‘스타게이트’를 통해 미국 전역에 Al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민간 주도의 Al 인프라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브라질과 아일랜드의 경우 지리적 이점을 내세워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영국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중국은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은 외국 자본의 100% 사업 소유 허용 같은 규제 완화를 통해 데이터센터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주요국은 특히 대규모 전력 수요 대응을 위한 친환경·저탄소 데이터센터 기술 개발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 확보를 위해 환경 규제를 완화해 원자력발전 용량을 네 배로 확대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 배치에 속도를 내기 위해 9억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울러 천연가스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양한 전력을 통합하는 하이브리드 전력 조합 방식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또 다른 선도국인 브라질과 아일랜드, 중국, 싱가포르도 그린 데이터센터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네덜란드는 소규모 친환경 엣지 데이터센터1)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AI 반도체와 전력 인프라서 기회 찾아야
보고서는 한국이 강점이 있는 AI 반도체와 전력 인프라 등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은 현재 HBM(고대역폭메모리), eSSD(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NPU(신경망처리장치) 같은 AI 반도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HBM은 Al 데이터센터의 학습·추론을 위한 핵심 인프라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글로벌 선두권 유지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HBM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52.5%, 삼성전자는 42.4%, 마이크론이 5.1% 점유율을 기록했다. 국내 스타트업인 리벨리온과 퓨리오사는 AI 추론에 특화된 NPU 개발에서도 국제 경쟁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데이터센터 수출 추진 과정에서 변압기, 무정전전원장치(UPS) 같은 고효율 전력 인프라의 수출 기회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데이터센터는 대표적인 전력 집약적 산업으로 손꼽힌다. 아울러 액침 냉각 등 고효율 냉각 기술, 설계·시공·운영 노하우, 통합 인프라 구축 기술도 해외 진출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세계 각국이 데이터센터 수요를 확대하고 센터 유치 정책을 펴는 상황에서 이들 분야의 한국산 기술이 유망할 것이란 분석이다.
보고서는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 한국이 개발 중인 SMR 같은 안정적 전원과 냉각·서버 최적화 역량을 결합한 친환경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2) 수출 역량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추론에 강한 NPU로 구성된 엣지 데이터센터 기술을 활용해 저전력·저발열을 요구하는 틈새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도 제안했다. NPU는 추론이라는 특정 연산에 최적화된 반도체로, 자율주행과 원격의료처럼 실시간 데이터 처리를 요구하는 엣지 데이터센터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크고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보다 전력 사용량이 적어 더 활성화될 전망이다.
보고서는 AI 칩과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통합형 솔루션을 개발해 서비스를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인트벤처와 R&D 협력을 통한 공급망 구축과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도 함께 제시했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데이터센터를 ‘디지털 수출 전략산업’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공급망 생태계 강화를 위해 국가 전략 사업화 시설로 지정하고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용어설명
- 1엣지 데이터센터
중요도가 낮은 정보를 빅데이터 분석을 위해 더 큰 규모의 중앙 집중식 데이터센터로 보내고, 민감한 데이터를 더 빠르게 처리하도록 사용자 가까이 두는 작은 데이터센터.
- 2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수요에 맞춰 스토리지와 컴퓨팅 자원을 빠르게 확장할 수 있는 방식의 데이터센터.